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게임중독이었다. 03

결혼, 부부생활 _ 신혼과 임신. 당시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by 누리달

어린 내가 더 어린 그와 결혼을 했고, 친구들도 소꿉놀이하는 친구를 보듯 찾아왔었다. 우리는 우리의 짧은 인맥 몇 안 되는 지인들 중 첫 부부였고 심지어 신랑의 친구들은 대부분 군인 신분이라 참석을 못 했다. 당시 그는 긴장해서 '신랑 입장'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신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가 아직 아니라는 신호에 다시 되돌아갔고, '뭐가 저리 급하냐'는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들어야 했던 우리의 결혼식.


시댁에서 주신 자그마한 아파트 한 채에서(그것이 있어서 우리의 결혼이 가능했다) 우리는 그렇게 신혼집을 꾸리기 시작했고, 가구도 부족하고 커튼도 없어서 더 휑 하던 그 장소에 컴퓨터를 설치하자마자 그는 엄청 좋아하면서 결혼 전 그 신혼집에서 종종 혼자 잠을 자기도 했었다.


나중에야 든 의문이지만, 그는 나와의 신혼집이 좋았던 걸까? 혹은 간섭 없이 혼자 맘껏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았던 것일까?


더 우울해지기 전에 굳이 답은 생각하지 않기로.


방황만 하던 20대 초반을 막 지난 우리가 뭘 제대로 할 수나 있었을까. 그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영업직을 선택했고, 나는 아르바이트로 들어갔다가 수입이 나쁘지 않아 그대로 눌러앉았던 일을 몸이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잠시 쉬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임신이어서 그대로 가정주부가 되었다. 일찍 결혼했으니 2~3년은 함께 돈을 벌고 임신을 하자던 우리의 막연하고 허술한 계획은 그렇게 자연스레 사라졌다.






막연하게나마 임신을 하면 내 뱃속 아기의 상태와 먹을 것을 챙겨주는 남편을 상상했었는데 내 현실은 아주 많이 달랐다. (그나마 그래도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직업이라 산부인과는 거의 함께 다녔다) 내 몸은 구역질과 알 수 없는 변화로 매일 힘들었는데, 그는 그런 나에게는 별 관심 없어 보였다. 임신 중, 내가 가장 많이 본모습은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이었다.


때로는 컴퓨터를 두 대를 설치해서 같이 게임을 하고 싶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그의 게임을 방해하고 싶기도 했고, 너 따위는 나도 신경 안 쓴다는 듯 내가 더 무언가에 몰입을 하고 싶기도 했는데 조금만 오래 앉아있으면 멀미가 나는 듯해서 포기했다.


영업직이라 출퇴근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PC방에서 보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루 종일 낯설고 좁은 집 안에서 할 것도 없이 무료하게 있다가 저녁 즈음에 연락을 해보면 그는 오늘은 고객을 만난다는 말로 늦는다고 했다. 그렇게 말을 하면 나는 또 그의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일까 봐 무엇을 먹고 싶다던가 하는 말도 못 했다.


간혹 용기를 내어 "언제 와?"라고 물으면 "고객과 약속 있어"라던 그가, 잠시 뒤에 전화해서는 "지인 누구와 저녁 약속했어 같이 밥 먹자"라고 하곤 했다. "약속 있다며?"라고 물으면 "취소됐어"라고 했다. 미련하게도 나는 이런 왠지 모를 서운한 일이 몇 번 반복되고서야 그의 '고객과 약속'은 거의 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에게 있어서 나와 그냥 밥 먹는 일은 게임에 방해되는 시간이었고, 부모님, 혹은 다른 누군가가 함께 밥 먹자 라는 말이 나와서야 아내도 같이 먹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늦게 알았는데, 바보처럼 서운한 내 감정을 전달하지도 못 했다.


언젠가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외출해서 그에게 어디냐고 물었는데 지역이 중간에 나를 태우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동선이었다. 기다릴 테니 같이 들어가자고 했더니 나와 시간을 못 맞출 거라며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했다. 기다리지 말라며.


