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나는 속이 시원해졌다.

부부, 결혼생활 _ 떡볶이만 생각하면 죽고 싶어. 07(End)

by 누리달



둘이 하는 분식집 운영은 점차 익숙해져 갔지만 여전히 나는 지인에게는 음식을 더 퍼주어야 하는지 돈을 제대로 다 받는 깔끔한(?) 장사를 해야 하는지 판단도 못 하는 장사 초보였다. 누구는 이래라, 누구는 저래라 들리는 말은 많은데 다들 다른 의견을 제시했고,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사공이 너무 많은 배였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곳은 내 가게가 아닌 것만 같았고 일은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돈이라도 잘 벌리면 돈 버는 맛에라도 열심히 하겠는데.. 돈이 안 벌려서 재미가 없었는지, 재미없게 일을 해서 돈이 안 벌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인건비도 나올까 말까 하는 정도였다.


그 와중에 오래간만에 동창들을 만나야 하는 일도 있었다. 간단하게 소식을 전했고 시어머님께서 자주 들르신다는 말도 했었다.


"다 큰 아들의 가게 일에 신경 쓰실게 뭐가 있어서?"


친구의 그 한마디가 아주 오래 머릿속에 맴돌았다.






계절이 두어 번 바뀌던 즈음 그는 '더 해봤자 의미가 없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당연하겠지만, 우리가 그렇게 결정을 내렸을 때 시어머님의 반대는 심하셨다. 그럼 도대체 뭘 해 먹고 살 거냐면서. 왜 다 차려준 밥상도 못 떠먹느냐고. 다른 거 할 줄 아는 것이 뭐가 있냐고. 더 이상은 안 도와주실 거라는 분노와 협박 등.


나를 따로 불러다가 여러 번 말씀도 하셨다. 네 남편 미쳤다고. 제정신 아니라고. 너라도 말려야 한다고. 왜 그걸 안 말리고 가만히 있느냐고.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 하고, 시어머님의 말씀에 동의도, 대놓고 내 남편의 편을 들지도 못 했다. 아마 대놓고 말씀은 안 하셨지만 본인 아들만큼이나 며느리인 나도 무척이나 맘에 안 들고 미우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당시 확실하게 들었던 감정은.. '나는 내 남편의 의견을 따라주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일이 마냥 힘들기만 했지만 그가 계속하고자 했다면 나도 같이 계속했을 것 같다. 당시 그는 벼랑 끝에 선 사람 같아 보였다. '누구든 나를 좀 잡아줘, 누구든 나를 좀 알아줘, 나 여기 있어'라고 외치면서. 눈치를 많이 보는 내가 시어머님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뜻에 군말 없이 동의하고 같이 행동했던 것은, 어디에서도 존중받지 못하고 환영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감정과 생각을 최소한 나는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였고, 후에 그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이 생겼다.


(뒷말이지만.. 그는 그때의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기는 하는 건지.)







우리가 계속 말을 듣지 않고 가게를 정리하겠다고 하자 시어머님께서는 결국 본인 아들을 정신과로 보내셨다. 그분의 속 뜻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으나 당시의 내 감정, 내 주관적인 시선에서는 '이것도 못 하는 이유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다. 제정신이라면 이 가게를 제대로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라는 생각에서의 결론인 것처럼 보였다..(그분의 의도와 사실과는 다를 수도 있다)


본인 아들이 일을 많이 힘들어하고 이 가게가 싫다고 하는 데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니 아들의 마음이 편해지도록 병원의 도움을 받아보자 라는 의도였다면 좋았겠지만.. 최소한 내가 보기에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정신과에서 그는 심각한 수준의 우울증 진단과 약을 처방받았고, 우리의 가게는 그렇게 정리되었다.






나의. 아니 우리의. 아니 남편의? 첫 가게였는데도 몇 달 만에 정리되고 간판이 바뀌는데 아주 조금의 미련도 없었다. 그 골목을 지나다니는 것도 싫었고, 그 골목을 지나다닐 때마다 내 아이가 "여기 우리 가게였는데~" "난 그때 좋았는데~"라는 말을 할 때면 맞장구를 쳐주지도 못 하고 그저 입을 다물었었다.


갑자기 일을 그만두어버린 동생과는 사이가 불편해졌다. 내 아이의 초등학교가 가까이에 있어서 '엄마'의 역할에서의 좁은 인맥, 작은 인간관계도 더 묘하게 위축되었다. 시부모님의 돈을 잃은 부분도 많아서 죄송하고 눈치 보이는 것도 더 많아졌다. 그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딴 것도 경력을 쌓은 시간도 아니었다. 나름 육아와 교육에 신경 쓰고 싶었으나 그동안 세 아이들은 방치되어 안 좋은 습관만 들인 것만 같았다(따지고 보면 가게 일 때문은 아니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혼자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겠지만).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잃은 것이 너무 많았던 시간.



물론, 그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그가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잘 해내지 못하고 직업이 자꾸 바뀌고, 늘 뾰족하게 날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가 우울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그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그와 그의 어머님과의 관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 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래도 그의 우울증 '진단'으로 속은 조금 시원해졌다. 도무지 모르겠어서 답답하기만 했던 그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 뒤로 아주 오래 떡볶이와 튀김 등의 분식을 먹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