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주(惜呑酒)를 거르는 날이었다.
맑게 가르기보다, 술이 가진 결을 그대로 마주하고 싶었다.
항아리 뚜껑을 열자, 그 속에 갇혀 있던 향이
술을 거르기도 전에 이미 방 안의 공기를 채웠다.
복숭아나 살구 사이 어딘가,
그 위로 꿀을 한 숟갈 풀어 놓은 듯한 단내가 겹겹이 올라왔다.
베보자기에 술덧을 얹고,
탁한 숨을 일부러 남긴 채
천천히 스며나오는 술이 대야를 채우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코끝을 장악한 향기 때문에,
아직 다 채워지지 않은 대야 속의 술이 더디게만 느껴졌다.
참지 못하고 한 모금을 입에 댔다.
원주(原酒)다.
가수하지 않은 술,
아직 아무것도 덜어내지 않은 자연이 빚어낸 농도 그대로의 술.
생각보다 거침이 없었고, 놀라울 만큼 부드러웠다.
혀 끝에 감기는 달콤함이 앞장을 서고, 알코올은 그 뒤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술이 이렇게 향기로울 수 있다는 감탄이 먼저 터졌다.
내친김에 이웃들을 불렀다.
“모처럼 술이 잘 익었습니다.”
그 한 모금이 문제였다.
술은 쉬 줄었다.
결국 우리는 한 독의 술을 모두 비워버리고 말았다.
아니. 비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마주한 풍경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아까운 참상이었다.
거실 끝에는 누군가 벗어놓은 양말 한 짝이 외로이 주인을 기다리고,
욕실 문턱에 상체를 걸친 친구는
마치 국경을 넘다 술 향기에 저격당한 망명객 같았다.
술기운에 취해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한 채 흩어진 자리들을 보며,
원주의 독한 농담에 우리가 제대로 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달콤하다고, 향이 곱다고 들이켰더니
모두가 정신줄을 놓아버린 것이다.
‘소곡주’가 앉은뱅이 술이라더니,
석탄주의 원주도 못지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지독했다.
고운 향과 달콤함에 감춰진 도수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강했다.
그 술은 사람의 욕심만큼의 물도 허용하지 않은 채,
오로지 시간이 벼려낸 도수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부드러움은 속임수가 아니었고,
달콤함은 경고를 감춘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마셔본 그 어떤 술보다 진하고 향기로웠지만,
동시에 가장 조심해야 할 독이었다.
술은 사람의 태도를 시험한다.
얼마나 마실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멈출 줄 아는지를 묻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원주 앞에서 쉽게 잔을 들지 않는다.
술이 가진 친절함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게 되었다.
향기로운 술일수록, 더 오래 바라보고, 더 천천히 대해야 한다는 것을
석탄주의 원주는 몸으로 가르쳐 주었다.
술은 달콤할수록 깊고,
조용할수록 무섭다.
그날의 흩어진 잠자리들처럼,
원주는 늘 사람을 제자리에서 벗어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