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 라이프? 사치스러운 취미생활.
결혼생활 _ 불안하지만, 일단은 한걸음 더.
내 어릴 적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 즈음.. 정확히 1년 태권도 학원을 다녔던 시기였던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는 못해서 좁은 선택지 속에서였지만 다른 그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던 나는 그 시간이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당시에는 짧은 1년 동안 놀이 삼아 배웠던 기본 발차기와 찌르기를 몸이 기억하고 있었고 그것이 나에게 소소한 기쁨을 줄 만큼.
뒤돌아 생각해보면 난 근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운동장 한구석에서 노는 것도 좋아했고, 철봉 위를 곧잘 걸어 다니기도 했으며 아파트 담벼락을 넘어 다니는 것을 즐기기도 했고, 자전거도 혼자 배웠던 아이였는데, 더 하고 싶었음에도 그만 하자는 부모님의 말씀에 그저 네-라고 했었다.
그 뒤로 열아홉 살 때였나 스무 살 때였나.. 친구들과 딱 한번 강촌에 놀러 가서 자전거를 빌려서 정말 신나게 타고 왔던 일도 있었고.
그게 전부였다. 재미있다고 기억하면서 몸이 격하게 움직이면서 숨이 차오름과 동시에 약간의 스릴과 흥분으로 심장이 뛰었던 것을 느꼈던 것은.
그가 약 10개월을 기다린 겨울이 왔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스노보드를 타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보드 장비들이 집 안 한구석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는 혼자 놀러 다니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을 것이고, 나와 같이 타러 다니고 싶은 마음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면서 가르쳐주려 애썼다.
나는 약간의 고소공포증도 있고, 아주 약간의 불안증도 있어서 스키장이 익숙해진 지금도 여전히 리프트를 탈 때 안전바를 잡지 않으면 불안한 성격이다. 그런 내가 경사진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속도를 내며(사실 남들이 볼 때에는 아주아주 느리긴 하다) 내려오는 움직임이 성공했을 때, 무섭기도 했지만 성취감과 흥분감에 더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뛰는 것을 느꼈다. 요령이 없어서 온 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음에도 또 따라나서는 것은 그래서일 거다.
아이들에게는 성취감이 중요하고, 운동은 꼭 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그것을 내가 느끼면서 살아본 적은 과연 있을까?
아주 작게 보이는 딸아이의 모습.
평생을 스스로 엄청난 몸치라고 생각하며 살았다(아마도 맞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유독 오래 걸리고 어려워하는 것은 성격 만은 아니었다. 나는 무엇이든 배우는데 오래 걸리는 편이었는데 몸을 쓰는 일에서는 유독 더 그러했고, 타고난 체격이 작고 근력이 없음도 한몫을 더했다. 그럼에도 나는 늘 격한 운동을 잘하거나 격한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바라보기만 했었다. 당시 태권도를 계속 배웠으면 좋은 취미나 어쩌면 직업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익숙해지기도 전에 포기해버리면서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거나 잘할 수 있는 것도 모른 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처음에 선뜻 그를 따라나서지 않은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사실 살면서 그동안 매번 무언가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표면적인 이유는 '돈'이었다. 어릴 때는 나 혼자 부모님의 눈치를 보면서 학원비 내달라는 말 한마디를 못 했었고. 20대 언젠가, 처음으로 내가 번 돈을 내고 몸치 탈출을 위해서 '재즈댄스'학원에 등록을 했을 때도 못했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있었는데.. 두세 달만 하고는 돈 계산을 하면서 그만두어버렸다.
다른 데서 재미를 찾았으면 그걸로도 좋았을 텐데, 늘 생각만 하고 멈추어버려서 살면서 단 한 번도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도하고 노력했던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는 바로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돈 잘 버는 직업도 아닌 외벌이라(심지어 그것도 없을 시기도 많았다) 돈도 여유가 없었지만 몸도 마음도 더 여유라고는 정말 눈곱만치도 없는 시간을 보냈었는데, 그중 내 마음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그는 나름 본인의 취미를 다 즐기면서 살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답답한 일상을 탈출한 것 같은 바깥바람이 좋았다.
늘 그러했듯 이번에도 내가 그의 취미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일단 시즌권에 여러 장비 구입에, 왔다 갔다 하는 교통비와 최소한으로 줄인다고 해도 약간의 식비가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 수준에 엄청난 고가의 취미활동이었지만, 팔이 부러졌어도 뛰쳐나가고 싶어 하는 그를 내가 억지로 막아선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특히 더 그 취미를 같이 즐기고자 하는 가까운 지인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만두기 어려웠고, 나 역시 이왕 이렇게 된 것 아이들에게도 강습비 안 들이고 직접 가르쳐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했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들은 벌써 눈썰매를 졸업했고 겨울마다 스키캠프 안내장이 날아왔으니까.
진심으로 배워보고는 싶었는데 용기도 없었고 돈은 더 없는 상황. 처음에는 나 하나 함께 가지 않으면 내 경비와 장비 구입 비용 등이라도 아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는데.. 그러다가 또 억울함만 남을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마이너스 인생. 나 혼자 안 한다고 해결될 수준의 문제도 아니고.
이제 겨울 시작인데 벌써 지출이 어마어마하다. 특히 아이들 키우는 데 있어서 다른 건 몰라도 운동만큼은 꾸준히 가능한 많이 시키려 하는 욕심이 있는 편이라 스키장도 가끔 함께 다녀야 했는데, 아이 셋이라 각각 장비 등을 중고로 구입하던 갈 때마다 대여를 하던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눈 바닥에서 굴러다녀도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와서 카드값을 보면 또 우울해진다. 이러한 우리의 소비 수준을 부모님들이 아시면 기절을 하실 것이 뻔하니 아이들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스키장 다닌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평생 일하고 아끼고 돈을 모으고 불려서 그 돈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세대이시니 엄마 아빠의 이런 취미를 이해하기 힘드실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리고 너희도 친구들 해외여행 다니고 스키장 다니고 하는 것 듣고 와서 부럽다고 하잖아?라는 변명도 함께.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알지만.. 죽어라 돈 모아도 집 한 채도 못 살 것 같은 지금 시대에, 그렇게 평생 하고 싶은 것 못 하고 남들 즐기는 것 바라만 보면서 우울해하면서 늙어버릴 것 같아서 무서워졌다.
아이들을 키우면서까지 피 터지게 맞벌이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나름 평생 무언가를 참고 절제하며 심지어 배움에조차 아끼면서 살았는데 결과가 이거라면..
우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무엇이든 배움에 있어서
시도도 하지 않고 먼저 포기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