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행의 끝, 변한 것은 없었다.

이혼, 아이는 셋 그리고.. 04

by 누리달


약 17년 ~ 18년 전 즈음의 일이다.


친구의 결혼식이 있다는 이유로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 없이 외박을 하게 되던 날이 있었다. 어렸던 아이는 친정집에 맡기고 혼자만의 외출이 어찌나 자유롭게 느껴지던지.


여행 아닌 여행에 설레고 들떠서 육아에 지쳐있던 현실을 잠시 잊고 있다가, 다음 날 집에 들어왔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미쳐 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설거지들이 1박 2일 동안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우울하고 서러웠던지,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엉엉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작, 설거지 따위가 뭐라고. 그게 그렇게 서러웠었던 기억.


뒤돌아 생각해 보면, 나의 잘못이었다.

나는 설거지를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당시 그는 1박 2일 동안 아이를 본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틀 동안 힘들게 일을 하고 온 것도 아니었다. 아내도 없고 아이도 없는 집에서 설거지뿐 아니라 출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임만 했으리라.


나는 평소에 그가 집안일 하나 안 하고 육아에도 참여를 안 해서 서운했던 일이 거기서 터진 것이었으며, 그것을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설거지를 안 했다며 우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뭐가 서운한지 감정이 어떤지 제대로 설명을 안 했으니 그는 모를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나의 잘못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내 마음 나도 잘 모르는데, 설명도 안 해주고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일 테니까.




약 1년 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가장 친한 그리고 유일한 친구들에게 전한 날, 그녀들은 나와의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가장 오래된 친구들이었는데 나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 한번 한 적이 없었고, 여기에는 나의 빠른 결혼 생활도 한몫했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처음 여행을, 신혼 이후 첫 해외로, 아이들과 남편 없이 처음으로 오롯이 홀로 3박 4일로 다녀오게 되었고 어느 정도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던 그는 기분전환 잘하고 오라는 말을 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아이들은 햇반과 배달음식으로 알아서 잘 먹을 것이지만, 학교를 가야 하는데 첫째는 유독 못 일어나는 편이라 꼭 깨워주어야 한다는 당부만 했었다.


그래, 내가 부탁했던 것은 고작 그 정도였는데.





여행은 좋지만 힘든 것도 사실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테이블 위와 싱크대에는 저녁을 먹은 흔적이었다. 집 청소나 빨래 등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도 매일 하지도 않는 것, 며칠 안 한다고 뭐 크게 달라질까.


그래, 그놈의 설거지. 그게 문제다.


설거지가 그대로네?라고 물으니, 막내가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단다. 4일 동안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밥을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를 했단다.


평소에도 내가 외출하거나 하면 그렇게 하던 아이들은 언제나 하던 것처럼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저 내가 돌아오던 그날의 일을 못 했고 하필 내가 그걸 봤을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뒤늦게 알고 보니 내가 여행을 다녀온 시간 동안 주말은 주말이라 쉬고, 평일엔 연차 내고 내내 쉬었다는 아빠는. 도대체 무얼 했을까.


유일하게 내가 부탁했던, 아침에 등교해야 하는 첫째를 깨우는 일도 동생들이 했다고 했다. 아빠는, 며칠 동안 내내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배달 음식을 시켜주고 결제해 준 것이 전부이다.


도대체 왜, 자신은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날 밤, 나는 남편에게 설거지를 부탁하고 잠을 잤고, 며칠 뒤 이번에는 분명하게 전달했다. 서운했어,라고.


그는 새로 시작한 게임의 끝을 보기 위하여 며칠 동안 완전히 몰입하느라 잊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오기 전 치워놓으려 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길래 실망을 한 것일까. 그리고 그는 무엇에 대하여 미안하다고 한 것일까. 정말로 알긴 아는 것일까?


아이들은 스스로 일어나서 학교를 가고 밥을 챙겨 먹고 뒷정리를 할 만큼 성장했는데, 그 긴 시간만큼 그는 전혀 성장하지 않은 것일까.




혼자 살게 된 그는 이제는 가끔씩 설거지를 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조금씩 그때 내 마음을 알게 되려나, 아니면 계속해서 모르려나.


문제는 설거지가 아니었다.

나의 일 혹은 가정에 대한 관심과 존중, 그리고 그것의 표현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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