어느 날은 회사 일, 교육 등으로 외박을 해야 한다고 해서 문을 다 걸어 잠그고 자는데 새벽 즈음에 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해 놀라게 한 적도 있었고, 아주 여러 번 12시가 넘은 새벽에 기다리다 지쳐 전화를 하면 계속 받지를 않다가 전화해서는 5분이면 도착한다고 했다.


그는 늘 도착 5분 전에야 나와 통화가 되었다.

아마도 게임을 다 끝내고 나와서야 전화를 했을 것.

온갖 바쁜 척을 하던 그는 사실 늘 나와 5분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아침에 직장 상사가 집으로 불쑥 찾아오기도 했었다. 보통 직장인들이 출근을 하고 남을 시간.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서 내 남편이 좀처럼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남편 출근 좀 잘 시키라고 하고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영업직이라도 그 정도로 출퇴근이 엉망인 내 남편이나, 그런 일로 집까지 찾아오는 직장 상사나 참.. 대책 없었구나 싶은데.


허구한 날 회사도 제때에 나오지 않는 남편이나, 그런 남편을 그냥 두고 있는 아내나 마찬가지로 한심하다는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영업직은 늘 사람이 필요했으며 남편은 그의 가족들의 도움으로 영업실적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의 직장 같았으면 벌써 잘렸거나 그렇게 하지도 못했겠지. 그의 입장에서는 열심히 일을 했던 시간들도 분명 있을 테지만, 내 시선에서는 당시 우리는 그렇게 거의 공짜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내 심리적 경제적 문제들을 내 부모에게 단 한 번도 표현을 한 적이 없는데 결혼 초 그의 거짓 외박은 고지식하고 어린 나를, 이런 엄청난 일에 대해 그나마 자상하고 성실해 보이시는 시아버님에게라도 말씀을 드려야 하는 걸까?라는(결국 나는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못 했고, 어른들께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지금도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심각한 고민에 빠트렸다. 친구에게도 말 못 하던 그 사건들이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외박'보다 '거짓말'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내가 화를 내더라도 'PC방에서 게임하느라 외박'이라는 솔직함이 나에게 덜 상처일 것 같았는데 그는 늘 거짓말과 핑계를 만들어냈다.


첫 아이의 출산일이 임박했을 때, 아이가 언제 나올지 몰라 불안한 나는 그에게 최대한 멀리 나가는 약속은 안 잡았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는 또 그것을 본인의 직장 상사에게 전했나 보다. 오래되어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말을 들은 직장 상사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아기 때문에 남편이 일도 제대로 안 해야 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말을 했다며 나에게 전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마구마구 억울했는데 이것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평소에 늘 회사도 잘 안 나가고, 허구한 날 게임방에 있으며 일을 잘 안 하던 사람이, 내가 강요를 한 것도 아니고 이왕이면.. 가까이 있었으면..이라고 부탁 정도를 한 것을 가지고 꼭 내가 시켜서 본인이 회사 일을 제대로 못 한 것처럼 표현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심지어, 회사도 집과 멀지 않은데?

네가 못 하던 것을, 누구 핑계를 대려고?





첫 아이의 임신기간 나는 늘 혼자였고, 그가 집에 있는 시간에도 나는 혼자였다. 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그 시간 동안에도 그가 틀어놓은 내가 이해할 수도 없는 게임채널의 화면과 그것만 바라보는 그의 옆모습을 봐야만 했고, 그 이외에 함께 있는 시간엔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기에 함께 있는 시간은 혼자 있는 시간보다 더 외로웠다.


나는 임신기간 중 그저 몸이 힘들기만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를 위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종종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작은 공원에서 함께 걷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했고, 가끔은 그곳에서 뱃속의 아이와 함께 떨어져 버리는 상상을 했다. 그 작은 신혼집은 나에게 감옥 같았다. 많고 적고를 떠나서 주체적으로 내 돈 내가 벌어 내가 원하는 데에 쓰던 나는, 남편이 단 한 번도 돈 문제에 대해 뭐라 한 적이 없음에도 혼자 눈치 보고 그가 벌어온 돈을 쓰기를 힘들어했다.



게임중독 남편을 바라보는 나는 꽤나 심각한 임신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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