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주병

by 느루

“늬 엄마랑 똑같이 너도 일찍 결혼해라. 그래야 늬 엄마가 내 맘을 알지.”

어렸을 적 외할머니가 내게 눈을 흘기며 지나가는 말처럼 하셨던 말씀이다.

나는 그때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정말로 나는 엄마처럼 스무 살에 결혼했고, 대물림처럼 내 딸도 스물하나에 아이를 낳았다.

여동생 말로는 내가 반대하는 결혼을 굳이 하겠다고 난리를 치던 그날 밤, 엄마는 어두컴컴한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소주를 병째 마셨다고 한다.

엄마가 술 마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생도 엄마의 낯선 모습에 놀라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눈물을 안주삼아 마셨을 엄마의 소주병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연년생 아들이 흔히 말하는 중2병에 걸려 요란한 사춘기를 보냈을 때, 딸은 제 오빠를 비웃었다.

그런 딸이 일 년쯤 지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거실에 가방을 던져놓고 주저앉아 한 마디 했다.

"나는 투명인간이야?"

오빠와 남동생 틈에 끼어 늘 씩씩했던 딸의 서러움을 그저 푸념으로 웃어넘겼다.

고3이 되어 한 학기를 남겨놓고 딸은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이혼을 결심했을 때도, 이혼 후에도 늘 내 편이 되어주었던 딸이었다.

그런 딸이 아빠 없는 서러움이 너무 크고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원망을 토로했다.

한 학기만 채우면 졸업이니 참아보라 달랬지만 딸은 자퇴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배신감이 들었다.

엄마가 마시던 소주병 속에 배신감이 들어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딸과 드문드문 연락은 하게 되었지만 나에 대한 미움은 여전했는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이라도 되는 것이 어디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배신감 아래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죄책감에 딸의 원망을 마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혼과 딸의 가출에 힘겨워하는 시간이 흘러, 그마저도 나름대로 익숙해져 갔다.

성인이 된 딸과 화해만을 남겨두고 나만의 자유를 찾아갈 때, 벼락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딸이 나 몰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을 줄이야.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벌로 나 역시 또 같은 벌을 받게 된 걸까.’

힘들다고, 외롭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걸 제대로 보듬어 주지 못한 죄책감이 나를 휘감았다.

큰 손녀 효은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째 하민이를 낳기 전날 밤까지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딸이 불쌍하고 애처로웠다.

‘그 큰 일들을 겪으면서도 내게 말하기 싫을 만큼 미웠을까?’

엄마의 소주병에는 죄책감도 들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말이면 갓 태어난 하민이와 효은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 돌봐주기를 두어 달 반복하니 너무 힘들었다.

겨우 딸을 설득해서 손주들과 함께 집으로 데리고 왔다.

맥주를 나눠 마시며 딸이 말했다.

"가출해서 엄마 속 썩인 것도 미안한데, 내가 또 엄마가 일찍 결혼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잖아. 근데 한 명도 아니고 둘을 낳고도 헤어져서 혼자 키우는 걸 알면 엄마가 너무 힘들어할게 뻔하고. 그래서 미안해서 말을 못 했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던 내가, 더 미안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워할 수가 없었다.

딸의 아이들을 내가 입양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주고 싶었다.

꽃다운 나이에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마침 천안에서 딸이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딸만큼은 자유롭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독박육아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의도적으로 세상과 단절되기 시작했다.

내게 이혼녀라는 호칭이 붙었을 때도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딸이 한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은 내 선택이 딸의 인생을 망치게 한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내가 아닌 딸에게 손가락질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더더욱 꼭꼭 숨어버렸다.

직장과 어린이집, 그리고 병원만을 오가며 지냈다.


부모님께도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1년여 만에 효은이와 하민이를 데리고 가서 자초지종을 대충 말씀드렸을 때 심지어 엄마도 별말이 없으셨다.

손녀딸 일이라 조금은 무뎌진 건가 싶었다.

점심을 먹다가 무심코 딸이 잡채를 좋아하는 게 생각이 나서 싸달라고 했더니 별안간 엄마가 눈을 흘기며 말하셨다.

“그 년은 주지 마! ”

부러진 반쪽짜리 날개로 다시 날갯짓하려는 새의, 남은 날개를 마저 부러뜨린 년이라며 대신 미워해준다.

엄마의 소주병에는 사랑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딸은 매주 오가다가 바빠지면서 한 달에 두세 번으로, 두세 달에 한두 번으로 다녀가는 횟수가 줄었다.

삼 년쯤 지난 어느 날 딸이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헤어졌던 아이들의 아빠로부터 연락이 왔고, 화해를 할 생각으로 한 두 번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고 그 이후에 임신 한 걸 알았다고 했다.

모질게 맘을 먹긴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뒤늦게서야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맥이 풀렸다. 미워할 힘조차 나지 않았다.

한없이 딸을 미워하다가도 둘째 때와 달리, 티가 확나는 불룩한 배로 빨래를 개키고 손주들을 챙기는 걸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딸의 팔자는 엄마를 담는다고 했던가. 마치 미련 맞은 나를 보는 듯해서 딸을 볼 때마다 속이 탄다.


엄마는 소주를 마시면서 어떤 맛을 느꼈을까.

쓰디쓴 알콜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걸 어떻게 견뎌냈을까.

“늬 엄마랑 똑같이 너도 일찍 결혼해라. 그래야 늬 엄마가 내 맘을 알지.”

외할머니의 중얼거림은 진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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