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게임중독이었다. 06(End)

결혼, 부부생활 _ 중독에서는 벗어났을지라도 현실적인 문제들은..

by 누리달

결혼 14년 차. 최근,


코로나 19로 남편은 5개월을 쉬었고, 그 기간 동안 나는 우리의 결혼생활 전부를 압축해서 다시 경험한 기분이었다. 남편이 시간이 남는다고 게임하는 모습에 화가 났고 우울해졌고 무기력해졌다. 그러다가 포기했고 묵은 감정을 어설프게 터트렸으며 한동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점점 미쳐가는 듯했고, 사춘기 아이에게 날 선 감정들을 드러냈으며, 급기야는 아이 앞에서 울기도 했다.


"그동안, 방법이 너에게 안 맞았을지언정,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내 마음을 몰라줘!!"라고.


나는, 사춘기 아이에게 소리를 쳤던 것일까?

아님, 옆에서 듣고 있을 남편에게 소리를 쳤던 것일까.


어찌어찌 예정보다 너무 오래 쉬고 같이 붙어있게 된 탓에 지금은 그 과정들을 겪으며 묵은 감정들을 많이 해결했지만.




과거,


둘째가 태어나고 남편이 일을 하지 않으며 게임만 하던 그 시절의 내 기억은 다 무채색이다(그것이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남편의 기억과 내 기억이 조금 다른데, 남편은 쉬다가 일을 구하고를 반복했으니 그래도 나름 꾸준히 일을 한 것으로 기억을 하고, 나는 쉰 기간도 있고 일을 했어도 너무 자유로운 영업직이라 출퇴근도 엉망이고 통화하면 pc 방이었던 때도 많았었기에, 그저 대충 일하고 많이 놀다가 운 좋게 계약되면 돈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돈이라도 많이 들어오면, 영업직의 장점이라고나 하지, 매달 나눠보면 빠듯하게 적은 월급 정도였다)


내가 10원 경매에 빠졌다가 나온 뒤로도, 남편의 게임은 계속되었는데 나는 그 뒤의 기억이 사실 흐릿하다.


확실한 건,

그는 하루 한번 아이들 씻겨주는 것 말고는 집안일은 정말 거의 안 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그는 'TV 프로그램 안녕하세요'를 몰아보기를 한 적이 있는데, 단언컨대 그곳에 나왔던 게임만 한다는 남편의 고민들 중 내 남편의 사연이 1등이었을 거다. 그 프로그램의 초반 즈음.. 내가 농담으로 우리 저기 나가면 1등 할 거라고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남편은 그럴 리가 말도 안 돼 하면서 무시하고 넘겼지만 나는 진심이었는데.


모바일 게임 고민상담 내용을 보면서 그는 '그래도 나는 모바일 게임은 안 했어 그건 좋아~'라고 하는 말에 속으로 꾹꾹 눌러 담은 화가 튀어나올 뻔했던 적도 있었다.






그는 일을 계속 옮겨 다녔다. 시아버님 찬스로 월급은 적어도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서 있기도 했는데, 그도 적성에 맞지 않는 그 직장에서 나름 열심히 버텼겠지만, 허구한 날 병가에 한 번은 정말 심하게 다쳐서 오래 쉬기도 했다. 그즈음 몇 년, 그는 특히 허리가 자주 아프다고 꼼작도 못하겠다고 했었는데 그럼에도 컴퓨터 앞에서 좋지 않은 자세로 최소 12시간 이상씩은 앉아 있었기에, 심지어 하루하루 살기 벅찬 우울했던 나는 그가 아프다는 말을 들을 때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아니, 허리 멀쩡한 나도 몇 시간 앉아있으려면 아픈데. 아프다는 사람이 그렇게 오래 앉아있으면 그게 믿어지냐고!!


원래 친구들과 전화 수다는 거의 없는 편인 나였는데 이른 결혼 후 육아에 시달리면서 더욱더 심해졌다. 20대 후반 친구들과 나는 완전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몇 달에 한 번씩 안부를 물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었는데, 남편의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게 나는 '아파서' 혹은 '구직 중'의 이유로 '쉬고 있어'라는 대답을 계속해야 했다. 그 사이에 몇 달간 일을 했던 적도 있었는데, 하필 친구들이 연락을 주는 그 시기에 '병원' 혹은 '병가' 혹은 '잠시 쉬는 중'인 경우가 많았다.

