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습니다

어눌한 진심

by 김민혁

어느 때와 다름없는 근무일이었다

그날은 평범한 이브닝 근무였다.
나를 늘 스트레스 받게 하던 의사는 몇 달 전 다른 병원으로 떠났고, 나는 어느 정도 응급실 근무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처음엔 모든 게 버겁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일이 손에 익어가면서 이상하게도 은근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환자를 맞이하던 중, 구급차 한 대가 도착했다.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할머니 환자와, 그 곁을 지키는 할아버지 보호자였다.
환자분은 거동 중 넘어지셔서 왼쪽 대퇴부 통증을 호소하고 계셨고, 진단 결과는 골절이었다.



말이 아닌, 눈빛으로 전해지는 대화

할머니는 파킨슨으로 말이 잘 나오지 않으셨지만, 의식은 명료하셨다.
내가 “여기 아파요?” 하고 물으면, “으…이” 같은 짧은 소리로 대답하셨다.
말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그 눈빛과 미세한 표정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환자 파악을 마치고 다른 처치를 하러 잠시 멀어졌을 때,
할머니께서 무슨 말을 중얼거리셨다.
처음엔 내게 하신 말씀인 줄 알고 다가갔는데, 그 말은 남편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흐니마…”
무슨 뜻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옆의 할아버지께서는 그 말을 몇 번 들으시더니, 조용히 답하셨다.

“일 하지 말라고? 알았어… 이제 당신도 이렇게 됐으니, 그만둬야지.”


그 순간, 내 가슴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수없이 많은 CPR 환자, DOA 환자를 봐왔지만,
그날만큼 마음이 아픈 적은 없었다.
두 노부부의 대화엔 삶과 사랑, 그리고 함께 늙어간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인사

할머니는 입원이 결정되어 병동으로 올라가시게 됐다.
환자복을 갈아입히며 최대한 통증이 덜하도록 천천히 움직였지만,
작은 동작에도 할머니는 신음을 내셨다.
그게 마음에 남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치료 잘 받으세요.”
사무적인 인사였지만, 진심이었다.

그때, 할머니가 어눌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고마습니다…”


할아버지도 뒤따라 오시며 고개 숙여 말했다.

“감사했습니다.”


그 짧은 말 두 마디가 마음 깊숙이 박혔다.
나는 그저 간호사의 역할을 했을 뿐이지만,
그들이 건넨 감사의 말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마무리

그날 이후, 나는 다시 간호사의 사명감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드라마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순 없지만,
지금 눈앞의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

그들의 대화는 짧았지만,
그 안엔 오래된 사랑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