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 사이의 고요함이 몸서리처지게 불안했다가 짜증이 났다가 가라앉고 있는 중인가 보다. 톡을 보내도 답도 없는 폰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있다가 나중에는 기다리는 내 모습이 짜증이 나서 엎어놓아 버렸다. 더 성질나는 건.. 그럼에도 여전히 연락이 올 까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다.
주말, 나는 많이 아팠고.. 오전 내내 누워있던 나는 뭘 먹고 싶지도 않았지만 가족들이 있으니 배달식을 시켰으며, 밥 한술 겨우 뜨고 들어가서 잠시 누웠다가 나왔을 때 식탁 위에는 남은 음식과 빈 그릇들이 그대로였다. 왜 안 치웠어? 혹은 그냥 이대로 두면 어떻게..라는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고(그저 한마디 정도였다), 아마 짜증 섞인 한숨도 함께였을 것이다. 듣기 싫었겠지.. 인정은 한다.
내 말을 듣자마자 그는 화가 잔뜩 묻어난 걸음걸이로 주방에 와서 수저를 싱크대에 집어던지듯이 정리 아닌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분쟁을 싫어하는지라 평소 같으면 보기 싫었어도 일단 그냥 참고 넘어가거나 같이 입을 꾹 다물었을 텐데. 내 기억에는 처음으로.. 아이들이 옆에 있는 그 공간에서 그냥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현기증이 날 만큼 아팠고 계속 못 먹었기에 내가 했던 말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왜 집안일은 다 내가 하는 게 당연한 거고, 당신은 도와주는 입장이어서 어쩌다 집안일 좀 하면 내가 늘 고마워하길 바라느냐고.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고. 나도 그동안 외벌이 였던 당신이 벌어오는 돈 아껴 쓴다고 매번 아등바등 사고싶은거 필요한거 안사고 하는 것으로나마 경제적인 부분에 도움이 되려 했고, 별 도움 안되겠지만 그렇게라도 당신의 역할인 부분(돈문제)에 대해 같이 신경 쓰고 고민하려 했었고. 이제 애들 조금 크고 시간 조금 생겨서 적은 돈이나마 같이 벌어보겠다고 나가는 건데.
같이 하고 싶다고. 돈 버는 것도 집안일도. 그런데 왜 집안일은 늘 스스로 알아서는 안 하고. 시키면 싫어하고. 그래서 뭐 하나 부탁하는 것도 너무 어렵게만 만드냐고.
당신이나 나나 바깥 일하는 시간은 같은데, 오죽하면 내가 뭐 하나 부탁하고 시키는거 어렵고 눈치보다가 돈 몇 푼 못 벌어서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등등.
그렇게 소리 지르듯 울듯 하소연하듯 쏟아내었었다.
마구마구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부부 싸움하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다고 할 만큼.. 그저 화가 나면 입을 다물어버리는 답답한 부부이니까. (아마 이제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거 한번 봤다고는 하겠지) 그래도 할 말 못 할 말 조금 더 가려서 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는 있다. 같은 말이라도 단어 선택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도 있으니까.
집안일 한두 개가 쪼잔하게 보일만큼 소소한 거라 매번 하라고 하기도 시키는 것만 같아서(시키는 게 맞긴 하다) 정말 불편했고, 그렇다고 그가 스스로 안 하는 날 내가 다 맡아서 하자니 일이 너무 많았다. 나는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워킹맘이었으니까.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그래도 신경을 쓴다고 설거지도 종종 하고 간혹 세탁기도 돌리고 가끔은 빨래도 접어져 있었고 월차 냈던 날에는 걸레질까지 죄다 해놓았다. 분명 그도 나름 많이 신경 쓰긴 했을 것이다. 내가 말을 하지 않은 부분도 스스로 하기도 했었다. 인정은 한다. 그의 그런 변화들이 좋았고, 가끔 우렁 신랑이 있는 것 같다며 좋다고 고맙다고 일부로 잘 못하는 표현을 하기도 했었는데.
좋은 날이 있으면 안 좋은 날도 있는 법. 그 소소한 그릇 몇 개 설거지조차 하지 않은 날이 일주일이 넘어가면 나는 슬슬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앞에서는 피곤해서 라면서 그의 취미는 빠짐없이 실행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참 웃긴 게 그런 걸 하나하나 말하자니 너무 치사한 것 같고. 그냥 내가 다 하자니 괜히 억울하고.
집안일은 혼자 충분히 다 할 수는 있는데 간단하게라도 매일 했던 내 운동, 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던 중이었다. 기존에 아이들 학습을 신경 쓰던 부분도 당연히 마음 불편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포기, 심지어 글 쓰는 취미조차 전혀 못 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공부하고자 하던 것도 따지고 보면 돈을 벌기 위해서이니까. 같이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 좀 관심 가져주고 도와주면 좋겠건만. 간혹 집안일도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하면(나는 그저 조금 더 도와주겠다는 말을 기대했는데) 돌아오는 소리는 '그럼 일 하지 마'였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나를 생각했던 말일 테지만 당장 카드값도 힘든 게 현실이었으니까.
나는 그저 같이 돈 벌고, 같이 돈 쓰고, 같이 집안일하기를 원했던 것인데.
아마도 그는 그동안 나름 나에게 신경 쓴다고 했던 것이 다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한참 뒤에야 들었다(내가 잘못짚었을 수도 있다). 내가 서운함이나 불편함을 표현하면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보다 늘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되려 서운하고 무시당했다고 느꼈다던 사람이었으니까.
어떤 생각,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나 만큼이나.. 입을 꾹 다물어 버린 그도 힘들거나 화가 난 것이라 예상된다. 아마도 상처가 쌓인 나는 그에게 그 상처를 전달했겠지. 그래서.. 늘 그에게 내 불편한 감정을 전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고민만 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더 정리해서 그도 나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을 하고 싶었고, 그래야만 했었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