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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어린이라는 세계’

월간 옥이네 2021년 5월호(VOL.47) 여는 글

평균 키에 맞춰진 세상에서 작은 것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작은 존재는 종종, 어쩌면 꽤 자주 우리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아, 우리의 시선이 그 작은 존재에 머무르지 못할 때가 많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군요.


우리가 ‘다른 시선’을 가지지 못할 때, 이 작은 존재들은 각종 혐오와 차별을 만납니다. 모두가 똑같은 눈높이로 살아갈 순 없으니, 나와 다른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존재가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지요.


99회 어린이날을 맞으며 ‘사람이 곧 하늘’임을 외쳤던, 또 그런 사상을 이어받아 어린이 문화운동을 이끌던 옛 옥천 사람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일궜던 땅 위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봅니다.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이나, 그런 어린이를 양육하는 어머니를 ‘맘충’으로 모는 세상. 차마 지면에 옮기지 못할 정도로 어린이를 성적 대상화하고 이를 유희처럼 즐기는 사람들. 어떤 일을 이제 막 시작해 아직 미숙한 상태인 사람을 ‘-린이’로 부르는 요즘의 유행어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무의식의 혐오와 차별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12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이 꿈꾼 풍경이 아님은 분명하고요.


월간 옥이네 5월호에서는 옥천 청산 출신의 동요 작곡가 정순철 선생의 이야기를 끄집어냈습니다. ‘짝짜꿍’이나 ‘졸업식 노래’ 등 한국에서 정규 교육 과정을 받고 자란 이라면 모를 수 없는 노래이지만, 그 작곡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듯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간 세상에 소개된 정순철 선생의 삶의 궤적을 찾아 정리하고, 그를 설명할 때 뺄 수 없는 청산 동학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습니다. 똑같은 무게의 사람으로서 어린이를 인정하고 곁을 내어주는 일, 불우한 환경 속에 나고 자랐어도 일찍이 그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어린이 문화운동을 꽃피운 정순철 선생의 정신을, 옥천이 계속 기억하고 확산시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오는 것이라고, 그래서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던 어떤 시인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어떤 존재가 우리 인식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그래서 곧 우리 세계의 확장이며 우리 삶의 풍요입니다. 월간 옥이네에 실린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의 세계를 넓히고 아름답게 하는 소중한 거름이 되길 바라봅니다.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세상의 5월에서, 우리 모두 좀 더 ‘인간다워지는’ 시간을 다짐해봅니다.


*월간 옥이네 47호 여는 글의 제목은 김소영 선생님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차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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