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만 생각하면 죽고싶어. 02

부부관계 _ 작은 가게 하나에 사람은 넷. 완벽한 동상이몽

by 누리달


내 부모님이 든든하시고 나를 존중해주고 믿어주고 그런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대부분의 일을 내가 결정하면서 자란 것은 맞는 것 같다.


물론, 지나치게 예민했던 아빠의 틀 안이라 그 세계가 좁긴 했었던 것 같고.. 예민함과 적당한 무관심 그 안에서 나는 학원도 눈치 안 보이는 선에서 최소한으로, 혹은 돈 들어가는 것은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었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결혼자금까지 (등록금 약간 지원받은 것 말고는) 거의 내가 해결했다.


되려, 성인이 된 후에는 내 아버지는 나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셨고, 경제적 의지를 위해서 결혼도 미루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던 분이셨다.


물론, 당시 난 내 의지대로 밀고 나갔지만.





그래서,


'분식집 장사'도 그저


"네 생각은 어떠니? 내 생각은 그게 정말(!) 좋을 것 같으니 자본금은 지원해 줄 테니 생각 있으면 해 봐라"정도의 권유 정도로 생각했는데.


시어머님은 그 뒤부터 매일 두세 번씩 본인이 원하는 답을 듣고자 하셨다. (정말로 매일 두세 번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더 많을 수도 있고 더 적을 수도 있고 확실하지 않다. 내 기분이 그러할 뿐)


나에게도 몇 번 물으셨는데.. 내 대답은 당연히 결정은 남편이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안 한다고 대답하던 남편은..


"도대체 왜 안 해?"라는 계속되는 말씀과 당장 그 가게가 다른 이에게 넘어가기 전에 인수하고 싶어 하시는 모습에 결국 며칠 뒤 남편이 나에게도 어찌 생각하냐고 물었었고,

"당신이 생각 있으면... 괜찮다 싶으면 하는 거지"정도의 내 대답에 바로 알았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장사를 했던 내 동생도 만약 한다면 같이 해볼 의향이 있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결정한 것이..

시어머님이 처음 이야기를 꺼내시고 열흘 남짓?

길어야 2주 안에 우리는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던 분식집 장사를 하게 되었다.






아니, 말이 돼?


평소에 계속하고 싶어 하던 것이 마침 좋은 매물이 나와서 기회다!!!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장사를 하고 말고를 2주 만에 결정을 할 수가 있는 것인지 그것도 어이없었지만


나는 그래도 그가 어느 정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비전이 보이지 않으니.. 계획된 일은 아니었지만 이 기회에 장사를 한번 열심히 해보자 싶었나 보다.. 하고 여겼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는 내가 그렇게 대답을 할지 몰랐었다고 했다. 나는 분명히 '당신이 괜찮으면'이라고 말을 했는데(그의 일이니 결정은 그가 하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그는 내 말에 도 장사를 한번 해 볼 마음이 있는 건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내가?

난 음식 장사는커녕, 머리핀 같은 장사도 생각해 본 적 없고 못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우리 부부부터 서로의 마음은 전혀 모른 채 소통이 전혀 안 되는 상황에서 시작을 했다.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으셨지만 내 느낌에 시어머님은 뭐 그런 데에 내 동생도 같이 하냐 싶긴 하셨던 것 같다. 사실 워낙 작은 가게라 혼자 해야 하고, 많아야 둘이 같이 하는 정도가 딱 적당한 사이즈였다. 처음에 시어머님은 그 자리에서 장사하시던 아저씨가 레시피를 그대로 알려 주실 테니 그대로 배워서 가게 쉬는 기간 없이 이어서 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이미 그런 것 까지 다 알아보셨다).


내가 몇 번 본 그 분식집 사장님은.. 늘 가게 앞에 힘없이 앉아서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계셨었다. 떡볶이와 튀김은..? 미각이 둔감한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저 떡볶이일 뿐인 뭣도 아닌 맛에 튀김은 늘 눅눅했다. 분식집은 깔끔하지도 않았다. 내가 매번 그것보다 맛있게 떡볶이 양념장을 만들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게 할 바에는 안 하겠다 싶었다.

테이블도 두어 개 놓으니 끝인 그 자리에서 초보들이 매출이 나와 봐야 얼마나 나온다고 그것을 또 나눠야 할 테니 인건비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남편은 그래도 경험이 있는 내 동생이 같이 한다고 하니 수긍을 하는 쪽이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은 없었다.


결국, 계약을 하고 월세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당연히 장사는 못 하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월세를 내고 수입 없이 준비하는 기간이 10일? ~ 2주 정도 되었던 것 같고, 월세가 그냥 낭비되는 그 기간을 답답해하셨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마음 급하고 짧은 준비 기간 동안 하필 명절이 있었고 우리 가족은 그 와중에 2~3일 다녀와야 했다. 그동안 내 동생은 혼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레시피를 다 만들어야 했다. 친언니의 시부모님의 돈이 다 들어가 있는 그곳, 매일 월세가 의미 없이 날아가고 있어 눈치 보이는 상황에 요리도 장사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우리 자매는 마음이 여유롭게 자란 편이 아니었다. 연애를 해도 남자 친구가 돈을 더 많이 내는 것도 불편한 성격들. 다른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주는 것을 온전히 좋은 마음으로 받지를 못 하고 부담을 느끼는 스타일이었다. 장사를 하다가 실패를 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내 돈으로 손해를 보는 쪽이 마음 편했는데.


하루하루 돈은 나가고 준비할 것은 많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의 맛인데 언니와 형부는 그쪽으로는 신경도 안 쓰고 그녀에게 맡겨버렸다. 아무리 그냥 떡볶이라도 금 나와라 뚝딱 하면 나오는 레시피가 아닐 것인데.


코딱지만 한 가게 하나에

돈 대주시는 분(바로 옆집에 계심),

공식적 사장님이지만 본인은 사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남편.

비 공식적 사장님이지만 철저하게 직원이라고 생각했던 내 동생.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나.


음식 장사를 이렇게 넷이.


그렇게 완전히 다른 마음들을 가지고 서로의 마음은 전혀 모른 채 각자의 위치에서 '부담'만을 잔뜩 짊어진 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시작을 했다.


아마 백종원 님이 이렇게 음식 장사하시는 꼴을 보셨으면 혼나도 엄청 혼났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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