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어딘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은 한다. 나는 많은 시간을 쓰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행동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늘 이렇게 시간이 부족하고 제대로 해 낸 일은 단 하나도 없는데 바쁘고 여유 없게만 느껴질 리 없으니까.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정리도 아이들의 학습을 봐주는 일도 늘 엉망인 상태에서 겨우겨우 넘어가면서 심지어 들어야 할 강의도 잔뜩 밀렸다. 하루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운동하면서. 추가로 한 시간 정도 맥주 한 캔과 함께 스트레칭하면서 TV 보는 시간이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고. 그것 말고는 공식적으로 내가 '노는 시간'은 없으니까.
아. 잠이 많다는 것 인정은 한다. 그래도 낮잠을 잠깐씩 자는 날 있고 안 자는 날 있고. 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내고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그의 늦은 저녁까지 챙기고 나면(거창하지도 않고 못 하는 날도 있지만 뒷정리까지 하고 나면 늘 많이 늦어버리니까)하는 정도의 깨어있는 시간이라면 치열하게 살고 있진 않아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은 한다. 아니, 스스로 애써서 위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최근 내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은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CD 음원을 복사해서 정리를 해 주어야 책을 편하게 보는데, 하드가 한번 날아간 뒤로 재 정리를 못 해주고 있다. 밤에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다 새벽에 자는 그에게 게임하면서 CD 몇 장 복사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게임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영상도 보면서 하는 그이니까. 그런데 바로 돌아오는 대답은 "컴퓨터 느려서 게임도 버벅대"였다.
"하아.. 그렇지.. 컴퓨터를 사야 하는데.."
그 뒤에 내가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했었는지 안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아마도 그런 뜻의 말을 했던 것 같긴 하다) 컴퓨터가 느려 불편한 것도 사실이어서 어렵다는 그의 말을 이해는 하지만 내 기억에 그는 늘 나의 소소한 부탁들을 기분 좋게 대답하며 해 준 적은 없었다. 내 한숨은 거기에 대한 것과 결국 내가 다 해야 하는 거구나..라는 것이 섞인 것.
"내가 언제 당신 보고 돈 벌어오라고 시켰어? 왜 그래? 일 안 하면 되잖아"
사실, 말 그대로의 뜻 보다 감정적인 부분들의 전달에서 문제들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는 내가 그가 돈을 많이 안 벌어서 문제라는 뜻으로 이해한 것 같고, 나는 그가 내가 겪는 문제들을 조금도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것에 서운하고 화가 났다.
게다가 '시켰다'라니.
문제의 컴퓨터
"지금 컴퓨터로 게임하면서 CD 복사 작업까지 할 수 없다는 상황은 나도 인정은 해. 거기까지 생각 못 했어. 그런데, 당신이 대놓고 시키지 않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나도 대놓고 당신에게 돈을 얼마를 벌어오라고 시킨 적은 없어. 그래도 우리 둘 다 당신이 돈을 벌어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내 일도 당신이 시키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 거잖아. 왜 말을 그렇게 해?
당신 지금 잘하고 있지. 열심히 돈 벌어와 주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이제는 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는 거라고. 당신이시켜서가 아니잖아. 그저 내가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
맥주도 한 캔 들어갔고. 평소 쌓인 감정에 대한 부분과 새로이 겹쳐진 스트레스에 대한 부분들이 뒤엉켜 말이 나왔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그러한 말이었던 듯.
최대한 조심스레 내 말의 뜻의 본질을 이해시키고 싶었는데 그것이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나에게는 전하지 못한 감정이 훨씬 더 많았는데 너무 길어지면 오히려 더 망쳐버릴 것 같으니까 여기서 멈춤.
뒤돌아서 보면.. 처음 내 말이 그의 어느 부분을 건드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래도 그 부분에서 안정이 된 지 꽤 됐으니까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그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도 나의 쌓여있던 어느 부분을 건드렸다. 그는 그동안 일을 할 때에도 하지 않았을 때에도 아이 셋을 키우는데 육아나 살림에 도움을 주었던 것이 거의 없으니까.
방에 들어가 누웠는데 쭈볏쭈볏 들어온다.
"미안해 내가 말이 좀 심했어.. "
"됐어. 모르고 한 말이라는 것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
무언가 할 말이 더 남았는지 혹은 무언가를 망설이는 건지 내 등 뒤에서 조금 더 있다가 결국 그냥 나갔다. 그는 본인의 감정도 내 감정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표현도 잘 못 하는 편이다. 많이 속상하고 많이 서운하고 슬프지만 그가 정말 무언가를 모르고 한 말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진심이다.
'뭐가 미안한지 알기는 하고 사과를 하는 거야? 지금 내 맘이 어때 보이는데? 당신이 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그게 나한테 어떻게 들리는지 알기나 해? 말해봐!!'라고 따지고 말하고 듣고 싶은 게 산더미라 두어 시간은 더 그러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제대로 내 맘 정리도 못 하고 그리 했다가 서로 상처만 더 커질 것. 가끔씩 튀어나오는 그의 무의식 속에 있는 것 같은 '가부장적인'부분들이 간혹 나에게 어떻게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내 마음 정리부터 시작해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