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화로

by 누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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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겨울이면, 외할머니 집 윗목에는 늘 놋쇠 화로가 있었다.

세수대야에 다리가 붙은 모습이었다.

할머니 집에서 화로는 계절의 절기를 가장 먼저 읽어내는 영험한 기물이었다.

세 계절 동안 광 구석에서 몸을 낮추고 있다가, 겨울의 기척이 분명해질 즈음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오면 그해의 겨울은 비로소 시작되었다.


한때는 분명 반짝였을 놋쇠 표면은, 광 속의 공기와 습기를 오래 머금은 탓에 특유의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낡았으되 거칠지는 않았다.

오히려 할머니의 마른 행주질이 수천 번은 지나갔을 그 표면에는 오랜 세월이 빚어낸 은은한 윤기가 감돌았다.

감나무 끝에 매달렸던 까치밥도 떨어질 때면, 할머니는 광에 있던 화로를 꺼냈다.

지푸라기를 뭉쳐 쥐고 재를 묻혀 화로를 문지르는 할머니의 손길은 한 계절을 맞이하는 의식처럼 정갈했다.

짚이 놋쇠를 스치는 소리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었고,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화로 위에서는 시간조차 느릿하게 익어갔다.

밤과 고구마가 구수하게 익는 냄새가 번져가는 사이, 겨울 오후의 그림자는 어느새 문턱을 넘어 길게 뻗어 나갔다.


화롯불은 늘 그 자리에 있었으나 함부로 곁을 내주지는 않았다.

“바짝 앉으면 탈 난다. 불도 성깔이 있느니라.”

적당한 거리를 찾는 일, 그것은 내가 화로 앞에서 가장 먼저 배운 삶의 가르침이었다.

가끔 할머니의 화로에서는 찌개가 끓었다.

작은 냄비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나면 방 안의 공기는 또 다른 온도로 변했다.

국물이 끓는 소리는 불이 살아있다는 증거처럼 명징하게 들렸다.

그 소리가 좋아서 배가 고파졌는지, 배가 고파서 소리가 좋았는지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화로는 구워내는 불이기도 했고, 끓여내는 불이기도 했다.


가장 선명한 기억의 갈피에는 가래떡이 있다.

떡은 밤이나 고구마보다 훨씬 예민한 온기를 요구했다.

할머니는 부삽으로 화로 속 재를 가만히 다독였다.

흩어진 재를 모아 결을 정리하는 손길을 보고 있으면, 잿더미 속에도 엄연한 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믄 재 날린다.”

“숨구녁은 남겨 놔라.”

재가 걷히고 새빨간 숯이 드러나면 괜한 장난기가 동했다.

개구졌던 나는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 숯불 위에 던지기도 했다.

잠깐 지글거리며 타오르더니 방 안에 고기 타는 냄새가 퍼졌다.

“할머니, 고기 냄새 나.”

할머니는 흘끗 나를 보며

“시장허냐?” 하고 물으셨다.

그 말은 꾸중도 무언가를 해 주겠다는 섣부른 다짐도 아니었으나,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화로 위에는 기어이 무언가가 올려졌다.


할머니 집 정지 찬장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문을 열면 떡이 나왔고, 작은 단지에서는 조청이, 신문지에 싸 둔 고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 시절 고기는 으레 신문지에 싸여 왔고, 나는 그 종이에 찍힌 한자를 한 자씩 익히기도 했다.

찬장은 계획된 식단보다 불의 상태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스스로 문을 열었다.

화로 위에 고기가 오르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갈치 한 토막이 올라왔다.

나는 그 찬장이 늘 가득 차 있다고 믿었다.

사실은 할머니가 당신의 시간을 아껴 그곳에 정성껏 쌓아두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화로 위에 오른 고기나 갈치는 기름 없이도 충분했다.

고기는 제 몸의 기름으로 익어갔고, 갈치는 껍질부터 서서히 말라 단단해졌다.

기름이 숯불로 떨어질 때마다 짧은 불꽃이 튀었고, 방 안의 공기는 한 겹 더 두터워졌다.

가끔 추운데도 할머니는 방문을 열어 찬바람이 방 안을 한 바퀴 돌게 했다.

아랫목 이불 속으로 깊이 몸을 숨기면, 할머니는 화로를 다시 살피며 불의 상태를 확인했다.

따뜻함을 오래 누리기 위해 숨 막히지 않게 환기하는 일, 그것 또한 불을 대하는 할머니만의 방식이었다.


겨울 해가 기울면 할머니는 가끔 아버지와 대작을 했다.

윗목에 있던 화로가 방 한가운데로 자리를 옮기고, 그 위에는 따끈한 안주가 올라갔다.

술잔이 오가면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장모와 사위는 딸이자 아내인 어머니를 두고 별것 아닌 흉을 안주 삼아 웃음을 나눴다.

그 흉은 날이 서 있지 않았고 화로의 온도만큼이나 포근했다.

그날의 웃음소리는 어떤 시샘이나 미움으로도 얼룩지지 않았다.


그 시절의 화로는 단순한 난방 기구가 아니었다.

화로 앞에 앉으면 말수는 늘었으나 목소리는 낮아졌고, 몸짓은 자연스레 겸손해졌다.

그곳에서는 무엇도 재촉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은 제 순서대로 흘러갔다.


이제 할머니도, 놋쇠 화로도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오늘날의 겨울은 스위치 하나로 시작되고, 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숫자로 제어된다.

하지만 가끔 마음이 허기질 때면 재를 헤치면 드러나던 그 뜨거운 숯불이 떠오른다.

그 불빛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서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나는 화로 앞에서 배웠다.

기다림은 불편한 인내가 아니며, 상처 입지 않고 온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서로를 배려하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멀믄 춥고, 너무 가차우믄 덴다.”

할머니의 화로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조용히 재를 고르며, 시린 마음의 겨울을 지켜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