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마음보다 현금을 원한답니다.
그 고마운 마음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요...
얼마 전,
친정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휴대폰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용건 없이 그냥 손주들 목소리 듣고 싶으시다고 집에서는 전화도 잘 받지 않는 아이들의 휴대폰으로 굳이 전화를 하시는.. (딸에게 그냥 전화가 뭐 그리 어려우신지;;) 성격이신데, 또 동시에 엄청 급한 부분도 있으셔서 어느 순간 지금 당장 이 말을 안 하면 내가 미칠 것 같아-라고 생각이 되시면 앞뒤 안 가리고 전화를 하셔서는 감정을 쏟아내기도 하시는, 극과 극을 달리시는 분이다.
이번 전화는
"네 엄마가 아프다고 아빠에게 안 왔는데.. 물론, 아빠가 네 엄마에게 오지 말라고도 했고.."
..로 시작하셨다.
부모님은 몇 년째 주말부부 중이시고 친정엄마는 평일에는 일을 하시고 주말마다 아버지에게 가셔서 일주일치 음식과 빨래 청소, 그리고 많은 농사일 등을 해 주시고 돌아오신다.
"몇 번 보기도 했는데, 자꾸 소화가 안 된다고 잘 못 먹고 자주 토한다고. 같이 지내는 네 동생에게 전화를 해 보니 누워만 있다더라. 사람이 우선이지 일이 우선이냐. 병원 가라고 했는데 계속 그러니 걱정이 되어서. 네가 엄마 좀 모시고 큰 병원 좀 가서 이것저것 검사 좀 해 봤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아야지 맨날 일만 한다고 그러다 쓰러지거나 큰 병이면 어쩌려고"
내 기억에 엄마는 일을 쉰 날이 없으시며 일을 못 갈 정도로 아프다는 것은 정말 심각하다는 것. 웬만해서는 아프다는 표현도 없으신 분이며 아직까지 기본적인 비타민조차 안 챙겨 드시는 분이고,
친정아버지는 정말.. 정 반대이시다. 내가 어릴 적부터 늘 혈압약과 비타민을 달고 다니시면서 조금만 아프시면 큰 병이 난 것처럼 병원에, 약 없으면 큰일 나시는 분. 그러니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가 아프시다고 하면 걱정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화가 나는 부분은 따로 있다.
"일이 우선인가, 사람이 먼저지"라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고 징글징글하게 들었고, 옳으신 말씀이긴 한데.
그래서요 아버지.
엄마가 만약 병원 가서 검진받고 큰 병이라고 한다면 그 검사비용과 수술비 입원비 등은 누가 해결하는데요?
불효 막심한. 정말 싹수없는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고. 나도 이제 성인인데 어느 정도는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 도움이 되어 드릴 수도, 해결해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랄까. 어릴 때부터 쌓인 분노랄까. 투정이랄까.
'엄마가 왜 그렇게 병원도 안 가고(물론 성격이긴 하지만) 일만 하는 건데. 그렇게 독한 사람이 되도록 누가 만들었는데. 주말부부가 되어서 평일에도 못 쉬고 심지어 주말에는 더 힘든 이 상황을 누가 만들었는데. 쉬라고? 어떻게? 현실적으로 엄마가 단 하루도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 놓으셨으면서 왜 그렇게 미련하게 일만 하느냐고 구박 아닌 구박을 하는 이유는 뭔데?'
아버지는 진심으로 엄마를 걱정하신다. 그 진실한 마음을 나도 엄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물론 엄마의 부지런함과 일중독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내 아버지에게 있기도 하다.
감정적으로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사람이 좀 몸도 아끼고 쉬어가면서 병원도 다니고 이상하다 싶으면 검사도 해가면서 생활을 해야 하는 게 맞는데, 그 일을 쉬고 병원을 다니고 검사를 해 보고 그러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아버지는 전혀 도움이 못 되고 있었고, 심지어 그 상태가 아주 오래되었으면서 왜 사과나 위로는 못해줄 망정 그런 식으로 만 표현을 하시느냐는 거다.
사람 속상하게.
아마도 엄마에게 필요한 부분은 감정적인 걱정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서 도움이 되거나, 하다못해 같이 열심히 사는 모습일 텐데.
최근,
아이 셋을 두고 내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안부를 전할 때면 괜찮으냐고 물으셨다.
"할 만 한가..? 네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애들도 보는데 일도 하려니... 그래도 어쩌니.. 해봐야지.."
그러시면서 내년에는 다른 농작물을 심어보기로 했으니 수확하면 가져가서 어떻게 잘 요리해서 먹으면서 건강 챙기라는 말씀을 함께.
아이고 아부지!!
"가족들 먹을 것도 좋지만 돈이 되는 걸 하셔야지!! 몇 년째 힘들게 하셔서 돈은 하나도 안 되고 그저 나눠주기만 하면 뭐해요!!"
아이고 속 터져.
하라고도, 하지 말라고도 못 하시고 워킹맘이 된 나이 많은 딸을 걱정하시는 더 나이 많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늘 '괜찮다'라고만 하다가 최근엔 처음으로 '안 괜찮다'정도의 표현을 하는 중이다.
'그렇지 아부지? 그러게 애 셋 보면서 직장 안 다니게 살림에 보탬이라도 좀 되어주시던가. 흙수저라도 좀 쥐어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하다못해 주말에 농사일 도와달라고 오라고 하시지는 말던가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번에도 거기까지는 내지르지 못하고.
폐차 직전에 심지어 일부 유리까지 깨진 아버지 차가 떠올라서 그냥,
"돈 많이 벌어서 아버지 차 한 대 뽑아드릴까 하고요"라고. 진심으로 바라지만 현재로써는 실현 가능성 없는 빈 말만.
차는 무슨. 그런 건 괜찮으니 몸이나 잘 챙기시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또 괜히 짜증이 난다.(짜증을 표현하진 않았다) 아직 60대. 어찌 보면 아직 충분하실 나이이신데 돈을 버는 것조차 잊어버리신 듯한 모습에 많이 씁쓸하고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어린 시절 늘 아버지가 마음 한구석 못 미덥고 때론 불만을 가지며 성장했지만, 나도 나이가 들고 아이들을 키우고 경험들이 생기면서 알지 못했던 아버지가 보이기도 하고,
무뚝뚝한 엄마 옆에서 평생 마음 위로받을 곳 없이 외로움 안고 지내셨던 것도 이제는 알겠고,
더 힘든 상황들도 많다는 것 충분히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당신께 투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