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게임중독이었다. 01

결혼, 부부생활 _ 지금 생각해보면 연애시절부터 그러했었는데..

by 누리달


그의 게임에 대해서 나의 가장 첫 불편한 감정의 기억은 그의 '성년의 날'이었다. 우리는 그가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던 즈음부터 사귀기 시작했었는데, 술은 많이 못 마셔도 술자리를 좋아하던 나와는 달리 그는 게임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함께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기도 했었어서 잘 몰랐었는데 사귀고 서너 달이 지난 즈음부터 그는 부쩍 PC방에 있던 시간이 길어졌었고, 나는 아무리 남자 친구라도 타인의 삶에 대해 크게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이벤트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보다 약간 나이 어린 그의 '성년의 날'이었기에, 미리 약속된 것은 아니었지만 꽃 한 송이와 사용하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향수. 그리고 책 한 권을 선물해 주러 그의 집 앞에 갔었다. 아마도 어딘가 다녀오던 길이었을까.. 아님 그저 약속을 하지 않은 날이어서였을까. 그저 전해주고만 가려했었는데.


집 앞 PC방이라는 그에게 잠시 나오라고 연락한 지 한 참이 지나도 나오지를 않아서 기다리다 지친 내가 직접 찾아 들어갔을 때 내가 마주한 풍경은 매캐한 담배연기 속에서 후줄근한 모습으로 정신없이 게임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었다.

순간, 그의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을 아마 처음으로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당시에는 그 심각성에 대해 생각해보질 못했으니 그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다'라는 감정의 기억은 후에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고.


(그 뒤에 그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었던 날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딱 보아하니 그는 그것을 멈추고 내 얼굴을 몇 분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에. 그리고 같이 게임하는 지인들도 옆에 있었던 것 같으니 그저 스윽 전해주고만 나왔다. 하던 게임 한 판을 다 끝내고 나서야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결국 그날 우리는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스무 살의 그는.. 흔히 보이는 남들처럼 대학에 가질 않았다. 아니, 못했다 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나 역시 대학도 못 가고 그렇다고 재수학원을 다니지도 못 하고 방황하던 백수로써의 스무 살을 보낸 경험이 있었기에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 보내거나 게임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에 대해 관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특히 내가 잘 못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너는 잘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싫어했다(내 아이들에게는 다르다). 나도 못 하는 걸 누구보고..?


때론 만나고, 때론 각자 놀고. 연애는 하지만 각자 (이성) 친구도 그대로. 그게 나의 연애 스타일이었다.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본인은 상대를 만나면 상대에게 올인한다며 나와는 다른 연애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했던 그는(연애관이고 뭐고, 그저 어렸으니 아마 말만 그리 했던 것일 듯) 처음 두세 달은 모든 것을 나와 함께 하려고 하고 싶어 했으나 나중에는 나의 그러한 연애관을 더 좋아하는 듯 보였다. 나를 만나는 잠시의 시간만 제외하면 그는 맘껏 게임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의 긴 게임 역사 중 대부분을 함께 한 경험에서 볼 때 어쩌면 나를 만나기 시작하던 그 당시에 게임을 잠시 쉬고 있던 기간이라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단지 하고 싶던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되어서 그때부터는 하던 대로 게임에 더 집중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게임을 하지 않던 그를 만났고 좋아했던 것이고 그가 게임에 빠져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그는 하던 대로 했을 뿐이었을지도.






내 기억에 첫 번째로 '이건 좀 아닌데?'라고 생각했던 때는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였다.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그가 연락도 하지 않고 많이 지각을 한 날이 있었다. 일은 잘 못해도 한 달이던 두 달이던 일을 하는 동안에는 출퇴근만큼은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나로서는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 전화도 계속 받지 않고 한 참이 지난 뒤에야 온 그는 근처까지 왔었으나 빼먹은 것이 있어서 다시 되돌아갔다 왔다는 핑계를 댔다. 상식적으로 그렇다면 미리 연락이라도 해 주던가 아니면 일단 그냥 출근해서 얼굴도장 찍고 다녀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는 게임을 하다가 늦었던 것 같았다.


그때에는 그것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어렸고 그 정도의 실수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였다고 생각했다. 친구들 중 누구는 술만 마시면 개가 되어서 동네방네 소리치고 다녔고 누구는 연애한다며 웃다가 울다가 했으며 누구는 성인이 되었다고 집에서 가출을 하기도 했다. 한참 채팅이 유행하던 시절이었기에 얼굴도 보지 못한 모니터 넘어의 사람에게 설레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고, 실물을 보고는 한번 보고 반하거나 혹은 도망가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학점 신경 써가며 놀았던 이들도 있고.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면서 돈 모으면서 놀았던 이들도 있고. 그저 목표도 목적도 없이 시간낭비처럼 보이는 그러한 시간들에 충실한 이들도 있었으니.


인생 길게 보면 20대 초반의 1~2년 정도는 잠시 쉬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던 것이 당시의 내 안일한 생각이었고, 그것이 그렇게도 오랫동안 내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작가의 이전글욜로 라이프? 사치스러운 취미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