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부, 결혼생활 _ 떡볶이만 생각하면 죽고 싶어. 06

by 누리달






가게를 막 시작하던 즈음 친정 쪽 집안 행사가 있었다. 원래는 가게를 쉬지 않는 날이었지만 그 행사가 먼저였기에 우리는 가족 행사에 참석했는데.

시어머님께서 남편에게 전화를 하셔서 왜 가게 문이 닫혀있느냐며 뭐라 하셨다. 그날을 그렇다 쳐도 그럼 일요일인 다음날이라도 열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다음날은 왜 문을 안열 거냐고, 무슨 일을 그딴 식으로 하느냐고 한 참을 말씀하시는데 그 공격적인 목소리가 옆에 있는 나에게까지 전달이 될 정도였다.


친척 가족들이 같이 앉아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미쳐 나가서 전화를 받지도 못 한 그 자리에서 남편은 정말 애써서 표정관리를 하면서 전화를 중간에 끊지도 못 하고 듣고만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애처롭게 보였던지.


그 뒤로 남편은 맛있는 음식들을 거의 먹지 못 했다.


아니 어머님. 아무리 그래도

본인 아들이 장인 장모님과 같이 친척들과 같이 있는 중이라 말씀드렸으면, 혼내는 건 조금 나중에 하셔도 되잖아요.






시어머님은 수시로 가게를 드나드셨다. ('수시로'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리고 무언가 잘 못 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말씀하시고 가셨다.


사실 그 이전에는.. 그저 본인 아들에게 잔소리는 좀 있으시다 느꼈지만.. 며느리인 내가 힘든 상황(회사를 자꾸 그만두고 게임을 많이 하는)이니까 감사하게도 내 편 들어주시느라 되려 아들에게 그러시는가 보다.. 했었는데.


가게를 하면서는 본인 아들에게 잘 못 한다고 지적하시는 그 자리에 나의 동생도 같이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이 문제였고, 아들에게 뭐라 하시는 그 일들은 사실 별 것 아닌 것들이기도 했지만 또 크게 보면 나도 내 동생도 같이 하는 일들이었다.


나의 남편. 형부가 혼나는 모습을 봐야 하는 일이 반복되자 우리 자매는 시어머님이 오시는 것이 불편해졌고 나는 한 참 고민하다 용기를 냈다.


"혹시 하실 말씀 있으면 아들 보고 오라고 부르세요"


"내가 가는 게 싫어서 그러니?"


"그럴 리가요. 자꾸 신경 쓰시고 걱정하셔서 힘드실까 봐. 바로 옆인데 아들(내 남편) 불러서 편하게 말씀하세요"


나는 원래도 눈치 보고 싫은 말 잘 못 하는 성격인데 당시 그 가게의 모든 것은 시부모님의 돈이었기에 마음에 더 부담이 많던 때였다. 그리고 취향과 성향의 차이는 컸지만 나에게 좋은 시어머님이 되고자 해 주시는 분이셨다. 불편하다는 한마디 말로 단정 짓고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제발 본인 아들을 처제 앞에서 구박하지 말아 주세요!!


라는 말을 하고 싶었었는데.

그 말은 입 속에서만 빙빙 돌았고, 결국 아무 소용없었다.






계절이 겨울이었기 때문에 시어머님은 우리가 그 작은 분식집에서 찐빵도 같이 판매하길 원하셨다. 그저 찐빵을 사서 기계로 쪄서 팔기만 하는 것인데 뭐가 어려우냐면서.


몇 번 거절을 했었는데 나의 동생이 아프다고 쉬던 그 기간 동안 기어코 찐빵 기계를 사들고 오셨다. 막 동생이 그만두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라 이 가게를 어찌 꾸려가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고, 남편에게 눈치도 보이던 때였는데 기어코 사들고 오신 그 기계를 보니, 동생이 그만두겠다고 안 나온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수입에 도움이 되고 안 되고는 둘째 문제였다. 우리가 가게를 하면서 몇 번 못 하겠다고 거절을 했던 일이었다.


