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과 1박 2일 장거리 여행을 다녀왔다. 차 한 대로 이동을 했으니 꼬박 2일을 함께 한 여행.
그 여행 다음날, 남편은 맥주가 다 떨어졌다며 엄청 급한 척을 하며 마트를 끌고 갔다.(여행 다녀온 날 마지막 남은 맥주를 마셨고, 그는 술 한 잔도 안 마신다)
"시부모님 모시고 여행 다니느라 고생했고, 고마워"
라고도 했다.
사실, 겉모습만 보면 '모시고 다녔다'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남편이 운전만 했을 뿐, 우리는 그저 가서 시아버님 돈으로 잘 놀고 잘 구경하고 모든 끼니를 남이 해 준 음식으로 잘 먹은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여행 다녀왔던 날 '그래도 집이 제일 좋구나~'를 외치던 내 집에서. 오랜만에 밤 새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에 시달리고 속에 무언가 꽉 막히고 계속 눌러대는 듯 한 기분이 계속되었었는데, 그의 그 말과 행동에서 나는 안정을 되찾았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었지만, 그는 어딘가 불편했던 나의 감정을 예상했다.
겨우 이 정도..이지만, 이 정도 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과거,
일이 겨우 익숙해져 갈 즈음
내 여동생은 전화로 분식집에는 그만 나가겠다고 통보를 했다.
그때 우리 부부는.. 정말 심각하게 진심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같이 하던 일을 이런 식으로 갑자기 그만둔다고 더는 못하겠다고 통보를 받는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이었는데 남편의 입장에서는 내 동생이 하겠다고 해서 본인 엄마의 돈으로 시작한 분식집이었으니 더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 툭 터놓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누가 봐도 시부모님이 본인 아들에게 마련해 준 가게였지만, 남편은 본인이 너무 하기 싫은 일이었으나 다수의 의견에 따라 하긴 해야겠어서 처제를 위해서나중에 처제에게 다 맡기면 되겠거니 하고 시작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원망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제발 가게 좀 차려달라고 돈 좀 투자하시라 졸라댄 것도 아니고, 몇천만 원 돈이 들어갈 일을 어느 누가 미쳤다고 사돈 가족에게 가게를 해보라고 떠 안겨 준 단 말인가? 돈이 남아 썩어가는 것도 아니고 맨날 '돈 없다'를 입에 달고 사시는 분이?
내 입장에서는 백번을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그의 생각이었지만, 하여튼 그의 생각은 그러했다고 했다.
그 일의 직전인지 아니면 직후인지, 정확한 시기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으로 그에게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욕설도 조금 섞어가며 화를 냈던 일도 있었다.
"아무리 처음 하는 일이더라도, 어떻게 일을 그렇게까지 못 하고 안 할 수가 있어!! 너만 힘들어? 여기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다고. 너만 못 할 일이야?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당신 허구한 날 게임하고 일 그만두고 내 가족들이 와도 게임하고 할 때도 나는 어떻게든 당신을 포장해 주려 했고, 남들한테 당신 욕 한번 한 적 없는데 내 동생 앞에서 이렇게밖에 못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이런 내용인 것 같은데.. 지금 보니
대화, 소통을 가로막는 말들의 공식들은 다 나열한 것 같네? ^^;;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거야? 내가 쪽팔리다는 뜻이야?"
라고 물었던 것 같고.
"응!! 쪽팔려!! 미치겠어!!"
라고 했던 것 같고.
장난 말고는 아이들 앞에서 단 한 번도 그에게 목소리 높여 화를 낸 적이 없던 나였고(그때 아이들은 자는 중이었다) 그 상황의 끝은 남편이 집을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분식집 장사를 하던 중 그는 죽을 생각으로 무작정 차를 끌고 나간 적이 있다고 했었다.
죽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아마도 그것이 그 날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이선균'님이 그랬다.
"우리 식구만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야"
(남편이 가장 가까운 내 식구이지만 어쨌든) 그때는 나도 그런 기분이었다.
당시 그는 부모 돈으로 쉽게 가게를 차려서 본인 일을 주변 사람들에게 미루거나 게으르게 보였기에 '동업자'로서는 정말 별로였고 그 동업자가 하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내 동생이었다.
그 전에는 굳이 보이기 싫은 모습들에는 내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되었고, 간혹 내 지인에게 그의 안부를 전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때에도
"방황 중이야. 인생의 길을 찾는 시간이 필요하겠지"같은.. 거짓말은 싫고 하소연도 싫어서 어떻게든 조금 더 그럴듯한 말로 포장을 하려고 애를 쓰곤 했는데.
내 남편은 삶을 열심히 살고 아내를 위해주고 아껴주는 것 같은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나는 그러한..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고스란히 들킨 것만 같았다.
남편에게 존중받고 사랑받지 못 한
상처투성이 몸이 발가벗겨진 기분이랄까.
그 전에는 오랜 기간 참을 수 있었지만, 그때에는 도무지 못 참겠던 그 감정의 차이가 그것이었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아진 내 자존감 자존심은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면서 분노로 변했고, 그 대상이 남편이었다.
추가.
당시 남편은 일을 나름(!) 열심히는 하려고 노력했었다. 기대치가 달랐고 더 큰 다른 문제가 있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