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스레 마우스와 키보드 누르는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문을 닫고 이어폰을 끼고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 중이지만 마음은 자꾸만 가라앉고, 나도 모르게 우울함과 무기력함과 짜증이 밀려온다. 물론 개학이 계속 미뤄지면서 내 시간이 없다는 등의 스트레스가 가장 컸을 것이라는 것, 인정은 한다.
그래도, 몇 년 만에 듣는 그 소리에. 심지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조건반사처럼 내 마음이 반응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나는 아직 그곳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구나.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그가 집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다들 힘들고 수입도 끊기는 등의 상황도 당연히 큰 문제이지만, 갑자기 집에 있게 되는 그의 시간도 문제였다. 집에서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취미인 겨울 스포츠도 겨울이 끝나면서 할 수가 없어졌다.
이제는 커버린 아이들과 함께 컴퓨터 게임도 하고 PC방도 데리고 가라고 큰소리도 치고, 지금도 진심으로 그러길 원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갑자기 한가해져서 몇 년 만에 잠깐씩 컴퓨터 게임을 하는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을 움츠린다. 머리로는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은 여전히 위축되는 이 이중적이고 웃기는 내 모습.
다 지난 일,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가 보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정신없는 육아에 나는 임신 우울증에서 벗어났다. 자그마한 아기는 나를 우울증에 빠져 있을 틈을 주지 않았고, 그는 첫아기를 낳을 때 같이 울고 벌벌 떨면서 무섭다고 탯줄도 자르지 못했다. 그런 소소한 공감이 나를 더 우울함에서 꺼내어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 새로 들어온 제3의 존재가 조금씩 익숙해져 갈 때 즈음 그 역시 본인의 익숙한 생활로 되돌아갔다. 그는 여전히 '영업'을 핑계로 나가곤 했고, 의심은 되지만 뭐라 따질 말도 없고 확인할 길도 없었던 나는 그에 대한 서운함을 내 작은 아이의 체온에서 위안을 받곤 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우리는 이사를 해야 했는데 그는 그때에도 별 관심 없는 느낌이었다. 그저 가까운 곳에 대충 몇 번 둘러보고 끝이었다. 돈도 별로 없는 상황,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결국 차도 없이 친정엄마와 움직여 겨우 가격 조건에 맞는 집을 구했다.
그 낡은 집 발코니 청소만 좀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임신한 몸으로 첫째를 끌고 힘겹게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다 들어왔을 때 게임하고 있던 그의 뒷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더 이상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할지 모를 만큼 낡은 집이었어도 눈에 보이는 것, 천정에서 떨어지는 페인트 가루 만이라도 대충이라도 치워주길 바랬는데, 그는 그저 다 했는데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식으로 되물었다.
청소라는 것이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를 것이라 누군가에겐 깨끗해도 누군가에게 더러울 수 있다는 것, 인정은 한다. 내 눈에 부족해 보여도 한 번씩 다 치웠던 부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벌써 끝내고 게임을 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 나갔다 온 것은 아니었는데. 결국 나중에 오신 친정엄마께서 보시고는 치워주셨던 기억이.
원래도 집안 청소 한번 안 하던 사람이라 거창한 것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는데.. 임신 중에, 가고 싶지 않았던 그 낡은 집이라는 것만으로도 우울했던 나는, 내 시선 내 환경에는 전혀 관심도 없어 보이는 그에게 그렇게도 서운했었다.
결혼하고 2년, 그는 많지 않아도 아껴 쓰면 둘이 살 수 있을만한 외벌이 수입의 반을 본인 용돈으로 썼다(그의 기억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말로는 영업비라 했지만 아마도 게임하는 비용과, 약간의 용돈 그밖에 담배값 등 이었을 것. 심지어 가끔 소소한 대출도 받았다. 게임 아이템을 키워서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설명도 간혹 했다.
