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의자

by 누룩취

자리를 비운 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돌아와 보니 내 의자는 이미 점령당했다. 녀석은 마치 처음부터 그곳이 제 자리였다는 듯, 눈꺼풀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우리 집 고양이 까미는 이런 식이다. 내가 물을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그 짧은 틈을 정확히 포착해, 기어코 내 자리를 차지한다. 나는 이 기묘한 기술을 ‘빈자리 스틸’이라 부른다. 우리 집에서 녀석과 나의 서열은 늘 의자 위에서 판가름 난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허허 웃으며 자리를 양보하겠지만, 식사 중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창 수저를 들다 일어난 자리를 빼앗기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곤히 눈을 감고 있는 녀석을 거칠게 밀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심스레 다가가 “야, 비켜!” 하고 소리쳐 보지만, 녀석은 감은 눈은커녕 수염 한 올 까딱하지 않는다. 그 뻔뻔한 침묵 앞에서 나는 늘 패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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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구석에 있던 딱딱한 스툴을 가져와 식탁 모서리에 걸터앉는다. 이미 자리를 잡은 상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허리를 기묘하게 꼬아가며 남은 식사를 마친다. 요즘 부쩍 디스크가 재발해 고생 중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허리 건강이 나빠진 이유에 이 녀석의 심술이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 비록 유명하지 않은 지방 대회지만, 마라톤으로 입상할 정도로 튼튼했던 몸이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구부정해지는 꼴이라니, 실소가 터진다.

억울한 마음에 슬쩍 발을 뻗어 녀석을 옆으로 밀어내 보려 시도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디선가 지켜보던 딸들의 매서운 지청구가 날아온다.

“아빠! 지금 뭐 하는 거야? 까미가 불쌍하지도 않아?”

딸들의 눈초리는 서슬 퍼렇다. 자리를 빼앗기고 엉거주춤 서 있는 아빠는 불쌍하지 않은 모양이다. 녀석은 딸들의 엄호 사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태평하게 그르렁거린다.

이 집에서 나의 위치를 새삼 실감한다. 겉보기에는 가장 큰 덩치에 물리적인 힘도 세지만, 실질적인 가계도 안에서 나는 최하위 카스트에 속한다. 마님께는 결혼 전부터 밀렸고, 어느새 딸들에게 밀리고, 이제는 말 못 하는 짐승에게까지 내 의자를 내어주는 신세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다. 까미와 함께한 세월 동안 어린이집에 다니던 둘째는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은 몰라보게 자랐지만, 여전히 까미만 보면 귀엽다며 난리다. 생물학적 나이로 치면 이미 나보다 훨씬 늙었을 녀석인데 말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까미는 야생성을 한 스푼 덜어내고, 영악함 두 스푼을 추가했다. 이제 녀석은 반쯤 여우가 다 되었다. 고양이와 여우 중 무엇이 더 영악한 놈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녀석이 집안의 기류를 완벽히 읽는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이 집에서 누가 제 편인지쯤은 녀석이 가장 잘 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양이가 집사의 자리를 탐내는 것이 꼭 심술만은 아니라고 한다.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온기가 남은 곳을 찾는다. 집사가 방금 일어난 자리는 온돌처럼 따뜻하고, 무엇보다 집사의 체취가 가장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다. 녀석에게 내 의자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향기로운 안식처인 셈이다.

결국 까미의 무례한 행동은 나를 향한 지독한 짝사랑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서 제일 힘이 세 보이는 나를 제치고 그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어쩌면 나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내 자리를 나눠 갖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내 허리는 뻐근하고 식탁 예절은 엉망이 되었지만, 녀석의 고집스러운 집착이 그리 밉지만은 않다.

오늘도 나는 까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스툴에 앉아 식은 국을 떠먹는다. 식탁에 앉은 딸들은 까미를 보며 까르르 웃는다. 서열 최하위면 좀 어떠랴. 이 작은 생명체가 주는 온기와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내 아픈 허리를 조금은 어루만져주는 듯하다.