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런 것 못 사 먹잖아.

결혼, 관계 _ 가족이 힘겨워지는 순간들

by 누리달


정말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남편은 생활비가 모자랄 때면 시댁에 손을 벌리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계속 이어져서 최근에는 진로를 정하고 학원을 다니는 아이의 학원비가 감당이 안된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받고 있었다.


아이가 셋이라는 이유로, 그 세 아이를 내가 직접 키우겠다는 이유로 그동안 경제적 부분에 대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인정을 한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줄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그렇다면 너라도 나가서 돈을 벌었어야지 할 수도 있었을 일일 테니까.


여하튼, 그런 우리였기에 시부모님은 매번 같이 밥을 먹을 때마다 밥을 사주시는 입장이셨다.


결혼 초반에는 그러한 점들이 불편했고, 몇 년 뒤에는 아이 셋이 너무 어려서 내가 돈을 못 벌었으니까 그려려니 하면서 감사하게 생각하던 일들이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듯 받는 남편의 모습에 같이 익숙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시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는 시간들이 불편하고 불안하고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너희는 이런 것 못 사 먹으니까."


단 한 번도 우리가 먼저 나서서 밥을 사달라고 한 적은 없었는데, 시어머님은 간혹 밥을 사주시겠다고 호출하셔서 사주시고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우리끼리는 외식을 최대한 안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을 사 주시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흔히 먹을 수 있는 고기구이 정도였는데. 꼭 사주시면서 그렇게 덧붙이시곤 하셨다.




시어머님은 마트 쇼핑이 취미이셨다. 최근 몇 년은 이런저런 핑계로 함께 마트를 간 적은 없었지만, 예전에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꼭 같이 마트를 가자고 하시면서 이런저런 식재료와 생필품을 사주시곤 하셨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무척이나 감사하게 여겼으나, 몇 년이 지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쇼핑을 하는 시간이 점점 힘겨워졌다.


"너희는 이런 것 못 사니까."


그냥 결제를 해 주셔도 충분히 알고 있고 감사해할 것을, 꼭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다. 간혹 "카드값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이건 아버지 카드로 눈치가 좀 보여서 못 긁겠다, 내 카드로 결제해야지"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렇다고 마트에서 내가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는 것도 아니었다. 시어머님은 꼭 답을 정해놓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필요한 것보다, 본인 기준에서 구입했으면 좋을 것들 혹은 본인이 좋아하시는 것을 은근슬쩍 강요하셨으며, 그중에는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나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것도 많은 편이었다.


과일을 사주시면서는 "우리도 잘 못 사 먹어, 너네니까 사주는 거지"라고 말씀도 하셨다. (시어머님께서는 매번 좋아하는 연예인의 공연을 지방까지 따라다니시고 계절마다 여행을 다니시는 분이시다.)


그렇게 우리 집에는 우리가 소비하지 않는 물건이나 내가 입지 않는 옷들이 쌓이곤 했었다.




물론, 맞는 말씀이셨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또 무척이나 감사하게 생각했었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최소한 우리보다는 여유가 있으셨으며, 그리고 사주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시부모님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러한 말들은 점점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 같다.


이유도 모른 채 시어머님과 함께 외식을 하는 시간, 쇼핑을 하는 시간들이 숨이 막히기 시작했으며, 간혹 마트를 다녀오셨다면서 잔뜩 건네주시고 가신 뒤에 남겨진 물건들을 보는 것이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내 생일이라고 맛있는 것을 사주시고 선물을 사주셨던 날에는, 다녀와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던 기억이 있다.


누구네는 자식 며느리가 뭘 사줬다더라, 나도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 가방 하나 마음 편하게 못 산다, 그러시면서 사주시는 물건을, 뻔뻔하지 못 한 내가 어떻게 신나게 받을 수 있었겠는가.





이제는 밥을 얻어먹을 일도 생일 선물을 받을 일도 사라졌는데, 나는 마음이 아주 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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