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을 처음 손에 쥐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당황스러움이 먼저 기억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해, 아버지는 입학 선물이라며 만년필 한 자루를 내게 건네주었다. 케이스를 열자 드러난 펜은 어른들의 책상 위에나 어울릴 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시엔 파카나 파이롯트 만년필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건네준 펜 역시 그 시대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는, 묵직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매번 잉크를 채워야 했고, 한 번 잘못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어딘가 어긋나기 십상이었다. 그 펜은 글을 쓰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아직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하는 장신구처럼 느껴졌다.
그 펜은 내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나에게 건너오지 않은 아버지의 물건처럼 느껴졌다. 손에 익지도 않았고,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될 것 같은 부담이 먼저 앞섰다. 필통 속에서 다른 물건들을 긁어 상처라도 낼까 봐, 나는 그 펜을 자주 꺼내지 않았다. 아버지가 왜 하필 만년필이었을까를 묻기에는,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또 너무 바빴다. 입시와 성적, 교실의 소음 속에서 그 펜은 점점 책상 서랍 깊숙한 곳으로 밀려났다. 정확한 모델명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의 그 만년필은 이제 어디로 갔을까. 서랍장 맨 아래인지, 이사 중에 잃어버린 것인지조차 알 길이 없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대학에 들어갈 딸아이에게 만년필을 선물할 요량으로 슬쩍 말을 꺼내 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단칼에 흥미 없음을 드러냈다. 요즘 세상에 만년필이 웬 말이냐는 듯한 그 건조한 표정 속에서, 나는 오래전 서랍 속으로 펜을 밀어 넣던 나의 어린 얼굴을 발견한다. 아버지의 마음이 닿지 않았던 그때의 나와, 딸에게 닿지 못한 지금의 내가 묘하게 겹쳐 보였다.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나는 오랫동안 만년필이라 하면 중후하고 묵직한 무게부터 떠올렸다. 손목을 눌러 필기의 기강을 세워주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도구 말이다. 그래서 오늘 다시 손가락 사이에 얹힌 펜의 가벼움은 더욱 낯설게 다가왔다. 잉크를 가득 머금었음에도 손등에 전해지는 무게는 고작 수십 그램. 잘 마른 나뭇가지를 쥔 듯한 감각에, 나는 한동안 펜을 든 채 허공을 천천히 휘저어 보았다.
어느새 나는 만년필을 좋아하게 되었고, 제법 익숙하게 쓰고 있다. 누군가는 매번 잉크를 채우고 세척하는 과정이 번거롭지 않냐고 묻지만, 내게 그 시간은 일종의 기도에 가깝다. 펜을 정성껏 닦고 맑은 물로 씻어 새 잉크를 채워 넣는 동안, 소란하던 마음도 함께 가라앉는다. 손끝에 묻은 잉크 한 방울을 닦아낼 즈음이면, 나는 비로소 문장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나는 여전히 글씨를 잘 쓰지 못한다. 악필까지는 아니어도, 스스로의 필체에 만족해 본 적은 없다. 종이 위에 어설프게 늘어선 글자들을 바라볼 때면 늘 마음 한구석이 멋쩍었다. 하지만 만년필은 그런 나에게 뜻밖의 위로를 건넸다. 이 도구는 볼펜이나 수성펜이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닙의 흐름과 잉크의 농담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색조는, 못생긴 글씨마저 하나의 표정으로 바꾸어 놓는다.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멋대로 잉크를 흩뿌리는 반항아 같은 얼굴. 만년필은 내게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가장 날티나는 필기구다.
그동안 나는 ‘무거운 것이 귀하다’는 생각 속에 살아왔다. 책임감은 어깨가 휘어질 만큼 무거워야 하고, 문장은 바위를 깎듯 비장해야 하며, 삶 또한 그래야 제대로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 아버지가 주신 만년필을 서랍 속에 밀어 넣었던 그 시절부터, 나는 어쩌면 세상을 악착같이 움켜쥐어야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꾹꾹 눌러 적지 않으면 생각이 금세 흩어질 것 같은 불안이 내 필압을 언제나 높여 놓았다.
하지만 이 가벼운 만년필은 전혀 다른 문법을 요구했다. 펜 자체가 가벼우니 손가락에 힘을 더할 이유가 사라졌다. 닙 끝을 지면 위에 살짝 올려두기만 해도, 잉크는 중력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제 길을 찾아 나갔다. 펜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종이 위에 얹어두는 것. 필압을 뺀다는 것은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문장은 제 흘러갈 곳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내가 힘을 주어 펜을 장악하려 할 때보다, 오히려 손을 느슨하게 풀었을 때 잉크의 흐름은 더 풍성하고 유연해졌다.
이제 나는 펜의 외적인 무게가 아니라, 그 펜이 내어주는 ‘가벼운 자유’를 사랑한다. 비록 여전히 내 글씨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만년필이 만들어내는 색의 층위 안에서 나는 나만의 문장을 즐기게 되었다.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를 때면 의식적으로 만년필을 든다. 그리고 텅 빈 종이 위에 다짐처럼 적어 본다. 오늘은 너무 힘주어 살지 않겠노라고. 잉크를 머금은 닙처럼, 세상이라는 종이 위에 몸을 살짝 얹은 채 나만의 흐름을 따라 미끄러져 가겠노라고. 가벼워진 손끝에서 비로소 가장 진실하고, 가장 무거운 마음이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