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체계적 둔감법을 이용해보자
이 글은 딸아이가 24개월 무렵 쓴 글이다. 그래서 글을 썼던 내용이나 시점이 당시에 맞추어져 있다.
요즘 딸아이는 배변훈련과 공갈젖꼭지, 일명 쪽쪽이 떼기를 진행 중이다.
24개월임을 감안하면 좀 늦은 편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가급적 훈련 혹은 교육차원에서 하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떼는 시점을 기다려주는 편이라 억지로 하지는 않았다. 요즘 추세가 신체적 발달 못지않게 정서나 인지발달, 자존감 형성과 같은 심리적 요인도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딸아이는 공갈젖꼭지(쪽쪽이)를 '쭈쭈아'라고 불렀고, 다양한 상황에서 찾았다.
이때가 생후 2~3개월쯤..
외출할 때도..
수영할 때도..
하다못해 돌잔치 날도..
비행기 안에서도..
이렇게 '쭈쭈아'를 찾는 상황을 보면 잠이 오거나 뭔가 낯설고 불안한 상황에서 공갈젖꼭지를 찾았다.
이른바 구강기라는 시기에는 입이 모든 욕구의 출발점과 끝이 된다. 많은 분들이 심리학자로 알고 있는 프로이트는 정신과 의사이고 정신분석학의 대가로 심리성적 발달의 5단계를 설명한 사람이다.
사실 심리학에서는 프로이트로 대표되는 정신분석학은 여러 가지 이론과 학설 중 일부이지 모든 발달이론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현대 심리학 이론의 관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과 의사들은 여전히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쨌거나 현대 심리학에 근거하자면 구강기가 지나면 항문기가 오는 그런 과정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즉 구강기가 끝나니 공갈젖꼭지를 떼고, 항문기가 오면 배변훈련을 하고 하는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건 좀 위험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아이가 그다음 단계로 이행할 준비가 되었는지, 구강기라는 측면보다는 아이의 정서와 애착에 초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공갈젖꼭지를 무는 것은 빨기 욕구를 충족시키는 측면과 엄마라는 절대적 애착 대상을 보완하는 도구이자 불안한 상황에서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억지로 부모가 떼려 하는 것도 아이에겐 좋지 않은 정서적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에선 공갈젖꼭지를 조금씩 혹은 한꺼번에 잘랐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것도 '각자' 좋은 방법일 수 있을 것 같다.
치과 쪽에서는 만 4세, 그러니까 48개월 전까지만 떼면 크게 문제가 없다는 연구들이 많다. 반면 12개월 이후에 떼라는 연구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가 원할 때'로 하되 아이의 눈높이에서 설득작업을 했다.
일단, 이전까지는 아이가 원할 때는 무조건 줬다.
이후에 조금씩 줄여갔는데 이런 방법을 체계적 둔감법(systematic desensitization)이라고 한다.
보통은 사회 공포증(social phobia)의 치료기법으로 사용하는데 원리는 간단하다. 나는 임상심리학 전공은 아니므로 이 경우에 정확한 방법이나 용어인지는 잘은 모르지만 학부 수준에서 충분히 이해할만한 것이고, 서서히 불안이나 공포를 감소시키기에 유용한 방법임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을 사용했다.
"어떤 공포를 느끼는 대상에 조금씩 노출을 시키면서 대상에 대해 둔감하도록 만드는 것"
아이가 쪽쪽이가 없는 상황을 불안해한다면 조금씩 그 상황을 오래 지속시키고 쪽쪽이가 없어도 괜찮다는 걸 인식시켜주는 것이다. 먼저 계획을 짰다.
일단, 저희 아이는 졸리는 상황에서나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쪽쪽이를 찾았기 때문에 일단 주되, 잠이 들면 바로 입에서 뺐다. 이가 나고 아이가 자라면서 쪽쪽이를 계속하고 있으면서 침이 고이자 '켁켁'거리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물려주고 빼는 시간 간격도 계속 줄이고 아침에도 옆자리에 쪽쪽이가 안 보이는 날도 늘렸다. 그리고 애착의 대상이 자연스럽게 옮겨갈 수 있도록 부들부들한 토끼 인형을 하나 사주었다. 아이가 놀다가 졸려서 잠이 드는 경우나 노래를 부르다가 자는 경우에는 쪽쪽이를 주지 않았다. 굉장히 천천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사실 아이는 눈치를 못 채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갑자기 툭하고 주게 되어 쪽쪽이를 자주 사용하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일관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올여름부터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언니, 오빠, 아가들과 놀다 보니 스스로를 누나, 언니라 지칭하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그래서 이런 점도 이용하고는 했다. 그런데 딸아이가 재미난 반응을 하는 것이다.
"뿡뿡이는 아가야?"라고 물으면 "누나" 혹은 "언니"라 하길래 "쪽쪽이는 아가들만 하는 거야~"그랬더니 "(자기 가슴을 툭툭 치며) 아가"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드디어 수많은 공갈젖꼭지의 개수와 빈도를 점차 줄여 2개가 남았다. 어제 재우면서 "오늘은 하고 내일은 아가 주자"했더니 순순히 쪽쪽이를 내주었다. 오늘 아이 엄마가 아이를 재우면서 쪽쪽이를 달라길래 "뿡뿡이가 아가 주라고 그랬잖아?"그랬더니
"하나는 아가한테 주고 다른 하나는 (자기 가슴 툭툭 침)"
24개월이니 다른 아기들에 비하면 많이 늦는 편이긴 했다. 현재까지는 하루에 딱 2번만 사용한다. 낮잠 잘 때, 그리고 밤에 잘 때.. 깨어날 때는 이제 필요 없게 되었다.
딸아이가 지금 48개월에서 49개월로 넘어가는 시기이니 2년 전의 글이다. 체구는 또래보다 컸는데, 허구한 날 공갈젖꼭지를 물고 다니기에 주변 엄마들이나 아이를 봐주시는 이모님들이 몇 개월이냐고 묻는 경우도 많았다. 오지랖 넓은 분(?)들은 구체적인 공갈젖꼭지 떼기 방법까지 알려주시며 은근슬쩍 우리 아이가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양육에 대한 원칙과 일관성이다. 부모가 충분히 공부를 하고 아이를 유심히 관찰한다면 성장과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결국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