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글로 마음을 전해보려 합니다. 아마.. 제 기억으로는 약 10여 년 전, 아버지께서 더 이상 일을 못(안) 하시고 집안에서 스트레스만 받고 계실 때 보냈던 이메일이 마지막이었지 않나 싶네요.
우선,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에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내 가까운 주변도 돌보고 챙기지 못할 만큼 여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변명이고 핑계이겠지만 아버지뿐만 아니라 내 오랜 친구들도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삶을 산지 벌써 몇 년입니다. 아이가 어리면 어려서, 아이가 크면 경제적 상황으로 비교되어서라는 이유로 제 인간관계는 점점 좁아지기만 합니다.
제 아이들은 이곳으로 이사를 하고 난 후, 아침 등굣길을 나서면서 가장 먼저 널브러진 쓰레기를 마주합니다. 몇 달 전의 쓰레기들이 계속 정리가 되지 않고 쌓여있는 빌라를 벗어나면 학교 가는 길 곳곳에 개똥이 있습니다. 세 녀석들은 그 개똥과, 가을에는 청소도 제대로 안 되어서 불쾌감을 주는 은행을 지뢰 피하듯 피하며 등교합니다.
이곳은 아이들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입니다. 내 삶을 간섭하는 아이 친구 엄마가 없다는 것은 나에게는 좋은 일일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친구를 초대하는 게 소원입니다. 그나마 셋이라 집에서 함께 할 형제가 있어 다행이지만, 집도 멀고 학원들을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노는 시간을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네요.
아들의 자전거는 1년째 방치되어 있습니다. 위험한 골목길을 나서자마자 신호등도 없는 작은 도로에 인구가 많지도 않은 구석진 곳이라 차들은 빠르게 달려서 제가 반대를 많이 합니다. 걸어서 20~30분 거리의 공원까지 끌고 가보기도 했으나 왔다 갔다 하는 길이 험해서 쉽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 아들도 포기를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투정 한번 없이 어른스럽게 자라서 대견하다고 하시는 큰 손녀는 2년 전쯤인가.. 왜 엄마는 차도 없느냐며 혼자 구석에서 숨죽여 울었습니다. 친구들이 다들 어디선가 모인다던 그때, 동생들 둘이나 있고 쉽게 움직이기 어려웠던 상황이라 차 없이는 못 간다고 했을 때, 아이는 평소에 묵혀두던 감정을 꺼내며 서러워했습니다.
사는 동네가 그리 부유층 동네도 아닌데 아이 키우며 차 없는 엄마들이 흔치 않더라고요. 이제 나이가 있으니 제 친구들 중에서도 차 없는 건 저 하나 남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해지면서 저는, 비싼 마스크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하루 종일 반복했습니다. 다섯 식구의 일회용 마스크는 10만 원을 투자해도 한 달도 버티기 힘들겠더라고요.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일회용과 천 마스크를 적절히 함께 쓰고 있습니다.
물론 남편은 지금 착실하게 적당히 돈을 벌어다 주고 있고, 저희는 당장 살 집도 있고 헌 차 팔고 새 차도 구입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적당히 할거 다 하고 즐기기도 하면서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곳 집주인의 변덕이라던가 이곳이 재개발 같은 변수가 생긴다면 저희는 또다시 없는 돈에 전세나 월세를 구한다고 뛰어다녀야겠지요.
꿈도 목표도 없이 그저 그런 10대를 보내고, 아이 셋 키운다고 나가서 돈 벌면 잃을 것이 더 많을 것 같아서 집에서 수입 없이 가정주부로 보냈습니다. 사교육 없이 아이 키운다고 학습지 한 번을 안 시키고 아등바등했지만 그동안 제 자존감은 많이도 낮아졌지요. 처음으로 배우고 싶은 것이 생겼고 도전했는데 또다시 돈에 막혔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최저시급이라도 받고자 일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때.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도 가고 싶다고 했던 제게 그러셨지요. 배운 것과 상관없는 직장 다닌다고 애들도 못 보고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듣다가.. 참다가.. 제가 그랬지요. 지금 당장 생활비도 늘 모자라는데 그 2년의 등록금과 그거 한다고 쓰일 내 용돈은 또 어찌 충당하냐고. 심지어 돈도 못 벌면서. 그걸 내가 어떻게 하냐고.
훨씬 더 말씀을 많이 하셨던 아버지는 내 짧은 투정이 듣기 싫으셔서 화를 내고 끊어버리셨습니다.
나는 최근 아버지를 뵈러 가는 것을 최대한 미루고 피하고 했다. 거기에 불만이 많으심을 직접 말씀 안 하셔도 느낄 수 있었다.
몇 달 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몇 달 전부터 편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이곳에 먼저 정리를 해 보기로.
투정이 너무 길어지면 안 될 테니.
최대한 짧게 내 상황과 마음만 전하고 싶은데 계속 길어져서 마무리가 되질 않는다.
위에 쓴 편지를 읽다 보니 꼭 구질구질한 내 상황을 전하고 돈이라도 빌려보겠다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혀 아닌데.
며칠 전,
코로나 19에 대한 뉴스를 오랜만에 자세히 보셨다면서 너무 심각하다는 말씀과 함께 며칠간 청정지역인 그곳 시골로 내려와 지내면 어떻겠냐고 전화를 하셨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신다고.
남편은 조금 쉬었지만 간간히 출근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셨다. 그러곤 마음대로 하라고. 코로나 19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걸리지 말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시고 끊어버리셨다.
걱정하시는 마음은 잘 알겠으나 아마 본인 생각과 다른 결론으로 마음이 상하셨겠지.
코로나19가 오고 회사가 쉬고 월급이 줄거나 없어도 우리는 대출이자를 내야 하고 그 대출이자 속에는 얼마가 되었던 예전에 두 분께서 빌리셨던 것에 대한 이자도 있는데.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돈은 빌려준 사람이 죄인이 되는 거랬나. 그것도 심지어 부녀지간이라 그딴 걸로 쪼잔해지기 싫은데. 내 상황이 참 그렇다.
둘이 죽어라 일해도 한 사람의 최저시급도 안 나오는 그곳에서 체질에도 안 맞는 농사일을,
아등바등 당장 돈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해보려는 나의(우리의) 시간들에 대한 가치는 다 포기하고?
봄이라 일이 부쩍 많아진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고자? 심지어 그 농작물들 수확하면 팔지도 않으시면서.
생각은 많고 점점 쌓인다.
나는 그저,
내 상황이 이러이러하니 주말에 아버지를 보러 갈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습니다. 서운해하지 마세요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가끔씩 주말에 부모 보러 가서 농사일 좀 도와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며 죄책감에 시달렸을 때가 있었으나, 우리에겐 우리의 입장과 우리가 겪은 상황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욕먹을지언정 이기적이 되기로 했는데.
그럼에도 마음 한편 불편해 자꾸만 설명과 변명이 하고 싶다.
정리해서 간단하게 상대방이 마음 상하지 않게 전달하려면 아직도 시간과 요령과 공부가 더 필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