몇 달에 한 번씩 있는 일이니 몇 년 사이에 몇 번이었겠지만 몇 년 뒤 내 친구들은 남편의 안부를 물을 때 엄청 조심스러웠다. 얼마 전까지도 '지금은 잘 다니지?'가 인사였으니까.






오래전 한 번은 나의 친구가 얼굴도 못 본 내 아기의 용돈이라며 뜬금없이 작지만 돈봉투를 쥐어준 일도 있었고.

한 번은 "그럼 너는?"이라며 감정이 격해져서 살짝 울컥 하기도 했다. 당시 내 남편은 다른 것을 준비 중이었는데(아래, 결혼 11년 차 봄 일기와 같은 시기) 그것을 위한 시간은 하루 두세 시간 정도였기에 나머지 시간은 다 그저 노는 시간이었다. 아이 셋 아빠가 알바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이를 많이 봐주지도 않고 그 많은 시간을 본인 혼자만의 시간으로 그냥 보내는 것에 대해 너무 무뎌진 나 대신의 울분.


내 우울한 감정 상황 등을 하나하나 다 말을 하지도 않고 몇 달에 한 번 연락하고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이였지만 10년의 내 결혼생활을 지켜본 그녀였다. 20년이 넘은 친구. 어릴 적부터 타인의 험담도 잘하지 않는 편이고 그 긴 시간 동안 잘 알지도 못 하는 내 남편에 대해서는 내 앞에서 싫은 소리 한번 없던 친구였는데.


그만큼 나는 동정처럼 느껴지는 많은 걱정을 받을 만큼, 타인이 보기에도 우울하고 힘겨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는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름 10년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기다린다고 한 건데..

변한 건 없고

언제나 원점으로 도돌이표인 것만 같아서.. 답답하다.

결혼 10년 차 가을 일기 中



그는 일이 잘 안됐다며 나에게 미안하다 했다.
그렇지만 우연히 톡을 봤는데.. 그 시간에 게임을 한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전에도. 낮에도 밤에도 있는 게임 대화.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 말로는 취미 겸 스트레스 풀 겸 한두 시간이라는데.

스트레스 풀 구멍도 없이' 숨도 쉬지 말고 밥도 먹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말고 돈만 벌어와라'는 절대 아닌데
게임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면 그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져서 부담스럽다.

그에게는 늘 지금 게임을 해도 괜찮은 이유가 생긴다.

결혼 11년 차 초. 일기 中



혼자 해보기로 한 일조차 제대로 안 하고 급기야 그렇게 멈춘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러면서 일주일쯤 더 지났을까.. 맘 급한 내가 그랬다.
방향 정했으면 가는데, 어차피 남는 시간 하루에 만 원이라도 버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고 싶은 것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것 정해졌고 길이 생겼는데.. 더 맘 안 좋을 일 뭐가 있어서.
그 정도 알바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며칠을.. 또 그냥 그렇게.

3~4를 티브이와 스마트폰 영상 소리에 시달리다가...
내가 또 그랬다. 뭐라도 좀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고.
고작 이런 모습 보려고 나도 가장으로써의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데 동의한 건 아니었으니까.

결혼 11년 차 봄 일기 中







그 뒤의 어느 날 뜬금없이 그는,


"내가 게임만 했던 그 시간이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


라는 말을 했다.


그의 그 한마디는 내 쌓인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리는 듯했고, 그와 오랜 시간 지내면서 들었던 그 어떤 말

보다 달콤했고 행복했다. 그 뒤로도 현실적인 우리의 문제는 많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는 내가 지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 느낌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게임이 무 자르듯 잘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일에서 안정을 찾았고 다른 취미들도 생겼으며 게임을 한동안 하지 않기도 했다.

그저, 그가 어쩌다 게임을 하는 짧은 순간에도 내가 많이 불안하고 우울해졌을 뿐.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게임에 관한 문제는, 몰입하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기질적 특성과 가지고 있던 우울함이나 낮은 자존감에 관한 문제에,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깊어진 나의 우울함이 맞물려서 더 심해졌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한 때는 원망도 있었는데.. 누가 먼저 시작이었는지가 이제 와서 뭐 그리 중요할까.


그저 우리는 긴 시간 악순환을 함께 겪었던 것인 듯.










작가의 이전글남편은 게임중독이었다.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