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머니라고?

by 느루


모처럼의 만남이었다. 사촌오빠 부부와 함께, 집들이를 겸해 동생 집에 모였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여동생의 딸이라 그런지 유독 예뻐 보였다. 문득, 나도 동생이랑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함께 키웠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가벼운 상념 사이로 차를 마시던 올케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씨, 둘째랑 요즘 연락해요?”

딸은 고3 때 자퇴하고 가출을 반복하다가, 올해 봄부터 겨우 한두 번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네, 언니. 지난주에도 보고 왔어요. 왜요?”

언니는 오빠 쪽을 힐끗 보더니, 다시 나를 향해 말했다. “그게, 혹시 애 있는 거 아니죠?”

“어휴, 언니. 무슨 그런 말씀을요. 요즘엔 집에도 와서 자고 가는데.”

“그렇지? 아니 우리 주영이가 인스타 보다가, 아기 안고 있는 사진 봤대요. 물어봤더니, 자기 딸이라 했다고…”

“저도 봤어요. 친구 애 안고 있던 거래요. 주영이한테는 그냥 장난이었을걸요.”

"그렇지? 그래 설마 애를 낳고 아가씨한테 말을 안 했을 리가 없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물어봐요 “


어떻게 집에 왔는지, 잠은 잤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딸에게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딸의 가족관계증명서부터 확인했다.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마음이었다. 아니다. 거짓말임을 확실히 하고 싶었던 거다. 올케언니에게 웃으면서 오해라는 말을 해주리라.

사이트에 들어가 개인정보를 입력하는데 자꾸 오타가 났다. 마우스를 누르는 손가락 끝까지 긴장이 퍼졌다. 겨우 열어본 증명서에서, 딸 이름 아래 같은 성을 가진 아이 둘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었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입만 벙긋댔다.


내가 그린 인생의 시나리오에는 이런 황당한 전개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마흔한 살이 되던 해, 손주가 둘인 할머니가 되었다.

딸이 혼자 짊어진 육아의 무게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딸의 모습에서 자꾸 과거의 내가 보였다.

손주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고, 딸은 직장 문제로 주말에만 다녀갔다.

직장 생활을 제외한 모든 외부 활동을 접었다. 혼자 발버둥 치며 육아의 굴레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자발적인 선택이었지만, 때로는 그것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내 삶은 한순간에 오래 전의 그날들로 되돌아갔다.

새벽 6시. 나를 흔들며 깨우는 손주들의 칭얼거림으로 비몽사몽 눈을 뜨면서 육아가 시작되었다.

손주들의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데려와 씻기고, 재우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퇴근 후 막내아들과 저녁을 먹고 운동을 가던 내가 이제는 '오늘 저녁은 뭘 해줘야 애들이 잘 먹을까?'를 고민하며 퇴근한다.

내가 꿈꾸던 자유로부터 까마득히 멀어진 채 육아 전담자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 내게 "손주들 너무 예쁘겠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그냥 웃는다.

그래, 예쁘다. 하지만 예쁜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이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컸다. 이러다가는 내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결혼과 이혼 그리고 예상치 못한 육아로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남은 삶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처음 다짐했던 삼 년이 다가올 즈음이 되니 딱 오십이 될 때까지만 이라며 기한이 늘어났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

오십이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손주들을 돌보느라 내가 볼품없는 여자가 되었다며 딸과 손주들을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피부과를 다녔다. 하지만 외모를 가꾸는 일로는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았다.

우연히 켈리 최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를 읽게 되었다.다시 희망을 붙잡고 싶었고, 변화가 절실했다.

자유를 완전히 되찾을 순 없더라도 최소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그래서 작은 틈을 만들어갔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차를 마시는 시간, 손주들이 낮잠을 잘 때 펼쳐 드는 책 한 권, 짧지만 깊이 빠져드는 글쓰기.

그렇게 잃어버렸던 삶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까짓 책!' 하며 투덜댔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댔다. 막연했던 삶의 윤곽이 조금씩 진해지고 있었다.


여전히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어진다.

멀리서 직장을 다니던 딸은 집으로 들어왔고 막내는 군대에 갔다.

딸은 마치 남편 같다. 쥐꼬리만큼의 월급을 가져다주고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육아는 뒷전이다. 딸과 손주들을 모두 내보낼지 고민한다.

하루 종일 손주들의 소리 지르며 싸우는 것을 중재하고 울음소리에 시달리다 보니, 문득 ‘내가 이 짐을 계속 짊어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피곤해서 저녁을 준비하는 딸에게 손주들을 맡겨두고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저녁을 먹자는 둘째 손자 하민이의 부름에 깨서 저녁을 먹고 책상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첫째 손녀딸 효은이가 조심스럽게 와서 나의 등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할머니 어디 아파요?"

아마도 내가 퇴근해서 쓰러져 잠든 모습에 걱정이 되었나 보다. 효은이의 걱정 어린 눈빛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 이게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이지. 아직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 옆에서 나를 찾아야 할 때지.'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당장 완벽한 자유를 되찾을 순 없겠지만, 내 삶을 더 단단하게, 더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나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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