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고 싶지 않다.

우울증 치료 08

by 누리달

독감에 걸리고 고열에 시달렸었다.


다행히 재택근무인 덕에 출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덕분에 이틀 내내 넘칠 만큼 잠을 잤으며 어제 너무 많이 잠을 잔 탓인지 수면제를 먹었음에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잡다한 꿈에 시달리다가 결국 새벽부터 잠에서 깨었다.


이 시간에 멀쩡한 정신으로 조용하게 있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일찍 일어난 김에 일찍부터 일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또다시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일은 개뿔, 단순히 조용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운데.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보다 안 좋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던가.

그런데 도대체, 그 안 좋은 생각을 멈추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것을 위해서 결국 내 발로 정신의학과를 찾아간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도대체 뭐가 얼마나 좋아진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아니, 그래도 멀쩡한 척 몇 달간 일을 하면서 잘 지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아지고 있는 것인가.




얼마 전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는 날에는 그냥 병원을 가지 말까 하는 고민을 한 참을 했었다. 스스로 조금 더 나아지고 싶어서 시작한 치료였으나, 이제는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일까 싶기도 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나아지는 것이 과연 좋을까? 싶기도 했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은 오랜 관성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이것도 그냥 우울증 증상인 것일까.


새벽부터 무슨 일을 한다고. 잠시 미뤄두고 오랜만에 일기나 써볼까 하다가 그것도 마음이 좀처럼 허락을 하지 않아서 이 공간에 들어오는 데까지 한 참이 걸렸다.


그런 것을 보면, 나는 여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쓰는 데에 무척이나 각박한 것 같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 봤자 하루종일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가 날 위하여 쓰는 시간들이 아깝다.


여전히 나는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때로부터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기에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니 조금은 나아진 것일까.


이렇게 마음이 시끄러운 것은, 독한 독감 약을 먹는다고 며칠간 우울증 치료약을 못 먹었기 때문인 것일까.




긍정적인 목표를 잡고. 취미를 가지고 좋은 활동들을 하고. 삶에 감사하라고 한다.


나는 긍정적인 목표를 잡았고,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매 순간은 아니지만 많은 순간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이모양이다. 도대체 뭘 얼마나 더 해야 좋아지는 건데. 아니 좋아진다는 것은 도대체 뭔데. 평범한 다른 삶들은 이러한 순간에 어떠한 생각들을 하면서 사는 거지?


혼란스럽다.


다 때려치우고 다시 잠이나 자고 싶다. 아주 오랫동안 깨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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