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민주경희 기고글-2019년 5월]
아래의 글은 경희대학교 총 민주동문회 동문회보 '민주경희'에 2019년 5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처음 학부 때는 사학을 전공했지만,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사회심리학 전공)을 졸업하고 10년 넘게 그와 관련된 일을 해왔네요. 경희대 총 민주동문회 사무국에서 제게 '심리학으로 바라본 세상'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 말씀해주셔서 2017년 11월부터 2019년 5월인 현재까지 매달 기고하는 중입니다. 이 글은 원고에서 약간 수정을 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저는 요즘 고등학교 선후배와 함께 책을 한 권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동문 모임에서 우연히 서로의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선배와 후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선배는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친 후 다시 독일로 유학을 떠난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이후 오랫동안 다국적 기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문화 차이에 관련한 컨설팅을 해왔습니다. 다른 후배 하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재무전공으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의 유학생활을 마친 후 귀국하여 산업 및 조직심리학 전공으로 박사를 취득하였습니다. 다양한 성장배경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탓에 그들 스스로 이방인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저희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짧은 기간이나마 외국에서의 생활 이후 한국에서 한동안 적응에 애를 먹었던 경험이 있었고, 전공과 직업면에서 꽤나 다양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인 세 명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고, 서로 다른 경험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만드는가에 대한 책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공통분모를 가졌지만 저마다 독특한 차이를 지닌 우리 셋이 모여 책을 써보겠다고 모임을 가졌습니다. 여전히 저희는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를 많이 느끼기는 하지만, 그 차이를 줄여가는 중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차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사회 어디에서도 '차이’를 ‘다르다’가 아닌 '틀리다'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많습니다. 다르다고 하면 될 문제인데도 틀리다고 생각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치는 상사와 부하직원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이유는 ‘서로가 다르다’가 아닌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애와 결혼생활에서 싸우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닐까요?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여중생이 화장을 하고 다는 것을 본 어느 할아버지는 '쯧쯧' 한마디를 하며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는데, 할아버지는 학생이 화장을 한 것이 세대가 ‘달라졌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생의 본분이 아니며 '옳지 못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차이'는 '다르다'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부터 나타날까요?
아이를 낳아 기른 경험이 있는 부모들은 초음파로 본 뱃속 태아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누가 봐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태어나는 순간 차이는 시작됩니다. 1월에 태어난 아기, 12월에 태어난 아기.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도 태어난 시기에 따라 다릅니다. 기기 시작하는 것도, 걷기 시작하는 것도,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도 다릅니다. 이런 태어난 시기에 따른 발달 차이가 있는데, 부모들은 누가 빠르네, 늦네 하면서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차이에 대한 인식은 또래집단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어릴 때 출발점은 다들 비슷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차치하고서라도 고만고만한 차이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보면 점점 그 차이는 크게 나타납니다. 누구는 대학을 못(안) 가고, 가고, 누구는 일류대를 가고 못 가고, 취업을 하고 못하고, 연애를 하고 못하고, 결혼을 하고 못하고(안 하고).. 그런데 이런 차이를 우리는 마치 '틀리다' 혹은 '옳지 못하다'는 말로 판단합니다. 그런데, 결국 이런 큰 차이도 죽음이라는 모두가 경험하는 현상 앞에서는 무의미해집니다. 결국 살아있는 동안의 '차이'와 '다름'은 작은 차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보면 작은 차이에 불과한데도 실제로 더 크다고 인식합니다.
우리 사회가 세대 간의 갈등, 계층 간의 갈등, 남녀 간의 갈등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꽤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 차이는 어마어마할까요? 아니면 애초부터 엄청나게 큰 차이로부터 발생할 것일까요? 저는 의외로 우리들의 차이와 갈등은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화장한 여중생을 언짢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연애와 결혼 관계에서 다투는 남자와 여자는 남녀가 아닌 하나의 같은 인간으로 바라봄으로써 차이가 아닌 ‘같음’과 ‘공통점’을 먼저 바라본다면 그 차이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며, 그 다른 것 또한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사회를 통해 계속 유지가 될 수 있음은 공통점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그렇게 다르다면 인류는 벌써 멸망했지 않았을까요? 현실적인 해법은 아닐지라도 수많은 사회갈등을 푸는 열쇠는 우리가 그 차이가 ‘틀림’이 아니고 ‘다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다름’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으며, 우리에겐 공통점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지금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이미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