결혼 2년 뒤 그는 돈이 쉽게 벌리던 그 직장을(지인 찬스 약발이 다 떨어지기도 했다) 그만두었고, 둘째가 태어났을 즈음 그는 또 다른 직장을 그만두었다.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그는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 산후조리원의 컴퓨터에서 게임을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가 그러는 동안, 나는 무얼 했을까? 그때도 그러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당시 내 모습이 참 답답한 건 인정한다.
나는 결혼 전부터 가계부를 쓰던 습관이 있었기에, 그가 사용했던 '용돈'의 세세한 항목만 모를 뿐 매달 그에게 가계부 내역을 보여줬었고 우리 집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업'이라는 무기가 있었고 나는 그의 그 영역까지 침범하는 것을 '간섭'이라고 생각했기에 듣기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한 그 앞에서 더 이상 그것에 대해 하나하나 따지기가 싫었다.
그가 내 '자식'도 아니었고. 듣기 싫어하는 말을 계속하는 것도 왠지 자존심 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듣기 싫은 말, 하기 힘든 말을 잘하는 '말재주'도 참 없었다.
그건 우리 둘 다 똑같았는데.. 더 말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하니 차라리 입을 다물어 버리는 쪽을 택했고, 그렇게 우리의 상황은 여러 가지로 점점 악화되어갔다.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던 나는 둘째를 정말 힘겹게 낳았다. 건강하지 못한 엄마 탓이었는지 아기는 첫째와 다르게 너무 약하고 예민했다. 심지어 나는 수입이 없는 상황이라는 부담감에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도 못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차피 없는데서 쓰던 생활비였고, 거기서 아이의 어린이집 비용쯤 별 것 아니었는데 그땐 그것이 그렇게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아무튼.
자주 아픈 둘째를 끌어안고 나는 같이 아팠다. 아이와 같이 약을 처방받아먹고 아이와 같이 수액을 맞는.. 특별한 병도 없이 일상생활조차 힘겨운 나날들. 하루 세 번 아기의 약을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그 세 번을 제대로 못 챙겼다. 아기가 끊임없이 아팠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어찌어찌 분유도 타 먹이고 이유식도 해 먹이고. 그래도 첫째 하루 세끼 밥은 챙겨주었지만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 와중에 그는 본격 백수 게임 생활을 했다. 하루 한번 정도 청소기 청소 혹은 설거지를 하고, 하루 한두 번 정도 분유를 타서 먹이고, 아기를 하루 한번 정도는 재워주었다. (아기는 밤낮없이 두 시간마다 분유를 주고 재워주어야 했다)
물론,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에게는 나름대로 예민한 둘째를 힘겹게 재웠던 기억들이 있으니까.
그래도 아무리 양보해도 내 기억에는 두 아기의 수많은 잠투정과 분유와 기저귀와 집안일에 대해 그는 그 정도의 집안일만 하고 '나는 도와줄 것 다 도와주었어'라는 태도로 보였다.
그리고 24시간 중, 그 정도의 일과 약간의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을 그는 모두 게임하는 데 사용했다. 허리를 비롯해서 여기저기 아프다는 입버릇 같은 말과 함께.
당시에도 내가 그를 '게임중독'이라 판단하지 않았던 것은 그 정신질환에 대해 무지했던 것도 있지만 그 단어가 주는 느낌만큼 그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3개월~6개월 단위로 아주 잠깐씩 게임을 쉬는 기간도 있었다.
단지 그가 게임을 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것이고 취직이 잘 안 되어 방황하고, 고민하며 그저 남는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것이었을 것이고 집안일은 관심도 없고 '아내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아내가 그런 반쯤 정신 나간 모습으로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첫 아이 때 임신 우울증에 시달렸던 나는,
둘째 아이 때에는 육아 우울증에 시달렸다.
빽빽 울어대는 여리고 작은 아기를 한겨울에 발코니 밖으로 보내고 문을 닫아버리고 싶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