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요정

by 하늬

눈이 소복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소녀는 오늘도 성냥을 팝니다.


2021년, 이제 가정에서는 가스레인지보다 전기레인지,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담배를 피울 때도 성냥보다 라이터를 사용합니다. 생일 케이크의 촛불에 불을 붙일 때나 성냥을 구경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나마 케이크를 사면 빵집에서 성냥을 같이 제공하니, 따로 성냥을 살 필요도 없습니다.


소녀는 하루에 작은 성냥갑 1개를 팔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운이 좋습니다. 아직 오전인데 벌써 한 아이가 성냥을 사겠다고 왔습니다.

어쩌면 소녀보다 아이의 운이 더 좋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녀가 파는 성냥은 보통의 성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소녀에게 성냥을 사서 곧장 집으로 달려갑니다. 아이의 집은 눈 내리는 밖의 날씨와 다름없이 썰렁합니다. 단칸방의 차가운 바닥에는 아픈 엄마가 누워 계십니다. 아이는 다 타서 식어버린 연탄을 조심스레 집게로 들어 올립니다. 연탄불이 꺼지기 전 새벽에 연탄을 갈았어야 하는데, 하필 오늘은 늦잠을 잤습니다. 헐레벌떡 일어나 신문배달을 다녀오니 방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습니다. 서둘러 주어온 신문지를 구겨서 번개탄에 불을 붙이려는데, 마침 라이터 기름도 떨어졌는지 불이 붙지 않습니다. 혹시 어딘가에 남은 성냥이 없나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불현듯 신문배달을 할 때 성냥을 팔러 나온 소녀를 보았던 것이 떠오릅니다. 서둘러 가보니, 소녀는 아까 그 자리에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나이도 어린 소녀가 추운 겨울에 성냥을 파는 모습을 보는 아이의 마음은 불편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마음이 급합니다. 아픈 엄마가 몇 시간 전부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는 생각에 얼른 고개를 저어 소녀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며 집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성냥개비 하나를 꺼내 성냥갑에 긋습니다. 빨간 불꽃이 켜지는 순간 어디선가 요정이 나타났습니다.


“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봐. 네가 원하는 시간으로 다시 너를 데려가줄게.”


아이는 꿈을 꾸는 건가 싶습니다. 요정은 아까 보았던 성냥팔이 소녀와 똑 닮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나타난 요정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이는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아이는 엄마가 건강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습니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도 지금과 별다를 것 없이 둘이 외롭게 살았지만, 일을 마치고 온 엄마와 함께 오순도순 식사를 하던 저녁이면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편찮으시기 전이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요정이 아이의 손을 잡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그때를 떠올려보라고 합니다. 아이의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번집니다. 요정이 말합니다.

“자, 이제 눈을 떠봐.”


“아가, 엄마 왔다. 오늘은 추우니까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여서 얼른 밥 먹자.”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 엄마가 아이를 보며 웃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달려가 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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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는 여전히 성냥을 팔고 있습니다. 그나마 눈이 그쳐서 다행입니다.

두꺼운 코트를 입고 부츠에 털모자까지 단단히 껴입은 한 소년이 소녀를 보고 있습니다. 소녀도 소년을 마주봅니다. 둘은 눈씨름을 하듯 서로 한참을 보고 있습니다. 이윽고 소년은 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고는 성냥 3개를 달라고 합니다. 소녀가 거스름돈을 주자, 소년은 손을 내저으며 재빠르게 어디론가 뛰어갑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성냥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소년의 집은 으리으리하게 좋습니다. 애초에 성냥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겨울에 사람들이 잘 쓰지도 않는 성냥을 팔고 있는 소녀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무료한 소년의 일상에 작은 흥밋거리가 생긴 겁니다. 특별히 필요한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지만, 용돈은 언제나 주머니에 가득합니다. 특별히 소녀에 대한 연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부자로 태어난 자신 같은 사람도 있고, 가난하게 태어난 소녀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 이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년은 성냥개비로 삼각형 모양을 만듭니다. 그렇게 겹겹이 쌓고는 무너뜨립니다. 다시 사각형 모양으로 성냥개비를 층층이 쌓습니다. 다시 무너뜨립니다. 소년은 태어나서 한 번도 제 스스로 성냥을 켜본 적이 없습니다. 소년에게는 늘 그를 돌봐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습니다. 집안일을 돌봐주는 집사와 소년을 가르치는 입주 교사, 소년이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그를 먹이고 입히고 놀아주는 유모가 있었습니다. 소년에게는 형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형은 늘 집이 답답하고 숨 막힌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성인이 되자마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소년은 더욱 외로워졌습니다. 형과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했지만, 소년은 늘 자유로운 형이 좋았습니다.

소년은 성냥을 켜보려고 시도해보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불이 날까봐 손이 뜨거울까봐 걱정도 됩니다. 소년은 혹시라도 화재가 날까 겁이 나, 플라스틱 통에 물을 가득 담아 옆에 가져다 놓습니다. 오늘은 기필코 성냥 키는 것을 성공하리라 다짐하고 계속해서 성냥개비를 성냥갑에 부딪쳐 봅니다. 성냥개비가 부러지기도 하고, 푸시시 연기가 나기도 합니다. 작은 불꽃이 이는가 싶다가 꺼지기도 여러 번입니다. 드디어 성냥이 켜지고, 요정이 나타납니다. 소년은 놀라지도 않고 요정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요정은 소년이 원하는 과거의 시간으로 데려가준다고 말합니다. 소년은 잠깐 고민하는 듯 했지만, 이내 고개를 푹 숙입니다.

“아니, 그냥 이대로 있을래. 난 형과 함께 지냈던 옛날이 좋지만, 형은 지금이 더 행복할 것 같거든.”

요정은 다시 한 번 이야기합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이번이 마지막이라도?”

소년은 솔직히 아쉽지만 마음을 다잡습니다. “지금도 그리 나쁘진 않아.”

요정은 진심으로 형을 생각하는 소년이 기특하면서도 안타깝습니다. 소년도 아직 어린 나이인데,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 깊은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 네 선택을 인정할게. 하지만 형도 너와 같이 했던 그 시절이 분명 행복했을 거야. 가끔은 너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네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해보렴.”

소년은 요정의 말에 미소를 보입니다. 내내 무표정했던 소년에게 정말 오랜만에 보이는 웃음이었습니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겨울의 밤은 더욱 길고 조용합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소녀는 요정이 되어 날아갑니다. 성냥팔이 요정은 오늘도 이렇게 두 명의 어린이에게 따뜻함을 전해주었습니다.







현실이 힘들고 지칠 때, 사람들은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과거가 행복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미래를 위해 지금 잠시 힘든 것은 이겨내라, 용기를 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노력해봐라” 하는 충고가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때로는 그저 그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그 대상이 아이들이라면 말이죠.

이 글 <성냥팔이 요정>은 그렇게 마음을 나누고, 행복한 시절을 선물해주고 싶은 의미에서 써 보았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가끔은 그런 행복한 상상만으로도 또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되곤 하니까요.





제목에 있는 그림 이미지 출처 표시합니다.

a little girl, 김창숙, 공유마당,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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