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만 생각하면 죽고 싶어. 04

결혼, 부부생활 _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

by 누리달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는 계약을 하고 2주? 3주? 정도만에 일을 시작했다. 그동안 특별히 일을 위해서 다른 집 분식을 먹어본 것은 그저 동네 분식집 2~3군데 정도. 그렇게 쉽게 시작을 했다.


첫 시작 날, 무조건 가게를 열고 긴장을 잔뜩 안고 오전에 준비를 거의 마쳐갈 때 즈음 지나가던 손님이 떡볶이 포장을 주문하셨을 때, 그때서야 나는 떡볶이 포장하는 법도 카드결제를 하는 법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어찌어찌 잘 넘어갔지만 그것 하나 연습해 보지 않고 손님을 받았다는 멍청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상하게 손님들은 한 사람씩 오지 않고, 한꺼번에 왔다가 한꺼번에 가곤 했다. 보통 한 가지만 주문하지는 않았기에 포장 두 팀만 있어도 영혼이 가출할 정도였다. 게다가 나는 새로운 환경이나 일에 적응이 무척 느린 편이었고 원래도 일을 빠릿빠릿하게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첫날 둘째 날은 답답했는지 밖에서 지켜보시던 시어머님께서 순대를 썰어주신 적도 있었는데 음식 포장을 해 주는 그 자리가 무척이나 좁아서 더 불편했던 기억이.


떡볶이와 튀김은 맛이 썩 괜찮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진심으로 맛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듣는 날도 많았지만, 잠시 혼자 있을 때 튀김 온도조차 미리 생각을 못 하고 그저 멍하니 있다가 낮은 온도에 눅눅하게 튀겨서 내어준 적도 있었다(손님이 튀김 온도가 안 맞는 거 같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나 홀로 이불 킥을 얼마나 했던지!!) 오전에 맛있던 떡볶이는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될수록 맛이 없어졌다. 같이 고민을 해 봤지만 거기까지는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가게가 바로 옆 동네라도 되었으면 마음이 조금은 편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가게의 위치는 내 시어머님의 바로 옆일 뿐만 아니라 내 아이들의 학교 근처이기도 했다. 어디까지 거리를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아이 친구 엄마' '아이 학원 선생님'들이 다니는 길목이었기에 애매하게 아는 얼굴들도 많았다.


어차피 남들에게 보기 좋은 학력 학벌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에 좋고 나쁨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내가 하고 싶지 않던 일이라는 것에서 나는 지인들 앞에서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조금씩 위축되는 부분이 있던 것도 솔직한 심정이었다는 것, 인정은 한다.


그렇지만 삶이라는 것이 다 들여다보면 거기서 거기일 테고..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 학교 보내고 부품 조립 등을 부업으로 하기도 하고 마트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도 하는 동네였다. 그저 나 혼자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될 문제였다.


그런데 한 번은, 아이들 학원에서 학부모도 참석하는 행사 같은 것이 있었는데.. 워낙 이것저것 잘 신경 쓰지 않는 남편은 일 끝나고 그대로 참석을 했었다. 튀김 냄새를 풍기면서 사람들 속에(조금 늦어서 그나마 바깥쪽에) 있던 그 날은 도무지.. 잊히지가 않는다.


내 못난 표현으로 그에게 또 어떤 오해나 마음 상함을 줄까 봐 어떠한 말도 못 했다.


그래도.. 조금 늦더라도 샤워는 하고 오지.






일은 느리지만 조금씩 익숙해졌고 나는 점심 즈음과.. 오후에 조금씩 도와주는 형식이 되었다. 잘하는 장사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인건비 유지 정도는 되었다. 그렇지만 묘하게 세 사람의 관계는 점점 불편해져 갔다. 두 사람은 오픈할 때도 오픈 떡을 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소소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돈도 없는 와중에 우리 돈이 아닌 돈으로 홍보를 위해 떡을 돌리게 되었고, 하필 떡을 돌리던 그 시간에 손님들이 몰려와서 세 사람 다 영혼이 가출하고, 결국 늦어서 떡은 다 못 돌리게 된 일도 있었고.


한 번은 남편이 화장실 간다고 했는데 1시간 즈음이 되도록 오질 않았다. 화장실은 하나였으니 참다가 전화를 해봤더니 집에서 잠깐 쉬고 있던 일도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내 여동생은 입을 점점 다물고 의견을 내지 않게 되는 것 같았고. 드러나는 갈등은 없었지만 나는 묘한 분위기에 점점 더 일보다 사람 사이에 끼어서 힘들어졌다. 나중에는 둘 다 몸이 너무 힘들어져서 마감만 도와줄 아르바이트생을 뽑기로 했는데 거기서 소소한 의견 차이가 아주 약간 보였고, 결국 남편이 선택한 아르바이트생이 뽑혔다. -어린 그는 일을 정말 더럽게도 못 했다.


내 기억에는 그것이 마지막 의견 차이였다.

그 뒤로 며칠 뒤 동생은 심한 몸살을 앓으면서 쉬었고, 그 뒤로 그만두겠다고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일 시작하고 두 달 정도 지났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혹 일기를 쓰기도 하는데...

그즈음은 일기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사실, 기억이 뒤죽박죽이라 이전 글에서 동생이 힘들다고 지쳤다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던 날이 준비가 끝나던 즈음이었는지, 혹은 그만두기 전 즈음이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너무 힘들다고 못하겠다고 했던 대화도 얼핏 기억나는 것을 보니 그만 둘 즈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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