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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4월’이라는 빚을 떠올리며

월간 옥이네 2021년 4월호(VOL.46) 여는 글

흔히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에 국민총소득(GNI)이 세계 11위, 높고 화려한 빌딩과 잘 닦인 도로, 가구 당 평균 1대에 육박하는 자동차 보유대수……. 우리가 이만큼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지표나 풍경은 주변을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전쟁이나 굶주림, 문맹, 빈곤, 질병 같은 것에서도 훨씬 자유로워진 현재, 우리는 분명 예전보다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체 사회의 평균이 나아졌다고 해서 구성원 모두의 삶이 좋아졌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오히려 양극화로 인한 빈곤, 교육 격차,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깊어졌고 차별 또한 만연합니다. 우리 사회 주류의 흐름에서 빗겨간 곳에 있는 이들에게, 세상은 전쟁이나 굶주림에 시달리던 때와 크게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익숙해서 차별인지도 알기 힘든 것들,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4월 20일)이 있는 이번 달 월간 옥이네가 다룬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매일 걷는 도로 위, 매일 생활하는 공간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고 있음을, 일상 속에서 깨닫기는 쉽지 않습니다. 교육권, 노동권을 갖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확보돼야 할 이동권 투쟁이, 여전히 장애인 인권 운동계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것도 이 때문이겠지요. 기차역의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건물 입구의 경사로나 저상버스 등은 그런 투쟁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비장애인도 일상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고요.


하지만 여전히 높은 벽을 돌아보며 ‘우리 사회가 정말 진보한 게 맞나’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월간 옥이네 4월호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들은 질문들에도 이런 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잖아.” 글쎄요. 비장애인처럼 집 밖을 자유롭게 나서기도, 시내 상점을 방문하기도,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교통수단을 찾기도 힘든 삶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맨날 같은 문제만 지적해.” 십 수 년을 이동권 문제만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건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라,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인 우리가 아니던가요.


제주 4·3 항쟁부터 4·16 세월호 참사, 4·20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등 4월은 기억할 것도, 또한 함께 싸워야 할 것도 많은 달입니다. 일상에 파묻힌 망각의 무리와 싸우는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 사회가 조금은 나아지고 있음을 기억해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4월을 맞는 우리가 ‘4월’에 진 무수히 많은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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