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뭐가 문제야.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착한 아이 증후군, 혹은 가스 라이팅 피해자
여행지 낯선 방에서 오랜만에 악몽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나는 아이들과 놀러 갔고, 거기에 외가 친척들도 계셨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연락도 없이 찾아오셔서 엄청나게 놀랐던 꿈. 나는 불안에 떨면서 애써 그 상황을 숨겨보려 했는데 결국은 다 들켜버렸고, 아버지는 본인만 빼고 즐거운 그 상황에 분노를 터트리셨다.
다행히 그때 잠에서 깨어나긴 했는데.. 한참을 다시 잠들지 못하고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을 만큼 불쾌함은 오래 남아있었다.
나는, 도대체 왜 내가 내 가족과 내 마음대로 놀러 가는 것에도 이렇게 불편해하는 것일까.
주말에 큰 마음먹고 막내만 데리고 놀러 갔다 오기로 했다. 짐을 싸고 다 큰 두 아이들을 집에 두면서 내가 당부했던 것 중 하나는 '외할아버지께서 혹시 전화하셔서 물어보시면 엄마 잠깐 나갔다고, 그 정도만 말해'였다.
거짓말도 싫고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시키는 것은 더 싫은데, '이 와중에 놀러 갔다, 심지어 두 아이들은 놔두고'라는 상황을 아버지가 알게 되시면 어떻게 반응을 하실지 예측할 수가 없었기에 소심한 나에게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토요일 저녁만 되면 장모님께 전화드리라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셨었고, 지금도 주말 즈음에는 내가 안 하면 기다리다가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시는 분이셨기에 혹여 이번 주말에도 내가 안 하면 전화가 올까 봐 밖에서 통화하기 싫어서 출발 전 금요일에 미리 안부 전화도 드렸다.
놀러 가기로 했던 때는, 시골에 계신 아버지를 뵈고 온 지 두 달이 지났고 나는 또 우울감과 초조함이 슬금슬금 기어올라오던 중이던 때였다. 그래도 최근에는 조금 나아진 편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시골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 자꾸만 신경이 쓰였고, 다녀오면 큰 숙제 하나 끝마친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결혼 후 계속 그 정도 주기로 찾아와 주고 아이들을 보여주시길 원하셨었다. "외롭다" "애들 보고 싶어서"라는 말씀이 처음에는 이해도 되고. 거절할 명분이 없기도 했고. 처음부터 시골에 계신 것도 아니셨으니 아이들 어릴 때에는 어딘가 같이 외출을 하기도 했고, 또 아이들도 시골에만 나가도 좋아할 나이이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순식간에 자라 더 이상 재롱을 떨 나이도 아니고 TV나 스마트폰 말고는 관심도 없는데,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아이들을 앉혀놓고 번갈아가면서 술 따르라 하시면서 본인 말씀만 하시는 분이셨다. 최소 한두 시간을 아이들은 그저 앉아서 외할아버지의 설교만 듣고 있어야 하는 식사 자리가 되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우리가 가서 있을 때에도 이웃분들이 찾아오셔서 나가자고 하시면 다녀오시기도 했다. '보고 싶다, 같이 밥 한 끼'라는 것을 강조하시고 한두 달에 한번 본다고 짧다 서운하다 하시면서 그 와중에 매일 보는 이웃분과 외식하고 오시는 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사실, 그리 다녀오시면 나는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코로나19로 남편이 직장을 잃으면서 내 눈치(?)도 조금은 보시고, 나도 전에 한번 큰소리 낸 뒤로는 대놓고 나에게 뭐라고는 안 하시는 편인데도 나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버지에게 가기로 약속을 한 날도 아니고 얼마 뒤면 명절이라 뵙고 올 것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버지는 찾아뵙지도 않고 나 사는 게 힘들다 하면서 나 혼자 놀러 다니는 것? 아님, 코로나 시국인데 놀러 다닌다고 잔소리 들을까 봐?
내가 생각해도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웃기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저 '잘했네' 하실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머리로 아무것도 아니다 괜찮다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자꾸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르고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감정에 영향을 받는 것을 보면.
어쩌면 아무도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가스 라이팅 하는 부모'아래에서 자란 피해자 수준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
남편은, 시댁에 공짜 쿠폰이 생겨서 다녀오는 거라 말씀드렸다고 한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