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세 아이들 등교 전쟁을 치르고 나면 그 아침 스트레스를 위로하고자 커피 한잔 들고 앉아서 아주 조용하게 책을 보거나 수업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던 나의 오전이 벌써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버스 시간에 맞추어서 뛰쳐나가고, 버스를 놓치면 발 동동 구르면서 시작하는 하루가 낯설고, 설레고 또 정신없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지만 어쨌든 간단하게나마 얼굴에 화장품을 찍어 바르고, 더운 날 차가운 에어컨 바람까지 고려해서 옷을 골라 입고, 가방을 챙겨 들어야 할 때 늘 나를 멈칫하게 만드는 가방 하나. 아직도 단 한 번도 들고나가지 못했던 그 가방을.. 나는 오늘도 들고나가지 못했다.
사이즈가 작아서. 들고 다녀야 할 것이 아직은 많아서 지금은 쓸 수 없다는 핑계로.
어느 날 휴일, 늦잠을 자고 일어난 그는 허둥지둥 나갔다 와야겠다며 집을 나서더니, 다시 들어와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다. 일어나야 할 때가 한참 지났었지만 여전히 무거웠던 몸을 일으켜 세수만 간단히 하고 따라나섰다. 궁금하긴 했지만 뭐.. 가봐야 어딜 가겠느냐 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고, 어딜 가느냐고 따져 물을 에너지가 없기도 했다. 딱히 다른 급한 일은 없었으니까.
그날 생각보다 오래 달렸고, 배도 고프고 커피도 고팠다. 멀리 나올 거면 커피 한잔 정도는 마실 여유나 좀 주지-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햇살이 유독 따스해서 좋았고, 조금은 눈이 부셨던 기억이.
도착한 곳은 아울렛 매장이었고 거침없이 찾아 들어간 곳은 명품관 '프라다'매장이었다.
"가방 하나만 사자, 골라봐"
"여기서? 내 가방을?"
"응, 곧 당신 생일이잖아. 생일선물로"
너무 어이없고 황당해서 그냥 끌고 나오려는데 그는 정색을 했다. 내가 안 사겠다고 할 것이 뻔해서 혼자 오려다가 내 마음에 안 들까 봐 함께 오자고 한 거라면서.
"그래, 좋다고. 내 선물 좋은데 왜 하필 여기야?"
"내가 아는 명품도 없고, 그중 아는 다른 브랜드는 싫고, 그래서 여기야."
그 뒤로 몇 마디를 더 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명품관 매장에서 부부싸움 날 기세.
나는 명품 가방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아직은 없다. 항상 그것을 구입할 능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서일까 관심도 없었다. 20대의 어느 날 당시 자주 보던 지인이 매고 다니던 가방이 온통 그 로고로 뒤덮여있던 명품가방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가방 예쁘네'라고만 인사치레로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후에 그 로고가 그저 누구나 알만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어디서 샀어?'라는 바보 같은 말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고 막연하게 내가 가진 물건에 비해서 부족해 보이지 않을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벌벌 떨면서 명품을 구입해서 비 오는 날 내가 비를 맞고 가방을 보호하는 그런 웃긴 이야기 속의 모습은 절대 되지 않겠노라고, 그럴 거면 차라리 안 사고 말겠다고.
뭣도 없으면서 그저 생각만 그렇게.
명품이고 브랜드고 그런 것에 대해 잘 모르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그래서 그저 가장 유명하고 본인이 많이 들어본('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영화를 좋아하기도 했었다) '프라다'매장을 찾아온 것이다. 그와 함께 있는 긴 시간 동안 명품가방은 커녕 몇 만 원짜리 가방 하나 받아본 적이 없다. 그도 관심 없었고 나도 그리 바래본 적 없고.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그저 내가 구입을 했었고(물론 결혼 후는 계속 외벌이 었으니 그가 번 돈이었지만), 내 기억상 내가 구입한 것 중 가장 비싼 가방은 10만 원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결국 나는 오천 원짜리 티셔츠와 만 원짜리 바지를 입고 터덜터덜 나서서 그 비싼 가방을 받아왔다. 내가 끝가지 그것을 거절하면 나를 생각했던 그의 마음에,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낼 것만 같아서 아닌 것을 알면서도 돈보다 그의 마음을 택했다.
