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에서 느껴지는 구질구질함.

반성. 아버지께 보내는 이어지는 편지는 없다.

by 누리달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을 한 참을 써 내려가다가 다 쓰지도 못 한 그 글을 다시 읽어 보면서 내가 얼마나 찌질한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너무 창피해서 글을 지울까 하다가 그 찌질함도 나이므로 그냥 놔두기로.


편지, 보내지 않고 그냥 여기에 먼저 써 보길 잘했구나.

'아버지께 보내고 싶은 편지 02'편은 없다.


우리는 결혼 후 가장 돈이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지난 시간 중 그 어느 때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때론 대출이자에 시달리고 카드값에 한숨 쉬고 집과 저축과 약간의 인간관계를 포기했지만,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소확행을 찾고 사치를 부리기도 한다.


그런 내 삶에 스트레스를 받는 큰 부분은(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명절이나 가족 행사였다. 많이 피하면서 지내긴 하지만 이건 마냥 피하기가 좀 힘들다. 양쪽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함부로 하시는 분들은 아니셨고, 상황을 뻔히 아시기 때문에 무리한 것들을 말씀하시는 것들도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시선에서 '그 아주 가끔 아주 조금'이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버겁게 느껴지는 법이다.






아버지께 정말 죄송하지만 내 아버지는 전형적인 '꼰대'이시다. ‘내로남불’ 사상도 강하셨다. 털어 내야 속이 조금 풀린다면서 오랜만에 보는 사위 앞에서 처가 식구들의 험담도 하실 수 있는 분이셨다. (이 부분에 대해선 참다가 내가 뭐라 해서 최근에는 조금 덜 하시긴 한다)


농사일을 시작하시면서 바쁜 철에는 우리도 자식으로서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직장인들은 주 7일 중 겨우 쉬는 하루, 왕복만 최소 세 시간인 거리.

시작은 아니었지만 심지어 지금 아버지의 농사는 '수익'목적도 아니었다. 일머리도 없으셔서 도와드리러 가면 아버지는 이것저것 신경만 쓰시느라 그저 돌아다니시기만 하시는 게 농사일을 전혀 모르는 우리 눈에도 보였고, 그건 정말 기운 빠지게 했다. 그렇게 주변 사람 힘들게 한 농작물을 자식들 먹으라고 했다고 팔지 않는다면서 생색내셨다. (팔아서 수익을 내기엔 너무 적고 먹기엔 지나치게 많아 많은 양이 버려지는 그것들)


외로우신건 충분히 이해를 하나 말씀은 많으셨고 술을 드시면 더 심하셨다. 심지어 내 남편은 어른들과 잘 친해지거나 일을 스스로 찾아서 잘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맥주 한 잔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시골 어른들의 독한 소주 종이컵 한 잔을 권유받는 날이면 더 힘들어했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씩 아이 셋과 버스로 두어 시간 가서 시간 보내고 남편보고 데리러만 오라 했는데 그것도 이제 지쳤다. 나는 언젠가부터 최대한 피하면서 시골을 가야 할 일이 있으면 며칠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꼭 몸이 아팠다. 아버지 눈치 보고 남편 눈치 보고 엄마에게 죄송했다. 다녀오면 큰 숙제 하나 끝낸 기분.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시간이란 말인가.






나와 동생은 결혼할 때 부모님께 금전적 도움은커녕 돈을 빌려드리고 받지도 못 했다. 심지어 대출이었는데 계속되는 이자만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동생은 결혼 준비, 결혼, 농사철 시작 등으로 남편과 아버지네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다녀올 때마다 본인 남편에게 미안하다며 울었다. 둘 다 시댁과의 관계에서 비교되는 모습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었다.


아버지는 딸들의 낮은 자존감을 더 낮아지게 만드셨는데 그것을 모르고 계셨다. 내 입장, 감정을 알려 드리고도 싶었으나 몇 번의 경험으로 내 감정만 더 상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는 어느 정도 포기를 했었는데.


이제 나도 주말 시간까지 아까울 만큼 내 시간과 돈에 간절해졌고(솔직히 실행력은 약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여러 가지로 지쳤다. 나는 내 상황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알려드림으로써 내가 주말에 못 가는 이유와, 그러므로 손주들 자주 못 보여줌에 서운해하시지 마시라 전하고 싶었다.


대 공사가 필요한 아버지의 치아와.. 너무 낡아서 이제는 수도권에 끌고 오기도 불편해진 유리에 금이 간 낡은 자동차도 보기 힘들었고, 차도 없이 그 거리를 매주 버스 타고 오고 다니시면서 가면 쉴 틈 없이 일만 하다 오시는 엄마의 모습도 보기 속상했다. 그렇다고 매주 가서 그 끝도 없고 돈도 안 되는 일을 도와드릴 수도 없었다. 내가 무언가를 돕고 오면 엄마가 쉬시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일거리가 또 생기는 것이었으니까.


그 땅에서 시간낭비 인력 낭비 돈 낭비하시지 마시고 마음 편하게 사시던가. 귀하다는 손주들이 가장 필요한 '돈'을 좀 만들어 보시라 전하고 싶었다.


지금 시대에. 자급자족이 웬 말이냐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쓴 글을 내가 다시 읽어보니 구구절절 정말 구질구질하다. 내가 봐도 읽다가 짜증이 날 정도. 사실 나와 아이들은 나름 즐겁고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나는 내가 어렵고 힘들고 우울하게 살고 있다고 전달함으로 아마도 내 아버지의 낮은 자존감과 자격지심을 또 건드렸겠지..? 그래도, 나름 상담 심리를 공부하..(하고 싶은)는 사람이라는 게. 무슨 짓을 할 뻔한 건지.


나는 그저 담담하고 짧게 솔직하고 아버지를 응원하고 도움되고 싶고 열심히 살고 계셔서 자랑스럽다고 했어야 했을 것이다.


내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것도 참 어렵고,

마음이 온전하지 않은 그러한 좋은 말들을 전하는 것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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