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 그래서 시선이 가장 늦게 닿는 곳. 발은 늘 내 삶의 변방이다.
좁은 구두에 갇혀 땀에 절고, 때로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온몸의 무게를 견뎌내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발의 수고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다. 그저 외출할 때 양말 속에 구겨 넣어야 하는 무심한 그림자 정도로만 여겼다.
몇 년 전, 허리디스크가 터져 다리에 마비가 왔을 때서야 나는 발의 존재를 뼈아프게 깨달았다. 내 발로 땅을 딛고 선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견디며 눈물겹게 실감했다. 하지만 몸이 좀 나아지자 나는 금세 그 기억을 잊었다. 통증의 기억은 금방 휘발되었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회귀하였다. 결국 여행을 코앞에 두고 디스크가 다시 도졌을 때, 나는 이것이 내 자만이 불러온 결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발장 구석의 낡은 운동화처럼 내 몸을 소모품으로만 썼던 대가는 혹독했다. 가족과 함께 온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지만, 도착한 치앙마이에서 나는 당당한 가장이 아니라 '가족의 짐'이었다. 앞서 달려 나가는 두 딸아이의 생기 넘치는 속도를 맞출 재간이 내게는 없었다. 결국 아내와 나는 골목 어귀의 작은 마사지 샵으로 들어섰다.
낯선 이의 따뜻한 손길이 내 발에 닿았다. 마사지사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내 발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들어 올렸다. 마치 귀한 물건을 다루는 듯한 그 정중한 태도 앞에서 나는 문득 마음이 숙연해졌다. 굳은살이 박인 발바닥과 하얗게 일어난 뒤꿈치, 평소엔 눈길조차 주지 않던 발가락 사이사이를 그의 손길이 세밀하게 파고들었다.
내 무게를 버티느라 두꺼워진 종아리와 뻣뻣해진 발목을 어루만지는 그 시간, 나는 타인의 손을 빌려 내 몸에 뒤늦은 사과를 건넸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나를 지탱해 온 부위가 실은 나의 무관심 때문에 가장 먼저 상처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마사지사의 묵묵한 손놀림은 뭉친 근육뿐 아니라 내 오만함까지 녹여내는 것 같았다. 가장 낮은 곳이 나를 지탱하는 가장 귀한 뿌리였다는 사실이, 태국의 작은 샵 내 발끝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샵을 나서자 발바닥에 닿는 땅의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주변은 여전히 소란스러웠지만, 더는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마사지사의 온기가 남은 발은 내게 속도보다 균형을 먼저 생각하게 했다. 예전 같으면 억지로 허리를 세우고 걸음을 재촉했겠지만, 그날은 발이 허락하는 만큼만 내디뎠다.
지면과 발바닥이 나누는 접촉이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 나는 그저 가장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