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아프시면 엄마는 신이 난다.

결혼, 부부생활 _ 한결같은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by 누리달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은 신이 났다.


"네 아빠가 글쎄, 한 동안 안 먹던 홍삼 진액을 한 번에 드시고는 식중독인가에 걸려서 병원 응급실에를 다녀왔다지 뭐야."


나는 아빠가 홍삼 등이 몸에 안 맞으신다고 알고 있었는데, 선물 받은 거라 그러셨는지 아니면 그건 괜찮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말씀으로는 한동안은 꾸준히 드셨다고 했다.


"본인 몸은 끔찍하게 챙기는 사람이라, 한동안 안 먹었다고 그걸 또 한 번에 먹었나 봐. 하여간 욕심은. 몸은 그렇게 챙기려고 맨날 '좋은 거 먹어야 한다' 그러면서 운동은 전혀 안 하고. 움직이는 일도 안 하고. 그래서 배는 점점 심각하게 나오고. 그런데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하기에 내가 '그러게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라고 말은 했지"


샘통이다-라고 생각하시는 엄마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목소리였다. 늘 아버지에게 짜증은 나는데 직접 어쩌지는 못 하시고 심각하지 않은 적당히 이 정도의 일이 생기면 그것으로 아버지를 향한 기분이 좀 나아지신다.


엄마 편에서 열심히 맞장구는 쳐준다. 사실, 나도 엄마와 비슷한 감정인 부분도 있다. 내가 보기에도 아무것도 안 하시면서 늘 '사람이 잘 먹어야 하는데..'라며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은 '네 엄마는 무능력해서 나에게 먹을 것들을 잘 안 챙겨줘'라고 들렸다.


그런데 사실은 아버지가 무능력하셔서 그곳에 가서 지내시는 것이고, 엄마는 주말마다 가셔서 일주일 반찬을 해 놓으시는데, 아버지는 일주일에 몇 번씩 이웃분들과 외식을 하셨다.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내가 어릴 때에는 각자 남편 험담을 하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엄마는 듣기만 하실 뿐, 다른 이들에게 남편 험담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린 내 눈에도 그들의 이야기보다 내 아빠의 모습이 더 안 좋은 것이 많아 보였는데도.


잘 기억은 안 나지만 10대 즈음부터는 엄마는 나에게만 아빠에 대해 불편하거나 답답한 부분들을 말씀을 하셨다. 같이 보고 듣고 겪는 일이라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고. 엄마도 그렇게라도 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버지는 늘 엄마를 무시(?) 하시는 분이셨다. 어느 즈음부터는 엄마가 사회생활을 한 시간이 아빠만큼 되었거나 더 되었을 텐데도 늘 "바깥일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도 몰라, 그런 것도 못 해서 무슨 일을 한다고"라고 말씀하셨다. 엄마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여자가 말이야.."라는 말도 정말 많이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는 '그럼 아빠는 남자가, 가장이 말이야 왜 돈도 안 벌어 오십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지는 못 했다.


그런 엄마였기에, 그런 상황은 소소한 통쾌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결혼 15년 차 우리)


퇴근을 하고 온 남편의 어깨가 땅으로 꺼지려 한다. "힘들었어?"라고 물으니 "오늘 힘들었어"라고 대답을 한다. 특별할 것 없이 늘 비슷비슷한 일터에서의 생활이고,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일을 다시 하게 된 것이고.


코로나19로 2년 가까이 쉬다가 출근을 하게 된 거라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신나게 일을 하고 오는 것이 맞지 뭘 투정이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저 토닥토닥해 준다.


"고생했어." 말 주변 없는 내가 하는 유일한 말인데, 그의 표정을 보면 그것으로 되었지 싶다.


예전에는 축 쳐져서 들어오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반기지고 못 하고, 나도 오늘 하루 육아로 힘들다 외로웠다 투정을 부리지도 못 했다. 어느 기간에는 '내 하루는 너무 힘들었는데, 너는 PC방에서 놀다 왔을 것 같은데 왜 도와주지는 않고 힘든 척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입 밖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감정은 그대로 그에게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직접 말을 하지 않았어도 '집에서 애만 보는 게 뭐가 힘들어, 돈 벌고 들어온 내가 더 힘들지'라고 느껴지는 듯했다. 팩트와 상관없이 그러한 감정은 나를 계속 작아지게만 만들었다.


그렇게 쌓인 억울함과 외로움과 우울한 감정은 복리처럼 불어났다. 작은 감정들이 모여서 커지면 '미움'까지 들러붙었다. 아마 둘 다 똑같았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에서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문제없는 집안 없다고는 하지만 우리 집도 그의 집도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집은 아니었으니.)


지금은,

우리는 다행히 그 궤도에서 조금 벗어난 듯 싶지만.






그러니 엄마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는 되는데. 전화를 끊고도 마음 한쪽이 자꾸만 저려온다. 그래도 엄마가 응급실 다녀왔다는 아빠에게 "많이 힘들었겠네"라고 말을 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한 번에 많이 먹으면 당연히 그렇지."라고 '고소하다'라는 감정을 품고 하는 말 보다, 안 그래도 겁도 많으신 분인데 "혼자 갔다 와서 더 힘들었겠네"라고 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는 받아 주는 사람에게나 가능하다는 것 알고는 있는데. 그래서 나도 지난번 명절 다음날 듣다가 듣다가, 참다가 참다가 아버지께 버럭!! 하고 왔고, 아버지와의 식사 자리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면서 굳이 일부로 만들지는 않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헤어지시지 않을 거라면,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엄마부터 작은 변화라도 꾸준히 시도해 보시면 조금은 아버지에게도 변화가 생길지 모르는데. 본인의 고집이 너무 강하신 분인 건 맞지만, 그래도 아버지도 많이 외롭고 인정받을 곳 없으셔서 더 그러하신 것도 같은데.


두 분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도.. 아버지께 전화 한 통을 못 했다. 어쩌면 내가 예상하지 못 한 그분의 어느 말씀이 아직은 약한 내 마음 한쪽을 긁어놓을 수도 있으니.


아... 나도 모르겠다.

나도 잘 못 하면서. 누가 누구 걱정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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