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따라가라는 말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을 때

『연금술사』를 읽고

by 누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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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가, 나의 눈길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이 책은 20여 년을 지키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도록 만들었던 것도 바로 이 책이었다. 매 페이지마다 펼쳐지는 주옥같은 문장의 향연은 쉬이 다음 장으로 눈길을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붙잡는다. 책 속에 펼쳐진 문장들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연금술’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여전히 눈부시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결말과 메시지를 반쯤은 외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가 진리라 믿었던 것들이 다시금 차가운 시험대 위에 올려지기 때문이다.


양치기 산티아고는 반복되는 꿈으로 인해 익숙한 삶으로부터 길을 떠난다. 작가 코엘류는 이를 ‘자아의 신화(Personal Legend)’라 부르지만, 두 딸이 모두 성인이 된 지금 이 개념은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모두가 그것을 따라 무작정 떠날 수는 없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무척 빨리 배우는 것 같아. 아마도 그래서 그토록 빨리 포기하는지도 모르지”라는 문장은 쉽게 지나칠 수 없다. 포기했다기보다, ‘나중에’로 미뤄둔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산티아고의 여정은 거창한 결단이라기보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질문을 다시 들춰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처럼 읽힌다.


소설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지(Omen)’는 신비로운 장치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니 오히려 현실과 이상과의 치열한 타협에 가깝게 느껴진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할 때 주변의 사소한 변화에 민감해지고, 그 신호를 내 상황에 맞게 해석하려는 노력 말이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당신을 돕는다”는 문장은 탄핵으로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서 물러난 구시대의 정치인의 말로 유명해졌다. 그렇기에 나는 이 문장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우주가 돕는다기보다는, 내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쪽에 더 가깝다. 표지는 기적이 아니라, 선택 이후에 따라오는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에게 납을 금으로 바꾸는 법보다,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법을 가르친다.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공포가 더 사람을 괴롭힌다”는 말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했지만, 실제 삶에서의 고난은 그리 단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막을 건너는 과정에서 산티아고가 겪는 실패와 두려움은, 변화가 언제나 아름다운 성장통으로만 남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주지 시킨다. 연금술은 기적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에 더 가깝다. 이 소설이 가볍게 읽히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는, 그 고통을 끝내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산티아고는 보물이 처음 출발했던 장소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다소 허탈한 결말이지만, 곱씹을수록 이 구성은 정직하다.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그 자리를 보물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정 속에서 얻은 지혜와 사랑,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그 보물은 여전히 낡은 교회 아래 묻힌 채였을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이 말하는 ‘현재의 가치’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가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떠나야 한다는 역설이다.


《연금술사》는 분명 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이 오래 남는 이유는, 무작정 떠나라고 등을 떠미는 대신 “당신은 왜 아직 떠나지 않았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현실이 사막을 건널 때처럼 막막할 때, 이 소설은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건넨다.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나를 글의 세계로 유혹했던 그 구절처럼, 자신의 신화를 믿고 내딛는 이 한 문장이야말로 나의 평범한 일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연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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