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 잠에서 깨고 싶다.

우울증 치료 10

by 누리달

두어 달 전 이혼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던 즈음의 나는, 아마도 무기력함이 극에 달해있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뜨고 싶지 않았으며, 꾸역꾸역 한 시간을 앉아서 일을 하고 나면 슬그머니 침대로 기어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일을 하고 또 침대로 기어들어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오전 시간만 해도 왜 그렇게 더디게 흘러가는지. 도대체 점심시간은 언제 오는 건지.


하지만 점심을 먹고 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잠에 책상 앞에 앉아있지를 못 하고, 차라리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침대에 누우면 막상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런 상태를 반복하다가 겨우 잠이 들고일어나면 겨우 저녁.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 같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억지로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치우고 나면 또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밤은 또 왜 그리 천천히 오는지. 그렇다고 누우면 바로 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오후 8시부터 나는 수면제를 손에 들고 언제 먹고 잠이 들어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면 하루가 너무 빨라서 밤에 잠드는 것도 아까워 꾸역꾸역 잠을 이겨내려고 버티다가 잠이 들곤 했는데.


하루가 이렇게나 길게 느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차라리 현실을 등지고 시간 때우기용 드라마나 영화 등에 집중이나 할 수 있었으면 좀 나았을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혹은 미루지 않았더라도 하루 종일 무의미하게 혹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 대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너는 아무것도 이뤄낸 것이 없으니, 지금 여기서 놀고 있으면 안 된다. 뒤쳐진 만큼 더욱 빨리 뛰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누군가가 계속하여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은 기분에서는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결국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그나마 마음 편하게 잠들 수 있는 밤시간만 기다렸으며, 잘 시간이 되면 약을 먹고 빠르게 잠이 들었다.


24시간 중 20시간을 잠을 자도 되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다.






그래도.. 고작 그 정도 나갔다 오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엄청나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병원은 때맞춰 다녔고, 처방받은 약도 꼬박꼬박 먹었다.


우울하고 무기력함에 나가기가 싫고 두려웠는데, 그런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게 더 무서웠던 것 같다.


우울함에 빠져있다 보면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인식을 하게 되면 그래도 나가야지 싶어지기도 한다.


정신의학과 약을 먹은 오전에는 그나마 집중이 좀 되었고 오후에는 약발이 떨어져서 그런 건지 매일 졸음과 사투를 벌이곤 했는데, 그러한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기도 했다.


한 달쯤 지나서 약을 새로 처방받으러 가야 하는데, 너무 귀찮게 느껴 서서 이 정도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가, 두어 시간 내내 아무것도 못 하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의사와 상의를 했고, 의사는 조금 더 오래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깨어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져서, 이제 나는 더 이상 낮잠을 자지 않는다.


흔히 시간이 약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글쎄.. 내가 약물의 도움 없이 그냥 버텼으면(심지어 나는 그전부터 계속 우울증 무기력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만큼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있을 수 있었을까.


언젠가는 약물의 도움 없이도 하루 종일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있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리고 욕심을 조금 더 부려보자면, 그 시간 중 내가 무언가에 집중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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