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게임중독이었다. 02

결혼, 부부생활 _ 그는 나와 게임 둘 다를 잡고 싶어 했다.

by 누리달


5년을 연애하고(중간에 군대 생활이 있긴 했다) 결혼해서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우리 둘이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는 연애시절 PC방에서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가 군대를 가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니 아마도 권태기라고 할 만큼 오래되었던 것 같지는 않았던 그 당시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 둘은 그저 연인이니까 당연하게 만났고, 그는 나에게 '공성'이 있다며 함께 PC방을 가자고 제안했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여럿이 모여서 성을 빼앗는.. 뭐 전쟁 같은 거랬나. 어차피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해도 특별하게 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한두 시간쯤이야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옆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하며 시간 때우고 있었는데(나는 PC방에서 오랜 시간 재밌는 일이 없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모니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참다 참다 도대체 이건 언제 끝나는 거냐고 물었더니 예상시간이 최소 4시간이라고 했다.

그럼, 그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거잖아?


지금도 그러하지만 나는 감정표현이 서툴렀고 화를 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은 무덤덤하게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지나가는 편이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감정 변화가 많지 않은 편이라 생각했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저 소심하게 좋아하거나 소심하게 서운함을 겨우겨우 표현하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그때에는 정말 기분이 나빴었는데. 내 감정이 왜 그러한지도, 또한 그것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그가 기분 나쁘지 않게 내 마음을 알 수 있을지를 몰랐었다.


고작 꺼낸 말이라고는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거였으면 미리 말을 하지. 굳이 나를 만나지 않아도 되었잖아. 나는 나대로 다른 약속을 잡았어도 되었을 일이고"

"그래도, 크리스마스잖아. 같이 있고 싶어서"


이게 같이 있는 거냐고. 너는 나를 네 옆에 앉혀놓고 몇 시간 동안이나 다른 사람이랑 있는 건데 이게 어떻게 함께 있는 거냐고. 이건 나와 함께가 아니라고.


그때 그렇게 따지고 게임하는 그의 옆에서 내가 어떤 감정인지 설명을 하고 알려주었어야 했는데. 그걸 못 하고 넘어갔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


어떤 특별한 날이라고 커플이 의무적으로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그저 미리 말을 했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저 나와 함께 있고 싶었다는 말에 나는 더 화를 내지도 못 했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도 못 했다. 그 뒤로 어떠했었는지.. 나는 그 네 시간을 다 기다렸었는지 아니면 그가 중간에 끊고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결국 그날 저녁은 함께 먹었던 기억만.






그는 그가 좋아하는 게임을 나와 함께 하길 원했었다. 그를 거쳐간 수많은 게임 중 몇 가지는 나에게 가르쳐 주며 함께 하기도 했는데 둘 다 노력은 해 보았지만 좀처럼 내 성격과 맞지도 않았기도 했고, 함께 시작을 했어도 어느 순간 그는 '함께'가 아닌 그 게임의 레벨을 올리는 데에 집중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하다 보면 재미가 없어졌다. 게다가 그렇게 집중할 때면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하는 그의 게임하는 시간을 나는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고 그러다가 그냥 포기하곤 했었다.


그는 나와 게임 동호회에서도 함께 하고 싶어 했다. 낯가림도 엄청 심해서 계속 거절을 했었는데 몇 번은 끈질긴 그의 권유로 그의 게임 동호회 모임에 함께 가기도 했었다.


그 모임의 첫인상은.. 정말 어두웠다. 대부분은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기에 당시 20대 중 후반쯤의 사람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어두운 피부에 검은 옷(실제로 그러하지는 않았다). 등 뒤에서는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나같이 게임 속 캐릭터, 싸우는 방법, 레벨, 공성, 얼마짜리 아이템 등 알 수 없는 외계어들만 몇 시간. 어느 집단이나 내 관심 분야가 아니면 그러하겠지만 이해가 안 되는 언어들을 들으며 앉아있자니 정말 다른 차원에 온 느낌? 사람 사이의 일상 대화가 거의 없는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일부는 그 당시 정말 게임폐인인 분도 있었을지도 모르겠고. 대부분은 각자 위치에서 해야 할 것들을 하면서 게임이 건전한 취미였겠지만 한참 배우거나 일하거나 혹은 즐기거나 해야 할 나이의 사람들이 모여 몇 시간, 수많은 시간을 게임을 함께 하고 또 밥 먹으며 게임 얘기를 하는 것이 엄청나게 이질적이고 (그 순간만큼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그중 내 남자 친구가 가장 심각했다는 것이 당시 내가 애써 외면하던 현실이었다.


20대 초반. 그 좋은 나이에 그는 그 어두운 곳의 중심에 있었고, 나는 그 상황이 그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 중 하나일 것이라고 착각을 했었다.






어린 내가, 더 어린 그와 결혼을 하기로 했을 때 어떠한 경력도 스펙도 없는 것은 그리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었다. 그런 건 나도 없으니까. 우리는 조금 늦었지만 너무 늦은 것도 아닐 테고. 아직은 무언가를 시작하고 할 수 있을만한 20대였으니까.


다만 그 와중에 조금 걱정되었던 것은 그의 지나친 게임사랑이었고, 그 와중에 그래도 괜찮다고 여겨졌던 부분은 그는 나랑 연애하는 기간 동안 게임 말고 어떠한 운동에 빠졌을 때도, 심지어 어떠한 드라마 등을 볼 때도 엄청나게 몰입해서 주변 상황을 잘 못 보고 다음날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무엇에도 '몰입'을 잘하지 못했었는데 그의 그것은 집중력이 좋고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장점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또한,

공부도, 일도, 취미도 무엇이든 아주 잘 해내는 남자 형제가 있는 친구에게 그 일에 대해서 의논을 했을 때, 그녀는 나에게 '남자들은 대부분 그러지 않나? 내 가족도 그래. 한동안 미친 듯 몇 날 며칠 밥도 안 먹고 게임을 하기도 하던데.. '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었기에 더더욱 그냥 '취미'로 여기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너무 이른 결혼을 하려는 나를 걱정하던 그녀가 생각하던 내 남자 친구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너무 부족한 능력이었는데, 나는 그저 지금 잠시 방황만 끝나고 갈 길이 정해지면 게임 속에서도 나오고 현실적인 능력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우리는 충분히 흔들리고 방황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중독'이라는 것이 끼어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에 맞추어서 해결책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었는데 어리고 무지했던 그 당시에는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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