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옥이네 2022년 12월호(VOL.66) 여는 글
매일 아침 출퇴근길, 동네 친구들과 저녁 산책을 하는 길, 혹은 오랜만에 집안일을 하는 휴일……. 특별히 다를 것 없던 일상에 1년 전쯤부터 조금 다른 ‘소리’가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발랄한 청소년들의 웃음소리가, 부드러운 운율로 시를 낭송하는 고운 음성이, 분위기 있는 중저음의 DJ가 소개하는 7080 팝송이 이 풍경 한편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런가하면 평소라면 듣기 어려운 이주여성이나 장애인 활동가의 이야기를 그들의 육성을 통해 직접 들을 수도 있지요. 소리가 깃들어 조금 더 재미있고 또 조금 더 풍부해진 풍경입니다. 바로, 104.9Mhz 옥천FM공동체라디오가 함께하는 일상입니다.
동네 라디오가 있다고 하면 다들 한 번씩은 놀라시지요. 인구 5만도 되지 않는 지역에서 잡지를 만들고 있다고 하면 놀라는 것처럼요. 하지만 저희가 잡지를 만들며 늘 하는 말처럼, 우리의 이야기는 지면을 가득 채우고도 넘칠 정도기에, 라디오라는 매체가 새로 생겨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마냥 이상한 일만은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깃든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떠올려본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요.
옥천FM공동체라디오가 오는 21일이면 개국 1주년을 맞습니다. 옥천신문, 월간 옥이네 등 활자매체가 다하지 못하는 ‘주민의 목소리’를 ‘직접’ 담는다는 점에서 공동체 라디오의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펜을 통해 대신 전달되는 것이 아닌,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은 ‘자치’와도 직결된 부분이겠고요. 매주 30개 이상의 프로그램에서 70여 명의 옥천 사람들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뻗어간다는 것, 지역의 일상에 이 목소리가 스며든다는 것은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무척 가슴 벅찬 장면입니다.
한정된 지면 상황으로 옥천FM공동체라디오의 모든 것을 담진 못했지만, 1주년을 맞은 라디오 안팎의 사람들을 옥이네 지면에 중계해봅니다. 제각각 다른 목소리로 자신만의 세상을 라디오 전파로 펼쳐가는 사람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일상 속 작은 응원의 힘을 얻는 이들, 그리고 라디오 제작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공동체 라디오 사람들…… 어떠신가요? 활자를 넘어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고보면 ‘공동체’라는 것도 마냥 무겁고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잘 몰랐던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내 옆의 사람 뿐 아니라 저기 건너편에 앉은 이의 사정을 궁금해하는 것부터 공동체가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위로가 필요하다면 위로를, 축하가 필요하다면 축하를 건네며 때로는 우스갯소리라도 함께 나누고 ‘말하고 들을’ 용기를 만들어내는 여정이 바로 이런 풀뿌리 언론에 있습니다.
하나 더, 활자매체를 접하기 어려운 사람 혹은 그런 상황에서 공동체 라디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시각장애인이나 글자를 모르는 사람은 물론 태풍이나 홍수 등 긴급한 자연재난 발생에 대비해 공동체 라디오의 활동 기반을 튼튼히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 여름 태풍 힌남노가 옥천을 지나던 당시 공동체 라디오의 재난 방송을 들으며 태풍의 밤을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는데요. 이 같은 공동체 라디오의 효능이 지역 전체에 가 닿을 수 있도록, 옥천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자기 지역의 소식을 직접 전하는 공동체 라디오가 태동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가 정비될 필요가 있습니다. 옥이네 이번 지면에서는 이 이야기를 깊이 다루지 못했지만, 이번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 라디오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느새 2022년 끝자락에 왔습니다. 옥이네가 올해 보내드린 여러 이야기는 여러분께 어떤 신호로 가 어떤 흔적을 남겼나요? 부디 건강하고 행복한 기억의 한 자락이 되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농촌이, 지역 공동체가 여기 있다는 존재의 신호와 함께 새해에는 더욱 희망찬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즐거운 연말연시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