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09 과잉수면과 싸우는 중
약 1년간 항우울제 약에 수면제를 처방받아서 같이 복용을 했었다.
한두 달 전부터는 따로 처방받던 수면제는 양을 점차 줄이다가 이제는 먹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가 먹는 항우울제 약에는 졸음이 오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수면제의 효과가 있긴 하다. 덕분에 나는 약을 먹고 나면 30분 이내에 잠이 든다.
이렇게 약을 먹고 충분히 푹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는 커피 한잔과, 아침에 먹으라고 처방해 주신 약을 먹고 나면 오전은 그래도 그럭저럭 잘 버틴다. 미친 듯이 몰입하면서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후와 비교하면 꽤나 성공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문제는 오후부터이다.
의사는 나에게 오후에 괜찮으면 커피 한 잔 정도 더 마셔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권유를 했지만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서 일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미친 듯이 졸리기 시작한다. 단순한 춘곤증이라고 하기에는 한겨울에도 그랬으며, 수면부족이라고 하기에는 밤에 약 덕분에 너무 잘 잤다.
졸음이 오기 시작하면 나는 그때부터는 일을 멈추고 잠시 자고 일어나서 멀쩡한 정신으로 다시 일을 해야 할지 아니면 졸면서 그냥 컴퓨터 앞에서 버텨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는 아주 빠르게 내가 지금 잠을 자야 하는 이유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고 있다.
어찌 보면 졸려서 자고 싶은 건지 아니면 자고 싶어서 졸린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날은 나름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써 보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그냥 쉽게 포기하고 잠을 자버리기도 한다.
다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잠만 자고 싶은데, 그게 왜 안돼?
무의식 어느 곳에서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잠만 자고 싶다고.
오전에 먹는 약은 식약처 분류에 각성제 흥분제라고 되어 있으며, 효능 효과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의 치료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지나치게 텐션이 낮은 내가 흔히 생각하는 과잉행동장애와는 거리가 멀지만, 스스로 조용한 ADHD라고 의심을 했을 만큼 주의력은 결핍되어 있는 상태였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을 가고 상담을 하는데, 나는 몇 번이고 "일에 집중이 안되어서 힘들어요"라는 말을 했었다. 내가 병원을 찾은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었다.
일을 더 잘 혹은 더 많이 하거나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도무지 일에 집중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
엉뚱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꾸벅꾸벅 졸다가 겨우겨우 최소한의 일만 끝내고 나면, 이렇게 하루를 보낸 나에 대한 혐오감이나 죄책감 혹은 무기력함만 남는다는 것.
일을 하지 않고 그냥 영상 등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쏟아지는 잠 때문에 좀처럼 쉽지가 않다. 약을 오후에 먹어봤더니 약을 안 먹은 오전에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스스로의 눈치를 보지 말고 편하게 잠이라도 자던가 하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겠는데 도무지 그것이 되질 않는다.
그깟 잠 하나를 못 이기는 게 과연 병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건 그냥 핑계고 게으른 습관 아니야?
졸릴 때는 잠을 자야 하는 이유를 수십 가지를 찾아내더니, 잠을 자고 일어나면 또 머릿속에서 게으르다고 난리다.
의사는 나에게 우울증에서 온 무기력증 때문이라고 했고, 나도 애써 그렇게 인지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지만 정작 마음은 게을러터 진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하고 있다.
나는 게으름과 무기력증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이 끝없는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은 언제쯤이나 되어야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