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의 거울

- <눈의 여왕> 재해석

by 하늬

‘여기가 어디지?’

게르다는 홀로 카이를 찾아 헤매고 있다.

숲을 하얗게 덮고 있던 눈송이들은 어느덧 물로 변해 사라져 버리고,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떠났던 제비도 돌아왔다. 눈의 여왕이 카이를 데려간 지도 벌써 한 계절이 지났다.

친구들과 어른들도,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도, 제비도 모두 다 카이는 죽었다고 한다.

게르다와 카이는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둘도 없는 친구이다. 게르다는 울며 카이는 살아있다고 외쳤지만, 마음속에서는 점점 불안한 마음이 싹터간다. ‘과연 카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게르다는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순간, 정말 다시는 카이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카이의 눈과 심장에 박힌 유리 조각이 게르다의 눈앞에 아른거린다. 사실 게르다는 유리 조각을 실제로 보진 못했다. 다만 카이가 눈과 가슴이 아프다고 소리쳤고, 카이가 그때부터 변한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 엘프들이 가지고 놀던 거울일 것이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이야기 중에 <엘프의 거울>이 있었다. 엘프의 거울로 비추어보면 아름다운 것은 더욱 크고 아름답게, 그리고 두려운 것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게 보인다고 하셨다.

겁이 많고 마음이 여린 카이는 동네 아이들의 장난에도 쉽게 움츠러들고는 했다. 그래서 씩씩한 게르다는 못된 아이들의 장난에서 카이를 지켜주었다. 그런데 카이의 눈과 심장에 엘프의 거울 조각이 박힌 이후에, 카이는 변했다. 카이에게 짓궂게 장난치던 친구들이 시비를 걸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덩치고 크고 험상궂은 형들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용감하게 행동했다.

게르다는 이러한 변화가 마냥 좋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눈의 여왕을 따라간 것도 카이가 이렇게 바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게르다가 알던 예전의 카이라면 절대 처음 보는 낯설고도 아름다운 눈의 여왕과 함께 가지 않았을 것이다.


KakaoTalk_20210810_161210443.jpg 여왕 이미지, 정선애, 공유마당, CC BY


‘카이에게 박힌 유리 조각이 없어지고, 예전의 카이로 돌아오는 것이 과연 좋을까? 어쩌면 카이는 지금 자신의 변한 모습을 더 원하지는 않을까?’

게르다는 카이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도, 유리 조각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아냐, 우선은 카이를 만나는 것이 중요해. 유리 조각은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아.’

게르다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야, 누가 내 다리를 밟은 거야?”

게르다가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순록이 한 마리 앉아있었다.

“내가 딴 생각을 하느라, 너를 미처 보지 못했어. 다리는 괜찮니? 많이 아파? 정말 미안해.”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사과의 말을 쏟아내는 게르다에게 순록은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그렇다면 한번은 봐주지. 그런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느라,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한 거니?”

게르다는 순록이 많이 다치지 않은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친구 카이를 찾고 있어. 카이는 지난겨울 눈의 여왕을 따라 사라졌거든.”

“뭐라고? 눈의 여왕이 사는 곳은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곳이야.”

순록은 벌떡 일어서며 게르다에게 충고했다.

“네가 그곳을 찾는다 해도, 눈보라 때문에 앞으로 한 발자국 디디기도 힘들걸. 뭐가 보여야 말이지. 인간의 눈으로는 어림없어.”

유난히 붉고 반짝이는 순록의 코를 보고 있던 게르다는 문득 생각했다.

“그런데 혹시 너는 루돌프가 아니니?”

순록은 으쓱하며 대답했다.

“맞아, 내가 바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썰매를 맨 앞에서 끄는 루돌프 님이지. 하하하”

게르다는 루돌프에게 한걸음 다가서며 두 손을 모아 부탁했다.

“루돌프, 나를 눈의 여왕이 사는 곳으로 데려다줘. 너의 반짝이는 코는 눈보라 속에서도 앞을 비춰줄 수 있잖아, 그렇지?”

루돌프는 겁이 덜컥 났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수 있는 눈의 여왕을 만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게르다에게 두렵다고 솔직하게 말하기에는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으흠, 뭐 그렇긴 하지만…….”

게르다는 다시 한 번 루돌프에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카이는 내게 너무나 소중한 친구야. 루돌프 너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을 거야. 부디 네 친구들을 생각하며, 나를 눈의 여왕에게 데려다줄 수 없을까?”

루돌프는 자신이 다른 순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을 때, 곁을 지켜준 친구 돈더와 코멧을 떠올렸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너무 힘들고 지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루돌프는 게르다에게서 친구들을 보았다. 그리고 용기를 냈다.

“좋아. 그럼 내 등에 올라타. 함께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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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다는 루돌프와 함께 드디어 눈의 여왕의 궁전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카이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눈의 여왕과 함께 있었다. 오랫동안 카이를 찾아 해맨 게르다가 어이없을 정도로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니 카이는 웃는 표정으로 고정된 채 얼굴이 얼어있었다.

“카이,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가족과 친구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

게르다는 카이의 손을 잡았다. 카이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카이는 싫다며 게르다의 손을 뿌리쳤다. “눈꽃송이로 득한 이곳은 너무 아름다워. 눈의 여왕님도 좋아.”

게르다는 다시 카이의 손을 잡고 자신의 품속에 끌어당겨 안았다. 카이의 몸은 너무 차가워서 게르다는 고통스러웠지만 그럴수록 더욱 꼭 안아 주었다.

“바보야, 여기 더 있다가 넌 얼어 죽을지도 몰라.”

카이의 몸은 점점 따뜻해졌고, 카이의 눈과 심장에 박힌 유리조각도 빠졌다.

“게르다, 여긴 너무 춥고 쓸쓸해. 할머니가 기다리시는 우리 집으로 어서 가자.”

카이는 어느덧 예전의 카이로 돌아와 있었다.


카이와 게르다는 루돌프의 도움으로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게르다는 팔을 벌려 루돌프를 껴안았다. “루돌프, 절대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정말 고마워.”

루돌프도 게르다 못지않게 섭섭했지만, 가볍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언젠가 크리스마스에 또 만날지도 몰라. 너무 섭섭해 말라고, 친구. 하하하”

루돌프가 날아오른 하늘을 바라보며, 게르다가 카이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카이, 엘프의 거울조각이 사라진 게 아쉽지 않아?”

카이 역시 루돌프의 뒷모습에 눈을 떼지 않은 채 게르다에게 대답했다.

“게르다, 난 이제야 진짜 용기를 배운 것 같아. 네가 끝까지 날 포기하지 않았잖아.”

게르다는 자신에게 손을 내민 카이의 손을 마주잡았다. 두 아이는 서로 마주보며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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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 이야기 속에는 ‘선하거나 아름다운 것을 비추면 쪼그라들어 거의 보이지 않고, 쓸모없고 추한 것은 도드라지면서 훨씬 더 추하게 보인다’는 ‘호브고블린의 거울’이 있다.

만약, 이 거울과는 반대의 성격을 가진 거울이 있다면 어떨까?


너무 힘들고 지칠 때면, 내가 좀 더 긍정적인 성격이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카이의 눈에 호브고블린의 거울 조각의 눈에 박힌 것처럼, 갑자기 무언가에 의해 바뀌는 것은 어떨까? 굉장히 유혹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할 것 같다. 현실을 도피하고자 술이나 마약에 빠지듯이 말이다.

진정한 긍정의 마음과 용기, 내면의 힘은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길이 때로는 너무 멀고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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