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디스크가 재발했을 때, 세상은 내 몸에서 울리는 날카로운 비명으로 가득 찼다. 돌아눕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고통, 그 모든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나를 실어 나르는 119 대원들의 눈빛에는 잠깐의 안타까움이 스쳤지만, 바쁜 그들에게 나는 그저 신속히 처리해야 할 ‘어렵지 않은 민원’ 일뿐이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고가 아니라면, 예약 환자의 순번은 언제나 나의 고통보다 앞서 있었다. 휠체어에 구겨지듯 앉아 진료를 기다리던 시간은, 내 의지로는 도무지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 나를 구겨 넣고 있었다.
앉고, 눕고, 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한순간에 제한되었다. 그것이 지금의 순리였고, 그 순리를 거스르는 모든 행동에는 어김없이 ‘고통’이라는 징벌이 뒤따랐다.
병원에서 ‘검사’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모든 과정은, 바로 이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MRI 검사 후, 수술 대신 시술로 통증을 잡기로 했다. 그러나 치료보다 먼저 앞서 오는 것은 냉정한 자본의 논리였다. 휠체어에 실린 채 상담실로 끌려가 급여와 비급여의 차이, 시술의 종류와 절차, 그리고 비용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수술대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고통은 철저히 주관적이었으나, 그 고통을 제거할 자격은 지극히 객관적인 지표—비용과 동의서—위에 세워지고 있었다.
아내의 도움으로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속옷과 함께 벗겨진 자존감은 진통제에 흐려진 의식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병실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저마다의 통증을 훈장처럼 달고 모인 인간 군상들이 그곳에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나와 같은 날 들어온 젊은 친구와, 그의 곁을 지키는 젊은 아내가 있었다. 남편을 향한 다정한 마음은 말없이도 눈빛과 행동 속에 스며 있었다. 그녀의 단정하고 지극한 친절 덕분에, 나는 식사 후 식판을 치우는 고통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온기는 병실의 차가운 공기를 한동안 데워 주었다.
그가 사흘 만에 퇴원하고 들어온 대각선 침대의 청년은, 앞선 이와 정반대였다. 그는 퇴원할 때까지 커튼을 한 번도 걷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시끄러운 업무 통화로 병실의 정적을 거침없이 깨뜨렸다.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한마디도 섞지 않은 채 철저히 타인으로 남았다.
옆자리로 새로 들어온 이는 나보다 두어 살 많은 남자였다. 수술을 앞둔 중환임에도 그는 휠체어를 끌고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수술 후, 그의 아내는 마취가 늦게 깨어나는 남편을 깨우느라 호들갑을 떨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나는 그녀에게 한라봉 하나를 건넸다.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으면 입에 넣어줘 봐요. 금방 기운 차릴 겁니다.”
그녀는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지만, 정작 남편이 마취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혼자 한라봉을 다 먹어 치웠다. 남편의 고통보다 자신의 입이 우선인,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서글픈 풍경이었다.
어느 날 밤, 시술을 받았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통증 때문에 다시 수술실에 엎드렸다. 독운(毒運)에 취해 간신히 든 잠을 깨운 건 ‘담배 남자’의 지인들이었다. 밤 9시가 훌쩍 넘었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병동의 정적을 아랑곳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병실을 휘저었다.
40여 분을 간신히 버티다, 결국 호출 벨을 눌렀다. 간호사가 개입하고 나서야, 예의 없는 손님들은 자리를 떴다. 정작 소란의 주인공인 그는, 지인들이 떠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요란하게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그가 내게 귤 세 개를 내밀었다. — 어제 그 지인들이 사 온 것이었다.
내가 간호사를 부른 것을, 그도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 귤은 어제저녁 소란에 대한 뒤늦은 사과였을까, 아니면 자신도 난처했던 불청객들을 쫓아준 것에 대한 은밀한 감사였을까.
병원의 하루는 관성을 따라 흐른다.
세 번의 식사와 투약, 그리고 세 번의 혈압 체크.
그 대충 정해진 리듬 사이로, 한 시간에 이십만 원이나 하는 ‘럭셔리한’ 재활 치료가 끼어 있다.
실손보험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없었다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치였다.
내 재활은 건장한 체격의 여성 치료사가 담당했다.
그녀는 엄지로 내 서혜부를 압박하며 다리를 들어 올린다. 속옷이 허용되지 않는 이 병원의 환자복 안에서, 내 몸은 속절없이 무방비하다. 옷감 위로 미묘하게 드러나는 존재감과 그에 비례해 커지는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녀도 나도 그 민망한 굴곡을 애써 외면한다.
그것은 질병이라는 공통의 적 앞에서 치료자와 환자가 맺는 묵묵한 합의이자, 인간으로서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품위다.
물리치료실로 향하면, 나는 더욱 작아진다.
허리에서 엉덩이, 허벅지의 맨살에 치료기를 대는 이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이다.
기계의 전기 자극이 시작되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
이 순간, 그녀들은 ‘갈바니’가 되고, 나는 그녀들의 실험대 위에 놓인 ‘개구리’가 된다.
전기 자극이 훑고 지나간 자리, 나중에야 추슬러 올린 환자복의 서늘한 높이만큼 나의 치욕스러운 경계 또한 무방비하게 드러났으리라는 사실을 예감할 뿐이다.
그녀들은 친절했다. 그러나 그 친절은 다정한 말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수치를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유지하는 무심한 평온함 속에 있었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 위로 씌워진 마스크는, 그 순간 실험대 위에 놓인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 숨을 수 있는 유일한 ‘등잔 밑’이었다.
병원은 인간이 말초, 즉 ‘몸’이라는 원초적 물질로 환원되는 장소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회적 지위도 체면도 내려놓은 채, 오직 통증과 진통제, 그리고 타인의 배려에 기대어 하루를 버틴다. 퇴원을 앞둔 지금, 내 몸의 경련을 지켜보던 젊은 치료사들의 무심한 눈빛과, 한라봉을 혼자 먹어 치우던 여자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통증을 건너며 살아가는, 외롭고도 가련한 인간 군상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