여전히 내가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달이 지나도 여전히 적응이 힘든 음식물쓰레기 수거통 들.
대출받고 빌라 전세로 겨우 이사 와서 외벌이로 아이 셋을 데리고 생활하고 있는 중이다. 집도 절도 없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 게다가 낡고 작은 단지이긴 했지만 아파트 생활을 했던 나는 구석진 지역의 빌라 생활이 익숙지가 않았다. 특히 '음식물쓰레기'버리는 일은 아직도 힘이 드는데 이제 날이 더워져서 날파리가 벌써부터 걱정되던 시점이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비싸서 안 되겠지만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라고 하고 싶었다. 그것이 사치라는 것을 잘 알기에 차마 그에게도 그것이 사고 싶다는 말 한 번을 못 했었는데.
그 상황, 그 번쩍번쩍하게 진열되어 있는 가방들 앞에서, 뭐든 고르라는 그의 옆에서, 나는 '이 돈이면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돈이면 차라리..
그렇게 멍-한 상태로 돌아오는 길, 그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 학교에 갔을 때 봤는데.. 엄마들이 다들 가방 하나씩 들고 있고 그중에는 그런 것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대충 알만한 것을 들고 있던 엄마들도 몇 있던데.. 당신만 가방이 없더라고. 우리 집 상황을 잘 알고는 있지만.. 그래서 사주고 싶었어. 사실 나는 그동안 돈 없다 없다 하면서도 내가 사고 싶은 게임기나 컴퓨터나 뭐 비싼 거 상관없이 다 샀던 것 같은데 당신 것은 산 적이 없는 것 같아서."
1학년 막내의 공개수업이 있던 날, 오후 근무인 그와 함께 학교를 갔었다. 셋째의 초등학교 생활이라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뒤에서 한 시간 동안 서 있기만 할 것이라 필요도 없는 가방은 들지 않고 가볍게 몸만 갔던 날. 초등 학부모 6년을 보내면서 공개수업을 그와 함께 갔던 것은 처음이라 그저 그게 좋았던 그 날.
어느 즈음엔가는 그런 것들을 은근히 신경 쓰기도 했었지만 이젠 그따위 것들 쿨하게 넘기는 내공이 생겼는데.
그의 시선 끝에 그것들이 있었나 보다.
소소한 학교 행사에 쓸데없이(?) 들고 가서 그에게 인증샷.
그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그 마음을 의심해본 적은 없지만 그가 정말로 내 입장에서 나를 바라봐 주고 생각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늘 받으면서 지낸 시간들이 있었다. 어느 부부인들 완벽하겠느냐만은.. 그는 내 마음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마음과 감정도 제대로 못 바라보는 사람이었고, 더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것은 나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 우리는 서로에게 직접적인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오랜 시간 많은 상처를 받곤 했었다.
그렇기에 그가 내 입장에서, 내 시선에서만 보일만한 것들을 보아주었다는 것이 너무 좋고 고맙고 감동이라.. 그 말을 들었을 때에 왈칵 울음이 터졌던 것 같다. 그 비싼 가방을 들고 올 때도 그저 고맙다는 말만 했을 뿐 워낙 표현도 잘 못 하는 성격이고 마음도 복잡했기에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나였었다.
그즈음이.. 내가 정말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한참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같이 돈 벌면 된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하던 공부도 있고 하고 싶은 일들도 점점 늘어나던 때였기 때문에 내가 돈을 벌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만 할 것 같은 상황에 답을 알면서도 하루 이틀 미루며 고민만 했었는데..
꼭 이렇게 비싼 물건이 아니더라도 그의 마음은 전달이 되었을테지만.. 어찌되었든 방 한쪽에 자리잡은 그것을 볼 때마다 저 물건이 '허세'로 보여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고민에 결정을 도와준 역할을 해 준 그 작은 가방이지만 아직은 너무 무겁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척 가볍게 들고 다니겠지만(가방에 흠집날 까 그런 것을 걱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 스스로 그것이 정말 가격 상관없이 '가방 따위'로 느껴질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