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존중을 잃은 말, 그 안에서 배운 것들

by 김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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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와 다름없는 근무일이었다

그날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근무였다.
당직 의사 한 명과 간호사 두 명, 그리고 이송보호사까지 — 총 네 명이 함께하는 날이었다.

그중 한 명, 나이든 남자 의사는 유독 나에게만 까다로웠다.
그는 여자 간호사에게는 비교적 부드럽게 대하면서, 나에게는 늘 사소한 부분까지 트집을 잡았다. 그것도 의학적 판단보다는, 그저 기분과 심술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봉합 준비를 하며 실 크기를 확인하려고 물으면
“내가 처방 낸 거 안 보여? 그거 봐. 간호사가 처방도 안 봐?”
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웃으며 알려주던 그가, 나에게만 그렇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내 신규 시절의 ‘태움’ 대부분은 그 사람에게서 채워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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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랑은 일 못 하겠어”

어느 날, 중환자 한 명이 들어왔다.
처치를 준비하며 환자 정보조사지를 작성해 보고하던 중이었다.

“60대 여성분이시고—”
“몇 살이라고?”
“60대 여성분인데, 아직 접수가 안 되어서요.”

그는 내 말을 끊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것도 똑바로 말 못 하면서 무슨 말을 한다고. 민혁 선생, 수간호사한테 말해서 당신이랑은 일 못 하겠다고 할까? 당신이 환자 설명하는 걸 믿을 수 있겠어?”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억울했다.
‘지는 환자 얼굴도 안 보고 종이만 쳐다보면서 내가 못 한다고?’
하지만 입을 열면 “말대꾸한다”고 할 게 뻔했기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환자에게 갔다.
물론, 환자에게도 친절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예쁘고 어린 여자였다면, 지금과는 180도 달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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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날,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 “민혁쌤, 간호사 자살률이 왜 높은데?
일 제대로 못 하고 욕먹고 그러다 그러는 거 아니야?”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는 내 머리 속에서 오래 메아리쳤다.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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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의사는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나중에 들어온 신규 남자 간호사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구나. 그 사람의 성품이 그랬던 거구나.’

하지만 그때 느꼈던 분노와 무력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는 내 실력으로 증명하자.
누가 나를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게.”

그날의 일은 나를 상처입혔지만, 동시에 단단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를 가르치게 되면,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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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그날 그는 농담처럼 던졌겠지만,
그 말은 내게 오래 남았다.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말의 무게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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