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래의 끝에서 나를 만나다

by 느루


예쁘고 따뜻한 블랭킷을 떠보겠다고, 이름도 거창한 ‘보타닉 손염색 뜨개실’을 샀다. 보통 뜨개실은 정갈하게 기계로 감겨 있는데 일부러 감겨 있지 않은 실타래를 샀다. 연한 핑크색에서부터 아주 조금 더 진한 핑크색까지 그라데이션 되어 있었는데, 손끝에 닿는 실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정갈하게 감긴 실보다 엉성한 실타래가 주는 날것의 느낌이 더 몽글몽글한 설렘을 자아냈다.

기계만큼 정갈하진 못하지만 실의 결을 느끼며 동그랗게 감아내는 것도 재미있었다. 첫 코를 잡아 몇 줄을 뜨고 한 코 한 코가 쌓여 가지런히 만들어지는 편물을 바라보니 흐뭇하고 차분해졌다.


실이 엉키지 않도록 신중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바늘을 움직이며 열심히 뜨개질은 했음에도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됐다. 사실 무늬를 뜨다가 실수로 코를 빠뜨려서 풀어내고 다시 뜨길 여러 번 했다. 풀어서 다시 뜰 때마다 생기는 보풀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에 몇 줄씩 뜨다가 결국 한쪽에 밀쳐두었다.

욕심이 앞서 너무 큰 것으로 시작했나 보다. 뭐든 늘 마음은 이렇다. 잘 해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며칠 후, 이왕 시작했으니 끝은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뜨개 바구니를 찾았다. 그런데 구석에 있어야 할 바구니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여기저기 헤매다 결국 바닥에 엎어진 바구니를 발견했다. 젠장. 공들여 떠 놓았던 블랭킷은 엉망진창으로 풀려 있었다.

실타래의 실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었다. 뜨개질할 때마다 옆에서 눈을 반짝이던 막내 손녀딸인 소은이가 나 모르게 실을 가지고 놀았던 모양이다.

작은 손으로 실을 이리저리 굴리고, 바닥을 기어 다니며 잡아당겼는지 실은 완전히 엉켜버려 있었다. 실타래를 들어 올리는 순간, 부드럽고 보송보송함이 주는 가벼운 무게와는 달리 마음은 턱 내려앉았다.


손으로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실뭉치 사이로 단단하게 꼬여버린 매듭들이 보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풀어 볼까? 그냥 버릴까?”

사실, 이런 고민을 할 가치도 없을 만큼 엉켜버린 상태였다. 그저 비싼 실이고, 처음 실을 보았을 때의 몽글몽글한 설렘이 아쉬워서 뱉어 낸 말일뿐이다. 그 아쉬움에 미련을 품고 풀어보기로 했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일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엉킨 부분을 손끝으로 더듬어보았지만 그럴수록 매듭은 더 단단히 조여질 뿐이었다.

“천천히, 느슨하게 풀어야 해.”

조급함을 내려놓고 천천히 결을 따라가다 보니 작은 틈이 보였다. 하지만, 결국 중간에서 완전히 막혀버렸다.

‘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

결국 욱하는 마음에 실뭉치를 던져버렸지만, 그러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이럴 때는, 과감히 잘라야 했다. 끊어내야 했다. 바짝 긴장한 손끝으로 실을 자르자 '툭'하고 실이 잘려 나가는 순간 허무한 감정이 밀려왔다. 잘린 엉킨 실뭉치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렇게 애썼는데, 결국 이렇게 끝났다. 이상하게도 개운했다.


내 삶도 그러했다. 가끔 머릿속이 엉킨 실처럼 복잡하게 얽혀버린다. 아무리 풀어보려고 애써도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오히려 그 틈을 비집고 불행이 덮쳐 온다.

뭐라도 해내겠다고 다짐하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린다. 정신없이 허우적대다 보면 어느새 온몸이 무거워진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풀어낼 수 없을 만큼 단단히 엉킨 실뭉치처럼, 몸과 마음도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대로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없이 쓰레기통을 바라본다. 버려진 실뭉치처럼 흐릿하고 어정쩡한 나 자신도 그 안에 던져 넣고 싶어진다. 실을 쥐고 미련을 놓지 못했던 내 마음마저 담아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젠 다 커버린 세 아이를 혼자 돌보며 정신없이 뛰어다닐 때도 그랬다. 밀려드는 집안일과 육아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밤이 되어 겨우 한숨 돌리는 순간이면, 밀린 걱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짓눌렀다.

늘어나는 빚에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도, 남편과의 관계가 서서히 어긋나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다른 여자의 흔적이 점점 짙어져 갔을 때, 또다시 엉킨 실타래를 손에 쥐고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단순한 매듭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외면하는 사이, 그 매듭은 점점 더 단단하게 뭉쳐 갔고 결국에는 풀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부모님이 반대했던 결혼이었기에 더 지켜내려 했던 결혼생활이었다. 하지만 그 결혼생활이 옭아맸고 불행하게 했다. 그 안에서 점점 작아지고, 사라져 갔다. 늘 불행했기에 불행한 줄도 몰랐다.


비싼 실타래 값이 아깝고 잠시의 몽글몽글했던 그 설렘이 아쉬워서 불행에 순응하며 살았다. 다만, 그 불행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웃는 얼굴을 하고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엉킨 실타래 같은 마음이 있었다.


불행이 쌓이고 쌓여 곰삭아 가던 매일 밤, 자다가도 울음소리에 스스로 놀라 깨던 순간마다 되뇌었다.

“참자. 참다가 정 안 되면 이혼하면 돼. 그럼 행복해질 테니까. 괜찮아.”

스스로를 위로해 주는 희망 고문이었다. 결국 불행이 엉겨 붙은 실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불행도 함께 버렸다. 그렇게 이혼했다. 개운했다.


앞으로도 삶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할 것이다. 때로는 또다시 불행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풀어낼 수도 있고, 필요하면 잘라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풀어낼 때와 가위를 들 때를 아는 것은 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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