우리의 능력 부족인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찐빵 기계를 놓을 위치도 문제였다. 가게 문 밖 손님들이 주문하는 곳 옆에 두어야만 했는데, 분식을 포장하다 말고 찐빵 주문이 들어오면 입구의 손님들을 제치고 문 밖으로 나가 찐빵을 꺼내 주고 다시 돌아와야 하는 구조였기에 손님이 두세 팀만 있어도 한 사람이 밖에 있어야만 빠른 포장이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저 다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동생이 그만두고 나서 시어머님은 더 자주 들르시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가게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더 많이 보였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없는 동안 형부가 혼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을 동생이 생각보다 더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딱히 화를 내시거나 소리를 지르시거나 하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건 이렇게 해야지' '이건 왜 아직 안 하고 있니?'가 반복되니 우리는 끊임없이 지적받는 느낌이었는데.. 문제는, 그것이 옆에 손님이 있을 때에도 새파랗게 어린 새로 온 알바생이 있을 때에도 같았다는 것이었다.


간혹 마감 즈음에 어묵이 덜 준비되어 있다며 국물 안에 한 웅큼 넣고 가시기도 했다. 때론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마감 때 어묵이 남아 버리기도 했다.


내 남편은 종종 어린 아르바이트생 앞에서 엄마에게 혼나는 사장님이었고, 나는 그런 그가 조금씩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그와 나는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일은 하고 있지만 묘하게 같이 있는 것이 더 불편하던.. 위태로운 시간들을 계속 꾹꾹 눌러가며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어느 날 그저 빨리 치우고 집에 들어가서 씻고 싶은 생각만 가득하던 마감 시간.


시어머님께서 우리가 청소용으로 사용하던 행주들을 보시고 빨래를 더 깨끗하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네~ 테이블에는 다른 것을 써요.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낮에는 바쁘니 한 번에 모았다가 당연히 빨래를 하죠"


등의 말씀을 드렸는데


"손님들이 이걸로 테이블 닦는다고 보면 어쩌려고"

"빨래는 모아서 할 시간이 없는 거니"

"내가 저녁에 집에 들고 가서 한 번에 빨아다 가져다줄까? 줄게!"


등의 말이 몇 번 오고 갔던 것 같다.


나는 좀.. 지나치게 '신세 진다'라는 느낌이 드는 상황을 싫어했던 것.. 인정은 한다. 안 그래도 수시로 신경을 쓰시는데 그런 일까지 부탁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매일 한밤중에 그 빨래를 전달해야 상황도, 빨래 해 주신 행주들을 매일 받아야 하는 상황들도.. 몸은 아주 조금 편해질지 몰라도 상상만 해도 마음이 너무 불편해졌다.


몇 번의 실랑이.. 아니, 걱정해 주시는 것에 대한 거절을 하고 돌아가신 후 나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는데 옆에 있던 남편이 갑자기 깔깔거리면서 한참을 크게 웃었다.


어리둥절.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뭐가 웃긴 거지?

날 놀리는 건가, 혹은 드디어 제대로 미쳤나 싶기도 했던 순간이었다.


나중에야 남편은..

내 한숨에서 위로와 공감을 느꼈었다고 말을 했다.


본인은 늘 어머니가 불편했는데.. 항상 '네가 잘못이다'라는 말을 들었고, 아내(나)도 어머님과 갈등이 있거나 불편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 그분 말씀처럼 '내가 이상한 건가'싶은 마음이 많았다고. 그런데 그 날 아내인 내가 대화 후 한숨을 쉬는 모습에서 '이 사람도 어머니의 말씀이 답답하게 느껴지는구나'하는 동질감(?)과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구나'하는 속 시원함을 느껴서 웃었다고.






당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이승환 님'의 '가족'이었다.


"어떻게야 내가 부모님의 맘에 들 수가 있을지 모르고"


그 곡의 마지막은 "사랑해요 우리 고마워요 모두"로 마무리되는 훈훈하고 감동적인 노래이지만.. 그는 그 노래 가사 중 딱 그 부분에만 집중해서 본인 마음을 투영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가 시댁과 좀 더 많이 일상생활을 함께 하게 되면서 나는 그때 그 소절에 집중하던 남편의 모습이 종종 떠오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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