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 부족한 피를 보충해주는 아교
▲ 기려도 김명국, 17세기, 비단에 담채, 31.6x 45.7cm,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 공유마당(CC BY)
김명국이 그린 <기려도>이다. '기마'가 '말을 타다'라는 의미이듯, '기려'는 '나귀, 당나귀를 타다'는 뜻이다. 우산을 쓰고 나귀를 타고 가는 사람과 지쳐 보이는 나귀, 그 뒤를 따르는 동자의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이 생동감 있다.
사람을 태우고 먼 길을 지나온 당나귀는 힘이 다 빠진 채 겨우 걸음을 옮기고 있고, 짐을 들고 걷는 동자 역시 우산을 쓸 여력도 없이 버거운 모습이다. 이 와중에 홀로 여유 있는 표정의 선비는 세상과 동떨어진 도인 같은 모습이다.
기려도는 정선, 함윤덕, 이경윤 등 많은 화가들이 그린 화제로, 기마도와는 또 다른 운치가 느껴진다. 나귀는 말보다 체구가 작고 느린 편이라, 좀 더 안전한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말을 타는 것은 전쟁을 위해서 혹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반면, 나귀는 상대적으로 편안한 교통수단으로 즐길 수 있었다. '도련님은 당나귀가 제격이다'라는 속담만 보아도, 당나귀를 타는 이들의 느낌을 알 수 있다.
그림 속 나귀를 타는 사람들도 무인이라기보다 선비나 도인의 풍모로 그려졌다. 그래서 기려도에는 급할 것도 없이 터덜대며 가는 당나귀,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생각에 잠기거나 시를 짓는데 몰두한 듯한 선비의 모습이 주로 담겨있다.
위의 기려도는 김명국의 <산수인물화첩> 중의 한 폭이다. 선종화적인 풍취가 깃든 작품으로, 선종화는 불교 종파의 하나인 선종의 이념이나 그와 관계되는 소재를 다룬 그림이다. 김명국의 그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달마도>도 역시 선종화이다. 달마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선승으로, 불교 선종을 창시한 인물이다.
▲ 목동오수 김두량, 18세기, 종이에 담채, 31x51cm ⓒ 공유마당(CC BY)
화면의 오른쪽에 보이는, 목동이 낮잠 자는 모습을 그린 <목동오수>이다. 소를 나무에 묶어 매 놓은 목동은 마음 편하게 잠을 자고 있다. 줄이 매어진 나무는 밑동만 보이고 몸체는 생략되어 있지만, 목동의 머리 위로 내려온 나뭇가지와 잎으로 보아 버드나무인 듯하다. 상의를 풀어헤치고 팔 다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목동과 우뚝 서서 풀을 우물거리는 소의 모습이 대비되면서도 잘 어우러진다.
이 작품을 그린 김두량(1696~1763)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원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와 형, 아들, 조카도 화원으로 활동했다. 윤두서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다양한 소재를 그린 것도 스승의 영향이 컸다.
전통적인 북종화법을 기반으로 남종화풍과 서양 화법까지 수용했으며, 산수·인물·풍속·영모에 능했고 특히 신장도에 뛰어났다. 신장은 무속에서 용맹스러운 장군에 해당하는 장수신으로, 사방의 잡귀나 나쁜 귀신을 물리친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장으로는 십이지신(십이신장)이 있다.
김두량은 도화서 별제를 지냈는데, 별제는 종6품으로 실제 부서를 관장한 직위로 화원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이다.
아교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접착제이다. 풀이나 접착테이프, 순간접착제처럼 두 물건을 붙이는데 필요한 것 말이다.
그렇다면 아교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아교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짐승의 가죽이나 힘줄, 뼈 따위를 진하게 고아서 굳힌 끈끈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풀로, 지혈제로도 쓴다'고 아교의 쓰임새를 이야기하고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아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진짜 나귀가죽으로 만든 아교는 얻기가 힘들기 때문에, 차라리 노랗고 투명한 소가죽 아교를 쓰는 것이 좋다.'
한약재로 쓰는 아교는 당나귀 또는 소의 가죽을 가열한 다음 추출하여 지방을 제거하고 농축 건조하여 만든다.
아교는 혈(血)을 보하는 약에 속한다. 우리 몸에 필요한 피와 진액을 보충하며, 폐를 촉촉하게 한다. 지혈 효과도 있어, 자궁 출혈이나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기침할 때 피가 나오는 증상에 활용한다.
음혈(陰血)이 부족해서 속에 열이 생기면,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해서 잠을 편안히 자지 못한다. 이때 아교는 우리 몸에 모자란 물을 보태주어 불면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접착제로 사용되는 아교를 오래 전부터 약재로 이용해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한의사와 함께 떠나는 옛그림 여행'에 연재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