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밀주

by 누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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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을 외할머니 곁에서 보냈다.

비록 한 집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늘 걸어서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계셨다.

평택과 인천, 광주로 흩어져 지내던 이모들과는 달리, 외할머니는 언제나 우리 가족과 함께 머물렀다.

나는 종종 할머니집에서 할머니의 젖을 만지며 잠들곤 했다.


그 시절 집에서 담근 술을 ‘밀주’라 불렸다.

법의 눈길을 피해 이루어져야 했지만, 할머니에게 술 빚기는 그저 삶의 연장이었다.

몇 번이고 쌀을 씻고 고두밥을 짓던 손길은,

금지와 단속 같은 말이 미처 닿지 못하는 생활의 리듬에 가까웠다.

할머니에게 술은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자 위로였고,

아버지에게는 장모가 보내는 무언의 사랑이었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공무원이 들러

“어머니, 이번 술은 향이 참 좋네요.”하고 웃던 장면은

지금도 희미한 영화처럼 남아 있다.

그 웃음 속에는 법보다 정이 조금 더 가까웠던 시절의 느슨한 온기가 있었다.


술을 빚는 날이면 할머니는 밤새 쌀을 씻고 또 씻으셨다.

그러면 나는 떡보다 더 맛있었던 ‘고두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밤새 침을 삼키곤 했다.

늦잠에서 깨어나면 달큼한 고두밥이 익고 있었고,

할머니는 고두밥을 주먹으로 꼭꼭 뭉쳐서는 콩고물에 묻혀

내 입에 넣어 주시곤 했다.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오물거리며 맛보던 그 따뜻한 고두밥 맛은

지금도 내 향수의 깊은 자리에서

꺼내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누룩을 딛던 기억도 있다.

대접에 면포를 깔고 밀기울을 채운 뒤

발로 꼭꼭 딛던 할머니의 모습.

그 누룩은 마치 한 해를 품은 된장처럼,

다음 해의 술독을 준비하는 역할을 했다.

삼복의 항아리는 그렇게 풍성하게 채워지며,

또 다른 계절을 기다렸다.


술을 담그시던 날이면 할머니는

새벽 공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목욕을 하고

물을 끓여 항아리를 닦으셨다.

돌이켜보면, 그건 단순한 정결함이 아니라

할머니가 술을 대하는 존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고두밥과 누룩을 정성스레 버무렸다.

그렇게 항아리에는 밑술이 앉혀졌다.


술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시간을 들여 모셔지는 것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빚던 것은 술이 아니라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다림을 견디는 법,

서두르지 않는 마음,

손으로 삶을 확인하는 방식.

그 모든 향기와 맛, 감촉과 체온 속에서 나는 비로소 배웠다.

삶에는 취하기 전에 먼저 숙성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기록되지 않은 ‘향’이라는 것이 있다.

‘술을 빚는다’는 것은 술을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기다리는 법과 손대지 않는 법, 지나간 시간을 존중하는 일이었다.

가양주는 대개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사람의 손과 기억을 통해서만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

내가 빚은 술은 할머니의 술과 다르다.

그러나 그 술을 마실 때마다

할머니가 술을 빚던 그 마음과

조금은 닿아 있음을 느낀다.


일상의 술 한 잔에는 시간의 향이 배어 있다.

그 속에는 기다림과 손의 온도,

가만히 지켜보는 마음이 함께 스며 있다.

그 향을 음미하는 순간,

술은 더 이상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성으로 쌓아 올린 숨결을 마시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는 언제나

할머니의 따스한 살 냄새가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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