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직업'란에 당당하게 체크하고 싶다.
반은 설레고 반은 떨리는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가지고 면접을 보러 간 자리에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알림을 받았다.
할 수 있는 것, 혹은 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생겼구나.
그저 어느 한 공간에 개인적인 글을 쓰는 것뿐일 테지만 내 이름 옆에 무언가가 하나 더 붙을 수 있게 되었구나 싶어서 괜스레 더 뿌듯한 기분에 집에 돌아와 바로 컴퓨터를 켰다. 혼자 끄적이던 이 공간에 작가 키워드를 추가하고 나를 소개하라고 해서 진행을 하는데 '글 주제'에서는 그럭저럭 넘어갔으나 '직업'에서 턱 막혔다.
수많은 직업 중 최대 3개를 선택하라는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한참을 보고 또 보고 난 뒤에야 겨우 '학생'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사이버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인 것이 맞긴 했으니까.
여기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그러했다.
왜 '엄마'이거나 '주부'라는 직업은 없는 것일까? ('가정주부'라는 직업 표기란은 있는 곳도 많긴 하지만)
난 그 직업에 사명감을 가지고 눈물 콧물 쏙 빼면서 '집안'이라는 직장에서 늘 '사표'를 품 안에 품고 13년째 버티고 있는 중인데.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잘 차려진 아침밥상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아이들 아침 먹이고 학교 보내고 한밤중에 퇴근해서 들어오는 남편의 늦은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할 때까지 내가 노는 시간 혹은 나를 위한 시간은 그저 드라마 한 편 정도 보는 시간인 것 같아. 그 정도로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고. 눈에 보이는 출퇴근 시간이 있는 사람들 만큼은 무언가를 하려고 했고, 혹은 그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냈다고."
어느 날 묻지도 않은 그에게 내가 내뱉은 말이었다.
"아이들 어릴 때는 낮도 밤도 없이 24시간 대기조로 살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양보해서 하루 10시간 노동을 했다고 치자. 나라에서 정한 최저시급이 있지만 계산하기 쉽게 백보 양보해서 지난 시간들도 있으니 시급 5000원이라고 치자. 그렇게 계산해도 난 1년 365일 휴일도 없이 1년에 대략 1800만 원. 13년이면 2억 3천만 원을 벌었다고. 정말 많이 양보하고 내 노동력의 가치를 최소화해서 계산을 해도 나...!! 서울은 못 가도 지방 아파트 한 채는 샀을 만큼은 일을 했다고....!!"
어느 날 또 묻지도 않은 그에게 내가 소리치듯 내지른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웃기네. 나는 무엇을 인정받고 싶어서, 혹은 어떤 자격지심이 있어서 묻지도 않은 그에게 그랬을까.
간혹 나는 아이들에게 소리치듯 따지듯 말을 하기도 했었다.
"엄마도 퇴근할래. 퇴근시간을 줘. 아홉 시 반 이후에는 '엄마'안 할 거라니까? 퇴근할 거야!!!"
아이 셋을 키우며 그저 엄마로서 주부로써 많은 일을 겪었지만 역시 가장 큰 일들은 현실적인 돈문제와 '눈에 보이는 일(혹은 수입에 관한)'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내 자격지심 혹은 자존감의 문제들이었다. 아이들이 아기 때에는 그래도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겠다-라는 말이라도 들었는데 아이들이 걷게 되고 어린이집을 다니면 엄마들은 집에서 노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아이가 유치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심지어 같은 엄마들끼리도 '집에서 뭐해?'를 묻곤 했다.
집에서 뭐하다니? 나 겁나 바쁜데?
그런데 왜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이 아무것도 없지?
지금 나는 '예비 워킹맘'이다. 나도 이제 어떻든 남들이 이야기하는 '직업'이 생길 것이고 내 통장으로 돈을 받는 일을 할 테지만 그래도 어디에서든 '가정주부'말고도 '엄마'라는 위치나 입장도 하나의 당당한 '직업'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모성애'라는 숭고한 단어로 고급스럽게 포장하고 희생을 당연시하며 힘든 것은 '당연함'으로 치부되고 위로받기도 어려운 내 '노동'이 직업으로 취급받지도 못한다는 것은 너무 우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