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길은 내가 선택해
인어공주가 인간으로 변하기 전, 마녀는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 한번 인간이 되고 나면 영영 인어로 되돌아갈 수 없다.
둘째,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바다의 물거품이 될 것이다.
셋째, 인간으로 되기 위해서는 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나 인어공주, 그리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니다.
나 역시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우리 아빠는 바다의 왕이다. 깊은 바다 밑 어둠 속에 사는 마녀 역시 이 왕국의 백성일 뿐.
특히나 마녀가 힘을 쓰지 못하는 낮에는 그야말로 우리 아빠가 최고의 권력자이다, 마녀보다 한 수 위란 말씀.
마녀 자기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불공정한 조건을 세 가지나 제시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협상한 절충안은 이렇다.
첫 번째 조건은 유지, 두 번째 조건은 무효로 제외하고 세 번째 조건은 내용을 조금 바꾸었다. 목소리를 유지하는 대신, 인어의 노래를 못 부르게 된 것이다. 인어에게 있어 노래는 목소리만큼 중요하다. 노래를 통해, 멀리 떨어진 인어들과 연락과 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잃어버린 나는 더 이상 내가 먼저 언니들과 아빠를 부를 수 없다.
지금은 조용한 바닷속에 비해 화려한 육지의 생활이 끌리는 나지만, 언젠가 바다 생활이 그리울 수도 있다. 게다가 내가 지치고 아플 때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힘들다, 어쩌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육지에서 혼자 외롭게 죽어갈 수도……. 갑자기 두려움에 몸이 떨린다.
하지만 난 내가 제일 잘 안다. 호기심 왕성하고 궁금한 것은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지금 미루더라도 언젠가 나는 이 길을 선택할 것이다.
결국 나는 인간이 되었고, 왕자를 만났다. 왕자는 첫눈에 나에게 반했고, 지극정성으로 사랑해주었다. 중간에 잠시 왕자를 구한 것이 다른 소녀인 줄 착각하는 오해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목소리가 있으니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육지의 인간들은 은혜도 모르고 배신을 일삼는 파렴치한 종족들이라고 우리 바다 왕국에서는 말해왔지만, 다행히 왕자는 그런 인간은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녀의 두 번째 조건을 받아들여도 문제가 없을 뻔했다. 하지만 남자의 사랑에 내 목숨을 건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물론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내 삶이 가장 소중하다. 다만 결과적으로 보면 두 번째 조건은 이루어졌으니 차라리 세 번째 조건을 아예 없었던 것으로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노래를 못 부르니, 재미가 없고 무료하다.
시간이 흘러 왕자는 왕이 되었다. 왕자일 때도 바빴지만 왕이 되니 얼굴 한번 보기 어렵다. 그러나 나도 못지않게 바쁘다. 왕비로서의 일도 많지만, 떡집 사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닷속 인어들은 먹을 것이 아무래도 제한되어 있다. 육지에 살다 보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많다니……. 이 맛을 모르는 아빠와 언니들, 그리고 다른 인어 친구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닷속으로 가져가기엔 어려운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자, 바다 왕국에서도 먹을 수 있을만한 것으로 떡을 생각했다. 멥쌀로 만든 떡은 물속에 담그면 쉽게 풀어지지만 찹쌀로 만든 떡은 상대적으로 그 모양을 유지하기 쉽다. 떡 외에 맛을 내는 재료들은 시루떡처럼 떡의 바깥쪽에 팥가루가 묻히기보다, 송편이나 꿀떡처럼 떡의 안쪽에 설탕, 팥, 콩 등을 넣는 것들로 개발했다. 떡의 겉 부분은 기름을 발라 매끄럽게 하고 떡이 비닐에 들러붙지 않게 포장한 다음 한 번 더 진공포장을 했다. 이때 진공포장을 너무 과하게 하면 떡 안쪽의 내용물이 터져 나오기 때문에 적당히 하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진공포장을 한 떡을 언니들에게 전해주면, 바닷속 궁궐까지 떡이 풀어지지 않은 채 가져갈 수 있고 먹기 직전에 포장을 제거하면 육지에서와 거의 비슷한 맛의 떡을 먹을 수 있었다.
인어의 노래는 더 이상 할 수 없기에, 나는 인어로 변하기 전 언니들과 약속을 했다. 다섯 명의 언니와 아빠, 이렇게 여섯 명의 가족과 내가 매달 1일 우리가 약속한 그 바닷가에서 만나기로 말이다. 그럼 한 명당 일 년에 2번씩, 가족들을 번갈아 만날 수 있다. 내가 개발한 떡은 이때 전달했다. 하지만 왕비가 되다 보니 여러 행사에도 참여해야 하고 한 달에 한 번이긴 하지만 날짜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때그때 개발한 떡을 맛 보여 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들만의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나에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랩이 들렸다. 노래인 듯 노래는 아닌데, 이걸 잘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희망이 생겼다. 랩을 하는 래퍼들의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해 봤지만 어색한 나머지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처음에는 너무 어렵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지만, 언젠가부터 점점 랩을 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랩 시작하기, 랩 하는 방법, 랩 잘하는 법 등 여러 가지 영상들을 찾아봤다. 랩은 기본적으로 랩을 하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담기에 좋은 도구였다. 육지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 그리고 사랑을 찾아 고향을 떠나왔지만, 아는 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이곳에 왕자 하나만을 바라보고 올라온 외로움은 가끔 나를 슬프게 했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바다왕국과 인어들을 향한 향수병도 슬쩍 랩에 얹어 보았다.
혼자 떡을 만드는 고요한 시간, 아무도 없을 때 누구의 시선에도 구애받지 않고 랩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이제는 바다에 나가서 랩을 불러볼 차례. 언니들이 듣고 와 줄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궁을 나선다. 노란 꽃잎을 자랑하는 유채꽃, 푸르른 나무, 쪽빛 하늘... 눈부신 날이다. 뭉게구름도 왠지 인어의 모습인 듯 정겨워 보인다.
드디어 도착한 바닷가, 서툴지만 용기를 내어 랩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잔잔한 파도 밑에서 느껴지는 움직임.
언니다! 언니가 내 랩을 듣고 왔다.
‘이젠 언제라도 언니들을, 아빠를, 친구들을 볼 수 있어.’
왠지 울컥하고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공유마당, 그리고 CCL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자료를 공유해주신 창작자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