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이 약손, 엄마 손이 약손"
배가 아플 때면, 일단 낑낑거리며 엄마에게 파고들어 다리를 베고 눕는다. 그러면 '엄마 손이 약손'이라는 주문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살살 배를 문질러줬던 엄마. 마음이 안정되면서 잠이 솔솔 온다. 배 아픈 고통은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스르륵 없어진다.
그때는 툭하면 배가 아팠다. 학교 가기 싫어도, 엄마에게 꾸중을 들어도 배가 아팠다. 어른들은 꾀병이라고 놀렸지만, 나는 진짜 아픈 걸. 억울했다.
그렇다고 실제로 위나 장에 문제가 있기야 했을까? 스트레스성 복통 정도로 해두자.
아이들은 열이 많이 난다. 체해도, 놀라도, 힘들어도 열이 난다. 열이 나면 입맛이 뚝 떨어지기 마련이다.
아프고 열나도 밥을 잘 먹는 경우는 건강을 타고난 아이들이다. 물론 체질도 영향이 있다, 사상인으로 보자면 태음인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 가족은 태음인의 성향은 거의 없기 때문에 어디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조금 떨어졌다 싶으면, 곡기를 끊는다. 건조해서 목구멍이 달라붙을 정도가 돼서야 물만 조금씩 넘기고,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야 겨우 음식을 먹는다.
그나마 나는 죽이라면 질색하고 싫어해서 아플 때면 엄마가 늘 식혜를 만들어주셨다.
식혜 자체가 달달하고 맛있어 입이 깔깔할 때도 먹기 좋지만, 푹 삭은 밥알은 밥 대신 내 몸에 영양을 공급해주는 것 같아 든든했다.
그때만 해도 식혜가 흔하던 시절은 아니었다.
아마 내가 고등학생 때쯤 식혜가 제품으로 판매되어 나온 기억이 난다. '식혜를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밖에서 사 먹을 수 있다니' 감탄했다. 맛도 꽤 괜찮았다. 야간 자율학습 때마다 달려가던 매점에서 음료의 선택은 항상 식혜였다.
그런데 아플 때 먹으니 그 맛이 이상하게 개운치 않았다. 왠지 모르게 들큼하고, 깡통 냄새가 밴 맛도 느껴지고. 게다가 매번 캔에 담긴 그대로 바로 마시다가 그날따라 컵에 따라먹었는데, 색깔이 우중충했다.
엄마가 해줬던 뽀얀 빛깔의 예쁜 식혜가 아니었다. 그 배신감이란...
식혜는 쌀과 엿기름, 그리고 단 맛을 내는 설탕이나 꿀, 그리고 생강 정도가 들어가는 비교적 간단한 음식이다. 반면 시간은 꽤 많이 투자해야 된다. 요즘은 엿기름 티백과 즉석밥까지 이용해서 그야말로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초간단 요리법까지 있지만, 예전에는 훨씬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엿기름 가루를 물에 풀어 맑은 윗물과 아래 가라앉은 찌꺼기가 분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쌀을 불리는 시간. 찐 밥을 펼쳐 식히고 찬물에 씻어 알알이 흩어지게 한 다음, 엿기름물을 섞어 보온밥솥에 넣어 밥알을 삭히는 시간까지. 게다가 내가 어릴 때에는 엄마가 보온밥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뜨끈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서 식혜를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아파트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엌은 두어 계단 내려가서 있는 구조였다. 하긴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언제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는지 시간 참 빠르다.
어쨌든 그렇게 식혜 한번 만들려고 해도 부엌에서 안방 아랫목으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연탄불 꺼지기 전에 갈랴, 자식들 목욕시키려면 부엌에서 뜨겁게 물을 끓여 그걸 또 욕실로 옮기랴 하루 종일 쉴 사이 없이 부엌을 오르내렸다.
그런 엄마에게 식혜가 먹고 싶다며 해달라던 나는, 엄마는 뭐든 해내는 만능 슈퍼우먼인 줄 알았나 보다.
특히 몸이 아플 때면 달달하고 시원한 식혜가 왜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식혜를 먹고 나면 열도 내리고 배도 아프지 않았다.
엿기름은 보리에 싹을 내어 말린 식품으로, 한의학에서는 맥아라고 부른다. 소화제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한약재 중 하나이다. 곡류, 특히 밀가루 음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에 효과적이며, 비위가 허약한 아이나 노인에게 좋다. 한의대에 들어와 수많은 약재를 외울 때, 소화를 잘 되게 하고 식욕을 돋우는 소식약(消食藥)의 대표주자였던 맥아가 엿기름이라니. 물도 먹히지 않고 꿀렁거릴 때 식혜를 먹으면 막힌 속이 뚫리고 소화가 잘 되는 시원함은 그저 나의 주관적인 느낌만은 아니었나 보다.
어릴 때 아픈 건 비교도 안되게 성인이 되고 난 후 아픈 날이 많아져간다. 성인이 된 후라기보다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서겠지만.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건, 그땐 아플 때 엄마를 찾았지만 이제는 어떻게든 나 혼자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흔이 넘은 이 나이가 돼도 가끔은 힘들고 지칠 때 엄마에게 파고들어 (차마 무릎 아픈 엄마의 다리를 베고 눕지는 못하지만) 따뜻한 그 손길을 느끼노라면, 세상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슬쩍 떠오르는 식혜. 달달하고 시원한 그 맛과 함께 어린 시절 연탄을 때고 살던 그 집, 그 부엌 앞에 서있는 착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