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들이 학교에서 누런색(누리끼리~한 색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봉투를 받아왔다. 막내가 뭐라고 질문을 했던가.. 안 했던가.. 잘 기억은 나질 않는다. 본인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둘째가 그런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그런 거야. 맞지?"
한 반에 두세명 즈음이 받는다는 누런색 봉투를 내 아이들은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받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은 저소득층 가정에게 교육이라던가 급식비 지원 같은 내용에 관한 것이고, 방과 후 자유수강권의 사용 내역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는 그 봉투.
(방과 후 학교 자유수강권이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1인당 연간 최대 60만 원을 지원하여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선택해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바우처이다.)
예전에 한 번은 '결식아동 급식카드'를 받아 온 적도 있었다. 우리 같은 경우는 맞벌이도 아니었으므로 매일 쓸 수 있도록 나오는 것은 아니었고, 보통은 학교가 재량휴업일 같은 경우로 쉬게 되는 날에는 원래 학교에서 먹어야 하는 점심 급식비용이라는 명목으로 5000원 정도를 대형마트에서 사용 가능한 상품권으로 받아왔던 것 같은데 그 년도에는 그 정도 비용이 충전되어 있는 '아동급식카드'를 받았었다.
편의점에서 사용하려 할 때 괜스레 무척이나 불편했던 그것.
(아동 급식카드는 각 지자체에서 결식아동 급식사업의 일환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발급하는 IC카드이고, 편의점과 일부 가맹점에서 한 끼 식사 해결 위해서 결제할 수 있다.)
늘 그러하듯 담임선생님께서는 모든 반의 아이들이 다 알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그러한 것들을 전해주셨다. 굳이 숨길 것도, 거짓말을 할 것도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첫 아이가 입학하고 둘째가 입학하고 그리고 셋째까지 역시, 1학년 생활을 하면서 두세 번째 그것을 받아왔을 즈음.. 아이들은 왜 이것을 받는 두세 명 중에 본인이 포함이 되어 있는지를 물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무엇이냐며 많이 물어보기도 했다고 했다. 지금이야 나에게도 익숙한 일이고 어찌 되었든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상황과 내공이 생겼지만 그 당시에는 나에게도 무척이나 껄끄러운 이 상황에 대한 것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해서 한 참을 망설이고 그저 다른 말로 넘기고 했던 기억이 있다.
이미 그 나이 때 즈음 나에게 제대로 설명을 들은 첫째 아이가 둘째가 던진 말을 막아선다.
"가난해서 그런 건 아니야. 우리 집은"
아마도 내가 당시 첫째 아이에게 그렇게 가르쳤을 터.
"가난한 게 맞긴 해. 인정.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뭐 틀린 말도 아니지"
예전엔 그저 어떻게 설명하고 변명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던 나도 지금은 꽤나.. 뻔뻔해지긴 했다. 그래도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지금 아빠의 경우 수입은 어느 정도는 고정적이고 어느 정도는 불규칙하기도 해서 낮은 쪽으로 평가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소유의 집이나 땅 같은 재산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가정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부양가족은 많고 엄마도 맞벌이를 하고 있던 것이 아니니까. 만약에 아빠의 수입이 평균이라고 해도 우리는 인원수 때문에 지원을 받는 거지"
그저 그 정도로 설명한 것으로 아이들 앞에서 엄마 아빠의 자존심은 덜 구겨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거기서 멈춰도 괜찮을 것을..
우리는 아이가 셋이고, 결혼과 육아 생활을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그러하다는 등, 남들 공부하고 돈 벌 때 그것을 못 했으며 평균 성인들의 취업연령 결혼 연령까지 들먹이면서 우리 부부는 그 보편적인 기준에 맞지 않았었다는 등.. 점점 말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매번 누런 봉투를 받는 한 반의 두세 명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사실은 그저 게을렀고, 우울했고, 현명하지 못하게 굴어서였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한번 시작된 설명을 가장한 변명은 점점 길어지기만 했다.
누구를 향한 변명인 걸까?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서 더 이상 흥미가 떨어진 아이들에게?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만 같은 나에게?
지금은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삶을 살고 있으며 제 위치에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우리 집 가장이지만 그러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기에 이 누런 봉투를 그의 앞에서 집어던지면서 소리치고 싶던 때도 있었다.
당신 때문에. 아이들이 이런 것을 받아오는 한 반에 두세 명에 포함이 된다고.
당신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무능력해서 우리가 이런 시선과 평가를 받는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 나에게 시키지 말고 당신이 하라고.
아마도 그 사람도 나름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었으니 차마 내지르진 못 하고 그저 이런 것을 볼 때면 우울해진다고 이야기한 적은 있었는데 만만치 않게 우울했었던 그는 그런 나를 그저 외면하곤 했었다.
나는 그저 공감과 앞으로는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그럴 때면 그는 그저 더 땅 속을 파고 들어가곤 했었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난 더 우울해지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때와는 마음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 누런색 봉투를 볼 때면 꼭 세트상품처럼 아픈 기억들이 같이 떠오르곤 한다. 무능력하고 우울했던 철없는 우리 부부의 지나간 회색빛 시간들이.
그리고 여담이지만..
(경제적인 상황만 놓고 보았을 때 우리도 충분히 받을 만했고, 감사하게 잘 활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정말로 한 끼 해결이 어려운 아이들이 한 끼 식사에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사용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고, 정말로 교육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이 제대로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