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집 부자이구나..라는 말을 들었다.

낡은 빌라에 전세로 거주 중이다.

by 누리달


일찍 끝난 딸아이가 친구를 데려와도 되느냐고 전화를 했다. 학원도 거의 안 다니는 아이인데 같은 학교 친구들도 많이들 안 다닌다고. 처음 하교 후 전화를 했을 때는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했다며 어디서든 놀다 오겠다고 했었는데 비가 한 방울씩 떨어져서 갈 곳이 없다면서.


나는 왜 그전처럼 여자아이들일 것이라 예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함께 온 남학생 세 명은 이전 여자아이들이 왔을 때와는 반응이 사뭇 달랐다. 일단 방 안에서 꼼지락 거리다가 거실의 보드게임이나 소소한 인형 위주 장난감을 꺼내어 까르르 거리면서 한참을 놀던 여자 친구들과는 달리, 이번 남자 친구들은 거실 내 책상 아래 새로 바뀐 컴퓨터와 플레이스테이션에만 집중했다.



이것 때문에 아이들과 웃기도 울기도 한다.



"우와~ 멋있다. PC방 같아. 오~ 플스다~ 게임 CD 많다~"

그렇게 소소한 대화들이 오고 가면서 누군가가 그랬다.

"이거 다 하면 얼마야? 너네 집 부자인가 봐~"


그렇게 PS4에 대해 떠들어대고. 가장 먼저 'FIFA'게임을 해보고 싶어 했으나 아빠의 것이고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게임이라 대신 '마인크래프트'게임을 한참 했던 것 같고, 중간에 사다 준 아이스크림은 게임하느라 정신없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 바닥에 흘려져 있었음을 아이들이 한참을 놀고 간 뒤에야 보았다.


아이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면 최대한 편하게 놀라고 간식 정도만 챙겨주고 방에 들어가 있는 편인데 문을 닫고 앉아 책을 보려는데 자꾸 아이 친구의 한마디가 머리에 맴돈다.


"너희 집 부자인가 봐"






내 20대 초반에. 그때에도 내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었다. '그래도 돈 걱정 없이 살아 좋겠다-'라는 말과 함께. 그 친구는 서울 어딘가.. 조금 오래돼보였던 주택 비슷해 보였던 곳에서 살았었고(빌라였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저녁에 치킨집인가 호프집인가를 하셨던 기억이 얼핏.


당시 우리 집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대형 아파트였는데 버스도 거의 없고 전철 한번 타려면 엄청 돌고 돌아야 했다. 그래도 근처에 광역버스가 생겨서 시간은 좀 걸려도 서울은 다니기 편했던 정도. 지금이야 그런 흔적조차 없지만 당시에는 쓰레기 매립지 근처라는 인식이 남아있던 인천의 한 지역이었다.


그래도 새로 지어져서 넓고 예쁘고 깨끗했던 그 아파트는 처음부터 은행의 것이었으며 아버지는 집 담보 대출 이자에 매달 허덕이셨고 결국 몇 년도 못 버티시고 내쫓기듯 나왔다는 게 현실이었는데. 그런 속 사정까지 다 말도 못 하고 나는 '부자'라는 말을 들었었다. 어쩌면 그 친구네 집이 가진 재산이 더 많았을 텐데.






친구들이 가고 나서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아빠가 돈을 잘 버는 건가? 애들이 우리 집 부자래. 이거 엄청 비쌀 거라던데?"

"흠...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데 잘 모르겠고. 많이 놀아주고 싶은데 피곤하다던가 하는 이유로 잘 못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빠가 게임을 좋아하기도 해서 본인이 좋은 것을 해 주고 싶거나 같이 하고 싶다는 나름의 애정표현인 거지."


동문서답이겠지만, 그냥 그 정도로.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신상 컴퓨터



20대 초반 당시의 우리 집에 '내 것'인 부분이 거의 없었던 것처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도 마찬가지인 상황.

컴퓨터는 쓰던 것이 고장이 나서 그가 어떤 것이 좋겠느냐 물었을 때 '나는 그저 빠른 것이 좋아'라고 했는데, 보통의 기준을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능 좋은 컴퓨터를 그래도 저렴하게 구입을 했다고 했다. 시댁에 월 10만 원씩 갚는다고 돈을 빌렸다는 말과 함께.


버럭!! 하면서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려는 말들이 참 많았는데 애써서 꿀꺽 삼켰던 기억과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다. '자존심 챙기면 뭐하나 해결할 능력도 없는데' 라면서 혼자 심란한 마음 가라앉히려 했던 것이 바로 며칠 전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되었다.


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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